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연구현황
1. 금 연구현황
금은 여진족의 완안아골타가 요를 멸망시키고 세운 것으로 개봉을 탈취하고, 남송과 회수에서 대산관에 이르는 선을 경계로 대립하였다. 금은 요에 비하여 영통에 있어서나 통치이념에 있어서 훨씬 중국화의 정도가 높았다.주 173
금에 대한 중국측의 연구경향을 살펴보면,주 174요·금과 양송 전쟁의 성질, 거란, 여진과 한족관계에 대한 견해는 첫째, 대다수 사람들이 거란, 여진은 당시 국내 민족이며 요, 금은 중국이라 하고, 둘째, 당시 아직 각 왕종의 강역 밖에서 독립국가로 있었다면 당시 중국의 범위 내에 포괄할 수 없다고 한다.주 175
송금의 전쟁이나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중국학계는 자신들의 평가 기준이 화이론적인 편견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박천(張博泉)은 ‘貴中華(중원한족) 賤夷狄(변강소수민족)’의 차별의식을 ‘봉건적’이라는 표현으로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사상임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반동적 민족분열 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주 176이보다 앞서 진술(陳述)이 『거란사론증고』에서 요금과 오대 양송의 남북 대치를 중국 역사상 제2차 남북조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장박천(張博泉)의 주장도 그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주로 한족이 통치하던 중원통치의 역사가, 송요, 송금 시대에 이르러 소수민족이 통치하는 중원의 역사로 ‘발전’했고, 송과 금 사이 정통의 문제를 둘러싼 쟁론이 있었다 해도 소수민족의 왕조를 ‘외부’로 본 적은 과거에도 없었다고 한다.주 177
금에 대한 중국측의 연구경향을 살펴보면,주 174요·금과 양송 전쟁의 성질, 거란, 여진과 한족관계에 대한 견해는 첫째, 대다수 사람들이 거란, 여진은 당시 국내 민족이며 요, 금은 중국이라 하고, 둘째, 당시 아직 각 왕종의 강역 밖에서 독립국가로 있었다면 당시 중국의 범위 내에 포괄할 수 없다고 한다.주 175
송금의 전쟁이나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중국학계는 자신들의 평가 기준이 화이론적인 편견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박천(張博泉)은 ‘貴中華(중원한족) 賤夷狄(변강소수민족)’의 차별의식을 ‘봉건적’이라는 표현으로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사상임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반동적 민족분열 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주 176이보다 앞서 진술(陳述)이 『거란사론증고』에서 요금과 오대 양송의 남북 대치를 중국 역사상 제2차 남북조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장박천(張博泉)의 주장도 그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주로 한족이 통치하던 중원통치의 역사가, 송요, 송금 시대에 이르러 소수민족이 통치하는 중원의 역사로 ‘발전’했고, 송과 금 사이 정통의 문제를 둘러싼 쟁론이 있었다 해도 소수민족의 왕조를 ‘외부’로 본 적은 과거에도 없었다고 한다.주 177
- 각주 173)
- 각주 174)
- 각주 175)
- 각주 176)
- 각주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