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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농업생산력의 증대는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수공업자는 처음에 장원영주의 주문에 따라 주물과 도기 등이 생산에 종사했으나 농업생산의 향상에 의해 농민의 수요가 증대하여 철제농구와 솥이나 남비 등 생활용품도 생산하였다. 또한 농업과 수공업의 발달에 따라서 상업도 활발해져 농산품과 수공업제품의 교환을 위해 장원내 교통의 요지와 사원·신사의 문전에 시장이 열리고 정기시의 형태로 발전해 갔다.주 280
각주 280)
佐佐木銀彌(1965), 「産業分化と中世商業」 『日本經濟史大系』2(中世), 東京大學出版會, 157~15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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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경제의 발달은 화폐의 필요성을 자극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송전(宋錢)이 유통되었다. 장원의 공납도 시(市)에서 전화(錢貨)로 바꾸어 납입하는 일이 많아졌다. 또 돈을 빌려주고 고리를 챙기는 가시아게[借上]라고 하는 금융업자가 나타나 무사나 농민의 토지가 이들에게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이밖에 연공과 상품의 운송과 보관 및 위탁판매를 하는 도이마루[問丸]도 각지에서 활약하였다.주 281
각주 281)
佐佐木銀彌(1965), 171~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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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시대의 상공업은 국내 수요의 증가와 대외무역의 성황에 힘입어 크게 발전하였다. 수공업자는 점차로 장원의 예속에서 벗어나 독립하였고, 수공업의 분화도 진전되면서 주문생산과 아울러 시장의 수요를 예측하여 상품을 생산하였다. 농민의 수요에 대응하여 낫, 쟁기, 호미 등의 농기구나 냄비와 솥과 같은 일용품이 생산되었다. 도검은 국내의 수요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대량으로 생산되었지만, 그로 인해서 가마쿠라시대보다 품질은 저하되었다.
각지의 특산품으로 교토, 가가(加賀), 에치젠[越前], 시모스케[下野]의 견직물과 에치고[越後]와 시나모[信濃]의 마포가 유명하였다. 그리고 야마구치[山口], 히카타[博多], 사카이[堺], 교토에서는 중국에서 기술자들이 와서 고급의 견직물을 생산하였다. 또한 하리마[播磨]와 에치젠, 미노[美濃]과 나라[奈良]는 고급 종이의 산지로 유명한데, 특히 미노지방에는 종이만을 취급하는 전문 시장이 있었다. 양조업도 발달하여 가와치[河內]와 야마토[大和]와 셋쓰, 교토 등이 술의 산지로 유명하였는데, 15세기를 전후하여 교토에만 350개소에 가까운 양조장이 있을 정도였다.주 282
각주 282)
구태훈(2004), 189~190쪽 ; 佐佐木銀彌(1965), 181~18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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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수공업의 발달로 인해서 시장의 발달도 촉진되었다. 각지에서는 장이 섰으며 그 횟수도 가마쿠라시대에 비교하여 증가하여 월 6회의 장이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지역별로 장이 서는 날을 엇갈리게 정하기도 하였다. 시장에서는 상품의 종류에 따라서 판매하는 자리가 지정되어 있었고, 시장은 장원 영주나 슈고다이묘가 파견한 감독관이 통제하였다. 상인들은 장원 영주나 슈고다이묘에게 시장세를 납부하고 판매의 독점권을 보장받았다. 이 시대에는 행상도 증가하였는데 행상은 개인이 짐을 들고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상인과 시장에 일정한 근거를 두고 일정한 지역을 순회하며 판매하는 상인이 있었다. 그리고 상인중에는 대규모 행상단을 조직하여 활약하는 대상인도 있었다. 한편 대도시에는 상설점포가 개설되었는데 점포는 수십 개가 처마를 맞대고 줄지어 늘어서서 상품을 진열하고 장사하였다. 이렇게 한 곳에 정착하여 상업 활동에 종사하는 상인들을 가마쿠라시대 말기부터 조닌[町人]이라고 불렀다.주 283
각주 283)
구태훈(2004) ; 松山良三(2004), 130~132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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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경제의 발달과 함께 화폐가 유통되었다. 세금도 동전으로 납부할 수 있게 되면서 화폐는 더욱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그리고 연공의 수납액을 화폐 특히 영락전(永樂錢)으로 환산하여 표시하고 관고제(貫高制)가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막부는 화폐를 주조하지 않고 중국에서 송전(宋錢)이나 명전(明錢)을 수입하여 유통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품 유통의 규모가 커지고, 수입되는 동전이 감소하면서 통화가 부족하게 되자 일본 국내에서 사적으로 주조한 품질이 조악한 동전이 유통되면서 통화유통의 혼란이 발생하였다. 상인들이 거래할 때 조악한 동전을 꺼리고 양질의 동전만을 선별하여 받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막부와 다이묘는 화폐의 교환비율을 정하고 품질이 조악한 화폐를 지정하여 유통화폐의 종류를 제한하는 등 혼란을 줄이려고 노력하였지만 완전히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주 284
각주 284)
구태훈(2004) ; 西川裕一(1999), 「江戶期三貨制度の萌芽 : 中世から近世への貨幣經濟の連續性」 『金融硏究』, 日本銀行金融硏究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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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커다란 변화에 따라 교통도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상품의 유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해상교통으로서 서부 일본의 태평양 연안지역에서는 정기선이 왕래하였다. 이 선박으로 항구까지 운반된 상품은 운송업자들에 의해서 각지로 운반되었다. 교통이 발달하고 각지의 사원이나 신사를 참배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서민들의 여행도 증가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각지에 도적들이 있었고, 세키쇼[關所]가 많이 설치되어 관세를 받았기 때문에 서민들의 여행은 쉽지 않았다. 세키쇼를 설치한 중요한 목적은 관세를 징수하기 위한 것으로 각지에 상당히 많은 수가 설치되었다. 15세기 이세(伊勢) 가도의 구와나[桑名]에서 히나가[日永]까지의 16㎞의 거리에 60여 개의 세키쇼가 있었으며, 이렇게 많은 세키쇼에서 왕래하는 상인과 여행자에게 통행세를 부과하였다.주 285
각주 285)
구태훈(2004), 192쪽 ; 佐佐木銀彌(1965), 163~16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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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80)
    佐佐木銀彌(1965), 「産業分化と中世商業」 『日本經濟史大系』2(中世), 東京大學出版會, 157~158쪽 참조. 바로가기
  • 각주 281)
    佐佐木銀彌(1965), 171~173쪽. 바로가기
  • 각주 282)
    구태훈(2004), 189~190쪽 ; 佐佐木銀彌(1965), 181~184쪽 참조. 바로가기
  • 각주 283)
    구태훈(2004) ; 松山良三(2004), 130~132쪽을 참조. 바로가기
  • 각주 284)
    구태훈(2004) ; 西川裕一(1999), 「江戶期三貨制度の萌芽 : 中世から近世への貨幣經濟の連續性」 『金融硏究』, 日本銀行金融硏究所를 참조. 바로가기
  • 각주 285)
    구태훈(2004), 192쪽 ; 佐佐木銀彌(1965), 163~168쪽 참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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