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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유식사상

지론학과 섭론학

6. 유식사상 : 지론학과 섭론학

6세기에 이르러 유식(唯識)사상이 새롭게 소개되어 발전하였다. 유식사상은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들의 인식작용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참된 세계는 그러한 인식작용을 초월하였을 때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6세기초 인도에서 온 보리류지(菩提流支, ?~527)와 늑나마제(勒那摩提)가 유식사상 문헌들을 번역하면서 소개되었다. 북중국의 낙양에서 적극적인 교화활동을 펼친 보리류지와 늑나마제의 문하에서 다수의 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유식사상은 북중국 불교계의 주요한 사상 경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두 사람의 사상을 계승한 초기 유식학자들은 『십지경론(十地經論)』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유식사상을 전개하였으므로 지론학파(地論學派)로 불리는데, 늑나마제를 계승한 남도(南道)파가 여래장사상을 수용하였던 것과 달리 보리류지를 계승한 지론학 북도(北道)파에서는 여래장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상적 차이가 있었다.
북도파가 보리류지의 제자인 도총(道寵)과 그 제자인 승휴(僧休)법계(法繼) 등의 활약 이후 곧바로 쇠퇴한 것과 달리 남도파는 늑나마제 이후 혜광(慧光), 승범(僧範, 476~555), 도빙(道憑, 488~559), 법상(法上, 495~580), 안름(安.), 영유(靈裕, 518~605), 혜원(慧遠, 523~592) 등으로 계승되며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혜원은 북조의 불교학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그가 편찬한 『대승의장(大乘義章)』은 남북조시기의 불교사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명성이 높다. 남도파가 번창한 것은 『열반경』의 전래 이후 실유불성사상과 여래장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중국 불교계의 사상적 분위기에 영향받은 것이었다.
한편 6세기 후반에는 남중국에도 유식사상이 전래되었다. 인도출신의 진제(眞諦, 499~569)가 바닷길을 통해 남중국으로 들어와 다수의 유식사상 문헌들을 번역하였다. 그는 특히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중시하였으므로 그의 문하에서 이 책에 의거하여 불교사상을 체계화하는 섭론학파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중관사상이 중시된 남중국에서는 유식사상인 섭론학이 그다지 성행하지 못하였고 단지 진제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학습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남북조 말기 북주(北周)에서 단행된 폐불정책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신한 지론학 승려들에 의하여 섭론학이 깊이 있게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섭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본래 지론학 남도파에 속하였던 담천(曇遷, 542~607)이었다. 그는 북주의 폐불을 피하여 남쪽으로 이주하여 섭론학을 접한 후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였고, 수나라가 남북조를 통일한 이후에는 북쪽으로 돌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홍포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많은 지론학 승려들이 섭론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지론학과 섭론학은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명확하지 않다. 고구려의 경우 의연(義淵)이 576년에 북제에 가서 『십지경론』 등의 문헌에 대하여 문의한 사례가 있고, 백제에서는 6세기말에 저술된 『대승사론현의기』에 지론학과 섭론학에 대한 언급이 보이고 있다. 신라의 경우 630년대말 중국에 유학한 자장(慈藏)은 섭론학과 계율학을 수학하고 돌아와 신라에 이를 널리 홍포하였다. 왕실의 후원하에 승려들을 통괄하는 대국통(大國統)에 취임한 그는 보살계를 널리 퍼뜨리는 한편 수나라 문제의 사리탑 건립을 본떠 황룡사를 비롯한 여러 곳에 사리를 봉안하고 사리신앙을 홍포하였다. 자장 이후 신라에는 섭론학의 전통이 강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7세기 중엽 일본에 등장한 섭론종은 신라의 섭론학을 수용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주 100
각주 100)
일본의 자료에는 7세기 중엽 일본 승려들이 唐나라에 유학하여 당시 중국에 전해진 新唯識을 수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의 국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 승려들은 신라에 유학하여 신라에서 연구되고 있던 攝論學을 수학하고 돌아갔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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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100)
    일본의 자료에는 7세기 중엽 일본 승려들이 唐나라에 유학하여 당시 중국에 전해진 新唯識을 수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의 국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 승려들은 신라에 유학하여 신라에서 연구되고 있던 攝論學을 수학하고 돌아갔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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