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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머리말

Ⅰ. 머리말

새 교육과정에서 처음 편제된 「동아시아사」 과목은 역사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 특히 한·중·일 간의 역사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근자의 상황이 「동아시아사」 교과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한·중·일 일국사(一國史)가 갖는 의미와는 별도로 동아시아로 역사인식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그러한 점에서 「동아시아사」는 민족과 국가사 중심의 역사인식과는 차별성을 가져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인식 틀로서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나타나는 국가간의 외교관계 방식으로서 책봉(冊封)·조공(朝貢)체제 및 국제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동아시아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다수의 국가와 종족들이 흥망을 거듭하고 세력의 부침이 교차되는 다원화된 역사가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사」의 관점을 마련하는 데 상당히 의미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고대의 동아시아사를 한국사의 시점(주로 한-중관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국가의 성장과정 및 국제질서의 변동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다음 3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 1기는 고조선에서 삼국의 국가형성기로서, 당시의 국제적 환경은 한(漢)~위(魏)·진(晉)시기이다. 제 2기는 삼국정립기로서 당시 중국이 남북조(南北朝)로 나뉘어 대립하는 국제질서를 배경으로, 삼국과 남북조 제국가 사이에 충돌과 교섭관계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다. 제 3기는 중국의 통일제국인 수(隋)·당(唐)의 등장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중국을 중심으로 개편된 시기이다.
제 2기 이후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운영하는 주체는 만주·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 그리고 말갈(靺鞨)·거란[契丹] 등 다수의 종족집단, 일본열도의 왜(倭), 중국 대륙의 중원 왕조, 북방 초원지대의 유목국가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원지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동아시아 국제정세도 큰 영향을 받았다. 즉 한(漢)·진(晉)·수(隋)·당(唐)이라는 통일 왕조 시기의 국제정세 및 삼국과 남북조라는 분열시기의 국제정세는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국제관계가 전개된 시기는 4세기 이후 즉 제 2기이다. 4세기는 5호16국시대라는 북중국의 정세를 배경으로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종족이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국제질서의 변동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5~6세기에는 보다 안정된 국제질서로 바뀌는데, 이는 중국의 남북조와 유연(柔然), 고구려 등 가장 강력한 국가들 사이에 세력균형이 이루어진 결과였다. 이를 배경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및 말갈·거란 등 동북아의 여러 국가 및 종족 세력은 적어도 북방 유목세력과 중원세력의 영향과 세력 침투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국제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내에서는 삼국 간에 항쟁이 계속되었지만 삼국간 세력 균형이 깨지는 수준으로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런데 6세기 말 이후에는 중원의 통일제국으로 수와 당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동아시아 전체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커다란 파동이 일어났으며, 삼국간의 항쟁도 이와 깊이 연관되면서 전개되었다. 그 결과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였고, 신라가 한반도의 통일국가로 성장하였으며 만주에서는 발해가 성립하였다. 제 3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이후 9세기까지 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가 구축되었으며, 문화적으로 율령이나 유교, 불교 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동아시아의 문화적 통합성이 그 어느 시기보다 높아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 3기에서는 소위 중국사의 영역을 논외로 한다면, 한국사나 일본사의 역사적 범주가 확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소위 한국사의 구성 요소가 통일신라와 발해로 단순화되고, 더욱 양자의 충돌, 교섭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후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왕조교체가 일어나면서 실질적으로는 통일신라 중심의 역사적 맥락이 마련되었다. 일본사는 7세기 이후 한반도와의 주민 이동이나 문화교류가 제한되면서, 7세기까지 진행되었던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연관적 구조가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후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각각 국가사의 범주가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위 ‘동아시아사’다운 기술이 가능한 시기는 바로 4~7세기라고 볼 수 있다. 이시기에 다원적인 국제질서를 배경으로 다수의 국가와 종족 등의 주체들이 전개하는 역사상은 한·중·일이라는 국가사의 기술 범위에 갇혀 있지 않게 되며, 이점에서 ‘동아시아사의 형성’이라는 이 시기가 갖는 의미를 충분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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