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경전의 출현
2. 한문경전의 출현
중국사회에 불교의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불교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부터였다. 처음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사람들은 서역에서 건너온 승려들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던 서역인들은 자신들이 신앙하고 있던 불교를 중국사회에 전파하기 위하여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한편 서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중국인들 중에서도 이 새로운 가르침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서역인 승려들의 한문 번역작업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불교가 전해진 초기부터 중국에 이주한 서역출신의 사람들이나 불교를 신앙한 중국인들에 의하여 일부 단편적인 불교의 가르침이나 경전의 구절들이 한문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식 경전이 본격적으로 번역된 것은 2세기 후반에 활약한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讖) 등에 의해서였다.주 090
안식국[安息國, 파르티아] 출신의 안세고는 148년 경 중국에 들어와 20여 년간 30여 부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경전들은 아비다르마불교주 091계통의 문헌이 대부분인데, 이는 아비다르마불교의 경향이 강하였던 안식국의 불교계 동향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번역한 경전 중 특히 불교적 명상수행법인 선관(禪觀) 수행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은 불교수행의 구체적 내용을 알려준 경전으로 널리 읽혔으며 중국 선관수행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안세고의 전기에는 그가 전세의 업보를 갚기 위하여 중국에 들어와 활동한 사실들이 특기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현세에 미치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널리 홍포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166년에 중국에 들어온 지루가참은 대승불교가 성행하였던 대월지국[大月支國,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던 유목민족의 국가] 출신으로 안세고와 달리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다수 번역하였다. 그는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을 설하는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등을 번역하였다.
삼국시대의 오나라에서 활약한 지겸(支謙)과 강승회(康僧會)도 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낙양에 이주한 대월지국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지겸은 중국어와 서역의 언어에 능통하였다. 후한말 낙양의 혼란을 피하여 강남지방의 오나라로 이주한 그는 이곳에서 많은 경전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그는 같은 대월지국 출신인 지루가참의 문도들에게 수학하였으며, 그에 따라 지루가참과 마찬가지로 반야사상과 아미타신앙을 고취하는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주로 번역하였다. 또한 이미 번역된 경전들을 해설하는 주석서들도 저술하였다.
강승회는 강거국[康居國 : 사마르칸 지역에 있던 서역의 국가] 출신으로 대대로 인도와 중국을 왕래하는 교역에 종사하다가 중국 남부 교지(交趾, 현재의 베트남 북부지역)지방에 정착한 집안의 일원으로서, 중국어와 서역의 언어에 대한 능력을 배경으로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다. 특히 석가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육도집경(六度集經)』은 당시의 불교신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안세고의 가르침을 계승한 승려들에게 수학하였으므로 아비다르마 불교계통의 경전들을 주로 번역하였고, 안세고 등이 번역한 경전들을 해설하는 주석서도 저술하였다. 247년에 오나라 수도 건업(建業)으로 들어간 그는 오나라 왕실의 후원을 얻는 과정에서 부처의 사리에 관한 감응과 전세의 인과에 대한 이야기 등을 널리 퍼뜨렸는데 이러한 경향 역시 안세고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후한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한문으로 번역된 불경들이 출현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단순한 기복적 신앙을 넘어서 체계적인 종교 사상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에 번역된 경전들은 안세고와 강승회 등에 의해 번역된 아비다르마불교 계통의 경전과 지루가참 및 지겸 등에 의해 번역된 대승불교 계통의 경전이 뒤섞여 있었다. 당시 인도 및 서역에서는 지역에 따라 신앙되는 불교의 성격이 서로 달랐는데, 서역 여러 나라와 교류하던 중국에는 이러한 상이한 경향들이 동시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본래 인도 및 서역에서 시기적, 지역적으로 상이하게 발전되었던 불교의 흐름들이 동시에 중국에 수용되면서 중국불교의 기반을 이루었고, 이후 중국불교는 이들 상이한 흐름을 종합하면서 발전해 갔다.
초기 한문경전이 출현하였던 후한 후기부터 삼국시대까지 불교의 중심지는 중원지방의 장안과 낙양, 그리고 남부해안의 교지 및 강남의 건업 등이었다. 이들 중 장안과 낙양은 육로를 통한 서역교류의 중심지였고, 교지지방은 해로를 통한 서역교류의 중심지로서 일찍부터 그곳에 왕래하는 서역사람들을 통하여 불교가 전해졌던 지역이었다. 또한 건업은 한나라 말기에 전란을 피하여 많은 귀족과 지식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장안과 낙양의 문화가 전해졌고, 오나라가 건국된 이후에는 해상교역을 통하여 서역과의 교류에 접촉하였던 지역이었다. 이와 달리 삼국 중의 촉(蜀)지역에서는 불교가 널리 수용되었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이 지역이 지리적 조건으로 서역과의 접촉이 활발하지 못하였던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가 전해진 초기부터 중국에 이주한 서역출신의 사람들이나 불교를 신앙한 중국인들에 의하여 일부 단편적인 불교의 가르침이나 경전의 구절들이 한문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식 경전이 본격적으로 번역된 것은 2세기 후반에 활약한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讖) 등에 의해서였다.주 090
안식국[安息國, 파르티아] 출신의 안세고는 148년 경 중국에 들어와 20여 년간 30여 부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경전들은 아비다르마불교주 091계통의 문헌이 대부분인데, 이는 아비다르마불교의 경향이 강하였던 안식국의 불교계 동향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번역한 경전 중 특히 불교적 명상수행법인 선관(禪觀) 수행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은 불교수행의 구체적 내용을 알려준 경전으로 널리 읽혔으며 중국 선관수행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안세고의 전기에는 그가 전세의 업보를 갚기 위하여 중국에 들어와 활동한 사실들이 특기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현세에 미치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널리 홍포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166년에 중국에 들어온 지루가참은 대승불교가 성행하였던 대월지국[大月支國,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던 유목민족의 국가] 출신으로 안세고와 달리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다수 번역하였다. 그는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을 설하는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등을 번역하였다.
삼국시대의 오나라에서 활약한 지겸(支謙)과 강승회(康僧會)도 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낙양에 이주한 대월지국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지겸은 중국어와 서역의 언어에 능통하였다. 후한말 낙양의 혼란을 피하여 강남지방의 오나라로 이주한 그는 이곳에서 많은 경전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그는 같은 대월지국 출신인 지루가참의 문도들에게 수학하였으며, 그에 따라 지루가참과 마찬가지로 반야사상과 아미타신앙을 고취하는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주로 번역하였다. 또한 이미 번역된 경전들을 해설하는 주석서들도 저술하였다.
강승회는 강거국[康居國 : 사마르칸 지역에 있던 서역의 국가] 출신으로 대대로 인도와 중국을 왕래하는 교역에 종사하다가 중국 남부 교지(交趾, 현재의 베트남 북부지역)지방에 정착한 집안의 일원으로서, 중국어와 서역의 언어에 대한 능력을 배경으로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다. 특히 석가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육도집경(六度集經)』은 당시의 불교신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안세고의 가르침을 계승한 승려들에게 수학하였으므로 아비다르마 불교계통의 경전들을 주로 번역하였고, 안세고 등이 번역한 경전들을 해설하는 주석서도 저술하였다. 247년에 오나라 수도 건업(建業)으로 들어간 그는 오나라 왕실의 후원을 얻는 과정에서 부처의 사리에 관한 감응과 전세의 인과에 대한 이야기 등을 널리 퍼뜨렸는데 이러한 경향 역시 안세고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후한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한문으로 번역된 불경들이 출현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단순한 기복적 신앙을 넘어서 체계적인 종교 사상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에 번역된 경전들은 안세고와 강승회 등에 의해 번역된 아비다르마불교 계통의 경전과 지루가참 및 지겸 등에 의해 번역된 대승불교 계통의 경전이 뒤섞여 있었다. 당시 인도 및 서역에서는 지역에 따라 신앙되는 불교의 성격이 서로 달랐는데, 서역 여러 나라와 교류하던 중국에는 이러한 상이한 경향들이 동시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본래 인도 및 서역에서 시기적, 지역적으로 상이하게 발전되었던 불교의 흐름들이 동시에 중국에 수용되면서 중국불교의 기반을 이루었고, 이후 중국불교는 이들 상이한 흐름을 종합하면서 발전해 갔다.
초기 한문경전이 출현하였던 후한 후기부터 삼국시대까지 불교의 중심지는 중원지방의 장안과 낙양, 그리고 남부해안의 교지 및 강남의 건업 등이었다. 이들 중 장안과 낙양은 육로를 통한 서역교류의 중심지였고, 교지지방은 해로를 통한 서역교류의 중심지로서 일찍부터 그곳에 왕래하는 서역사람들을 통하여 불교가 전해졌던 지역이었다. 또한 건업은 한나라 말기에 전란을 피하여 많은 귀족과 지식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장안과 낙양의 문화가 전해졌고, 오나라가 건국된 이후에는 해상교역을 통하여 서역과의 교류에 접촉하였던 지역이었다. 이와 달리 삼국 중의 촉(蜀)지역에서는 불교가 널리 수용되었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이 지역이 지리적 조건으로 서역과의 접촉이 활발하지 못하였던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 각주 090)
- 각주 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