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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머리말

Ⅰ. 머리말

한국의 새로운 역사과목인 『동아시아사』는 국사(國史) 중심의 역사교육에서 벗어나 역사인식의 범위를 ‘동아시아’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이 과목의 개설을 통해 민족의 형성과 국가적 발전에 한정되었던 일국사적 이해와는 달리 동아시아 세계의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발전을 가져온 주요한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동아시아사』의 편찬에는 동아시아 세계가 여러 문화요소를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권이며, 지속적으로 교섭하여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 점에서 「지역간 인구 이동과 전쟁」이 속한 단원은 동아시아사의 설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주 026
각주 026)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 ‘인구 이동과 문화의 교류’ ‘생산력의 발전과 지배층의 교체’ ‘국제질서의 변화와 독자적 전통의 형성’ ‘국민국가의 모색’ ‘오늘날의 동아시아’이라는 6개 대단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우리의 논의와 관련한 ‘인구 이동과 문화의 교류’는 ‘지역간 인구 이동과 전쟁’ ‘고대 불교’ ‘율령과 유교에 기반한 통치체제’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4가지 주제를 다룬다. 관련 내용은 동북아역사재단 편(2009),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 『동아시아사 교과서 집필 안내서』 부록, pp.346~34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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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라는 하나의 지역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불교(佛敎)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율령(律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유교(儒敎)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등의 문화요소를 공유한다는 문화적 특징을 갖추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동아시아의 형성과 문화적 특징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인데, 『동아시아사』는 ‘인구 이동’과 ‘문화의 교류’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즉 이 단원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가 ‘인구 이동’인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사』가 설정하고 있는 ‘인구 이동’은 ‘문화의 교류’에 비해 선뜻 그 의미를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를 보더라도 그렇다.주 027
각주 027)
동북아역사재단 편(2009),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 『동아시아사 교과서 집필 안내서』 부록, 349~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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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학습 내용〉에 따르면 이 단원에서 “지역 간에 인구 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음을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이해가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인구 이동이 이룬 결과로 제기된 “인구 이동을 통해 각 지역에 들어선 국가들은 치열한 전쟁과 통합을 통해 정치적 성장을 이룩해갔고 그 과정에서 이주민과 토착민, 이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융합과 문화의 교류 등이 나타났다”의 내용도 지나치게 특정 지역의 특별한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이라 보여진다.
예를 들어 4세기에 들어서면 중국에서는 흉노(匈奴)위키백과 등 5호(胡)위키백과가 북중국(北中國)을 차지하여, 한인(漢人)의 晉왕조위키백과를 江南으로 이전케 하였다. 이로 인해 등장한 5호16국시대(5胡16國時代) 혹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위키백과 여러 국가들은 그 건국 배경과 발전과정에서 위의 제시 내용과 부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례가 중국 지역에 국한되는 것으로, 중국사를 다루는 책이라면 마땅하지만 『동아시아사』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5호16국의 등장으로 동아시아 세계가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동아시아 세계를 이루는 각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양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시기로 기원 전후에서 10세기주 028
각주 028)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의 단원 개관에 따르면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는 남북조시대의 전개와 당의 발전, 고구려·백제·신라의 정립과 삼국 통일, 일본의 성립, 베트남 독립 등이 있었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3세기 무렵까지의 각국의 발전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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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를 설정하고 있는데, 만주(滿洲)위키백과와 한반도(韓半島) 나아가 일본열도에 들어섰던 여러 국가들에서 5호16국과 같은 모습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주 029
각주 029)
물론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연인 위만(燕人 衛滿)이 이끈 중국계 유이민(流移民)이 조선(朝鮮)의 준왕(準王)으로부터 정권으로 탈취하여 세운 국가였다. 이 점에서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가 설정하고 있는 ‘인구 이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일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관련지어 살필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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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가 제시하고 있는 설명에 구애받지 않고 관점을 달리하여 볼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5호16국의 등장이라는 격변은 중국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의 집단적 이동을 통해 인접 지역에까지 파급되어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 여기에 인구 이동이 동아시아 세계의 차원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구 이동이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에 기여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전쟁이 잦았다”는 기술도 보완이 필요하다. 전쟁이 잦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굳이 인구 이동이라는 주제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국제관계를 설명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주민의 수효도 반드시 대규모여야만 고찰의 대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이들에 의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따라서 지역 간 인구 이동을 통하여 문화 교류를 포함한 각 지역의 정치적 성장 등을 파악하려고 한다면 인구 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거나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문제가 아니라, 인구 이동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배경, 어떤 사람들이 이동하였는가, 그리고 이동 지역에는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으며 무얼 변화시켰는가 따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각주 026)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 ‘인구 이동과 문화의 교류’ ‘생산력의 발전과 지배층의 교체’ ‘국제질서의 변화와 독자적 전통의 형성’ ‘국민국가의 모색’ ‘오늘날의 동아시아’이라는 6개 대단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우리의 논의와 관련한 ‘인구 이동과 문화의 교류’는 ‘지역간 인구 이동과 전쟁’ ‘고대 불교’ ‘율령과 유교에 기반한 통치체제’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4가지 주제를 다룬다. 관련 내용은 동북아역사재단 편(2009),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 『동아시아사 교과서 집필 안내서』 부록, pp.346~347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27)
    동북아역사재단 편(2009),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 『동아시아사 교과서 집필 안내서』 부록, 349~350쪽. 바로가기
  • 각주 028)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의 단원 개관에 따르면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는 남북조시대의 전개와 당의 발전, 고구려·백제·신라의 정립과 삼국 통일, 일본의 성립, 베트남 독립 등이 있었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3세기 무렵까지의 각국의 발전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29)
    물론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연인 위만(燕人 衛滿)이 이끈 중국계 유이민(流移民)이 조선(朝鮮)의 준왕(準王)으로부터 정권으로 탈취하여 세운 국가였다. 이 점에서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해설서」가 설정하고 있는 ‘인구 이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일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세계의 형성과 관련지어 살필 수는 없겠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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