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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중국인 승려의 구법 활동

3. 중국인 승려의 구법 활동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서역 출신승려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신자들 중에서도 서역 출신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불교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확대되면서 한족(漢族)출신 불교도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나아가 한족으로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안세고와 지루가참의 가르침을 계승한 재가신자들 중에 한족출신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안세고와 지루가참의 불경 번역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불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직접 승려가 되어 불교적 수행을 실천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한족 출신이 승려로 출가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260년에 한족 출신의 승려 주사행(朱士行)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위키백과이 반야경의 원본을 구하기 위해 서역으로 구법 여행한 사실을 볼 때, 이미 당시에 한족 출신의 승려들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낙양에 온 인도 승려 담가가라(曇柯迦羅)불교사전는 당시 중국의 승려들이 머리만을 깍았을 뿐 구족계위키백과불교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받지 않고 의례와 생활방식도 불교의 예법과 어긋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시 한족 출신 승려들의 생활이 인도나 서역의 승려들과는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담가가라는 중국의 승려들이 정식의 승려 계율을 받도록 하고, 승려들이 지켜야 할 율법 중의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 『승기계심(僧祇戒心)』을 편찬한 후 이를 중국 승려들의 생활규범으로 삼게 하였다. 또한 안식국 출신의 담제(曇帝)는 승려들의 수계의례를 제시한 『담무덕갈마(曇無德羯磨)』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불교사전를 번역하였다.
초기 번역가들에 의해 소승과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들이 번역되었지만 생소한 불교적 개념과 매끄럽지 못한 번역 등으로 인하여 중국의 불교인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중국인들 중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서역에 가서 보다 자세한 경전을 구해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특히 초월적인 지혜를 이야기하는 반야사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아직 중국에 전해지지 않은 반야사상의 경전을 구하려는 욕구가 심화되었다. 주사행이 서역으로 구법여행을 떠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우전국[宇闐國, 호탄]위키백과에서 기존에 번역되어 있던 것보다 더 풍부한 내용의 반야경 원본을 구한 후 이를 중국으로 보내 번역하게 하고 자신은 우전국에서 입적하였다. 이 원본은 10여년 후인 291년에 서역 출신 승려와 중국인 신자들의 공동 작업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되었다(『방광반야경』불교사전불교사전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
중국인 승려에 의한 본격적인 구법과 번역 활동은 서진(西晉)위키백과시기에 활약한 축법호(竺法護)위키백과불교사전한문전자대장경에게서 비롯되었다. 돈황 지방에 정착한 월지국 출신의 후예로 거의 한족화되었던 그는 어려서 유교경전과 제자백가위키백과를 공부하였지만 장성한 후에는 집안 대대로의 신앙인 불교를 보다 자세히 공부하기 위하여 서역에 유학하였다. 대승불교가 번성하였던 우전국에서 반야사상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를 공부한 후 많은 양의 경전을 가지고 돌아와 돈황위키백과위치과 장안위키백과위치에서 번역하였다. 그는 150여 종에 달하는 많은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번역하였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여 다수의 중국인 신자들을 배출하였다. 수천 명의 승려와 재가신자들이 그를 따랐으며, 그의 활동 중심지인 돈황과 장안에는 중국인 신자집단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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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승려의 구법 활동 자료번호 : edeah.d_0002_002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