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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초기국가

 
 

Ⅱ. 신화와 초기국가

 

동아시아 지역에는 국가 성립과 관련해 신화적 문헌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에는 하(夏)위키백과왕조의 성립과 관련한 기록이 있고, 한국에는 고조선(古朝鮮)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사DB한국사DB위키백과고조선한국고전번역원한국고전번역원한국고전번역원한국고전번역원한국고전번역원한국고전번역원우리역사넷과 관련한 기록이 있다. 문제는 이 신화적 기록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이다.
먼저 하왕조 부분을 살펴보자.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하본기」에 앞서 「오제본기(五帝本紀)」를 본기의 맨 앞에 설정해 두고, 마지막에 태사공왈(太史公曰)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의 형식을 빌어 “여러 학자들이 黃帝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 문장이 우아하지도 못하고 온당하지도 못해서 현귀하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말하기를 꺼려한다. 유생들 가운데에는 공자가 전한 「재여문오제덕(宰予問五帝德)」과 「제계성(帝繫姓)」을 전수(傳授)하지 않는 이도 있다. …… 그렇지만 『춘추(春秋)』와 『국어(國語)』에 「오제덕」과 「제계성」이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깊이 고찰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책들에 기술된 내용이 결코 허황된 것은 아니다. …… 나는 여러 학설을 수집하여 이를 검토하고 그 가운데 비교적 전아하고 합리적인 것을 골라 본문을 저술해서 「오제본기」로 삼았다”라고 끝맺고 있다. 즉 사마천은 오제(五帝)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또 『사기』에는 「오제본기」에 이어 「하본기(夏本紀)」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가 별도의 본기로서 설정되고, 여기에 하왕조의 성립과 우(禹)의 치적이 기술되었다. 이 「하본기」에서는 「오제본기」와 달리 더 이상 그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 논급하지 않았다. 이는 사마천이 하왕조와 우에 관한 사실을 신뢰했다는 뜻이다. 「하본기」보다 더 뒤에 위치한 「은본기(殷本紀)」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나 「주본기(周本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마천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과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여러 학자들은 「오제본기」와 「하본기」는 물론 「은본기(殷本紀)」에 대해서도 그 신뢰성을 의심했었다. 그런데 왕국유(王國維)위키백과가 갑골문위키백과위키백과에 나오는 상왕(商王)의 명칭을 「은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상왕의 계보와 비교하여 「은본기」의 사료적 가치를 확인하자, 그 이후 『사기』의 기록 전반을 신뢰하려는 신고파(信古派)가 크게 우세해졌다. 최근 수십 년간 고고학발굴이 진행되면서 문헌자료에 대한 신뢰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다. 특히 전국시대 무덤에서 위서(僞書)로 취급받던 책이 발견되면서 한대 이후 편찬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서적의 저작 연대가 전국시대 이전으로 소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신고의 경향은 「하본기」에 대한 학계의 입장에도 영향을 미쳐, 「은본기」가 갑골문에 의해 증명되었듯이 사마천이 의심하지 않았던 「하본기」의 내용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으며 장차 분명히 고고학 자료에 의해 증명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최근 하남성 이리두위키백과 지도 문화(二里頭文化)와 그에 앞서는 도사(陶寺)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지도 , 신채(新蔡)문화 등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하왕조가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의 고고학문화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얼마 전 도사유적에서는 태양의 운행을 관찰하는 관상대(觀象臺) 유적도 보고되었다.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관상대로 보는 추정이 맞는다면 이는 곧 태양의 관찰을 통해 1년 동안의 시간 흐름이 인식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시간의 인식이란 곧 자신을 우주의 시공간 안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단지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인지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각종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갖추어졌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하대에 이미 청동기 제작, 도성의 건축 등에서 나타나는 물질적 문명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문명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본기」의 내용이 곧바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해 증명된 것은 하왕조가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정치적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 그곳은 청동기 제작이 가능한 물질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우(禹)위키백과가 순(舜)위키백과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시절 치수공사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를 하고,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구도(九道)를 소통시키며, 구택(九澤)을 축조하고, 구산(九山)에 길을 뚫었다는 「하본기」의 기록은 어떤 고고학 자료도 증명하지 못했다. 진시황에 의해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들이 병합되어 하나의 제국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그 영역을 광동성 지도 , 광서성 지도 등지로 확대하기 천칠팔백 년 전에 이미 우가 그 전체 영역을 개척하고 그곳에 길을 뚫었다는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왕조의 존재가 고고학 자료에 의해 확인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하본기」의 내용을 긍정하고, 비록 지금은 증거가 없지만 언젠가는 「은본기」의 기록이 확인되듯 이것도 미래의 새로운 자료에 의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초기국가의 모습들은 후대인들에 의해 크게 과장되고 덧붙여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신화적 요소가 덧붙여지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우가 “치수사업을 하느라 13년을 지내면서도 자기 집 대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았고, 누추한 집에 살면서 절약한 비용을 치수사업에 사용했다”는 것도 영웅을 미화한 것이겠지만, 『사기』 외에 우와 관련한 기록은 대부분 신화에 가깝다. [주014]
각주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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袁珂 저·정석원 역(1987), 『중국의 고대신화』, 문예출판사RISS

2002년 발견된 서주시기의 청동기에 우의 치수와 관련된 기록이 쓰여 있는 것이 확인되어, 마치 우와 관련된 치적이 사실로 증명이나 된 양 소란이 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주시기에 이미 우의 치수 전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을 말해줄 뿐이지, 우의 존재나 그의 치수 치적이 증명된 것은 결코 아니다.
다음은 고조선의 단군과 관련한 기록인데, 주지하듯 이 기록은 『삼국유사』한국사DB에 처음 등장한다. 이보다 훨씬 이전인 A.D. 1세기 『한서(漢書)』한국사DB에는 기자(箕子)가 상이 멸망한 이후 조선으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한대에 화하(華夏) 의식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서사구조일 뿐이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여러 변방지역에 걸쳐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가령 주나라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왕자인 태백(太伯)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이 동생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 중원을 떠나 양자강 하류의 오(吳)지역으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는 서사구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서남쪽 변경지역에도 전국시대 초(楚)나라 장군 장교(莊蹻)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가 전국(滇國)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을 정복하러 갔는데 귀국하려다 보니 그 사이 진(秦)나라에 의해 초나라가 멸망당해 그 자리에 머물러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모두 중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물이 주변지역으로 가서 그 지역의 왕이 되어 통치하였다는 내용인데, 주변 지역이 모두 중국과 하나의 기원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그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사구조이다. [주015]
각주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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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明珂 저·이경룡 역(2008), 『중국 화하 변경과 중화민족』, 동북아역사재단.RISS


그 뒤 13세기에 채록되기 시작한 단군 신화한국사DB에서는 고조선을 세운 자가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라 고조선의 중심지역에서 기자보다 훨씬 오래 전에 존재했던 단군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 신화도 일연(一然)일연의 창작이 아니라 전해져 내려왔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지만, 그 내용이 ‘만들어진 신화’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기자 조선이 한대에 중원의 화하의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처럼, 단군 신화 역시 13세기 한반도의 민족의식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신화’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단군 신화를 비롯해 여러 신화 속에 담겨있는 이른바 역사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초기 전승이 제사장 혹은 부로(父老)에 의해 구술(口述)되어 오기 마련이고,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 공동체의 초기 모습이 투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전제해 둘 것은 이 이야기가 신화라는 사실이다. 신화란 그 개념 정의상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것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요구가 존재했을 터이고, 신화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는 충분히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여졌겠지만, 그것을 곧바로 역사적 사실로 등치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신화학이란 신화를 역사적 사실과 구분하는 작업이다. 신화가 오랜 기간 동안 민간에서 점차 역사화 되어버려 역사와 구분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다시 신화를 역사에서 떼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신화학의 주요 임무이다. 즉 신화란 어디까지나 역사와 구분되어야 할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작 최근 고대사 연구에서는 이 양자가 다시 결합하는 경향을 보이는 아이러니가 나타나 아쉽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는 한, 상왕조위키백과에 앞서는 시기에 중원지역의 초기국가, 그리고 요동과 한반도 지역의 초기국가의 존재는 분명하다. 또 문헌에 남아있는 국가 성립 관련 신화가 철저히 부정될 필요도 없다. 장차 고고학 자료에 의해 혹은 출토문자 자료에 의해 그 일부가 새롭게 조명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후대에 덧붙여지고 만들어진 신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원인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는 공백으로 두는 편이 훨씬 낫다. 논박 가능성이 없는 방식,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논법으로 신화를 역사와 결합할 때 국가 성립과 관련한 초기역사는 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해 두어야 할 논의가 있다. 20세기초 의고파(疑古派)로 알려진 고힐강의 〈누층적 고사 조성설(累層的古史造成說)〉이 그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016]
각주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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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힐강 저·김병준 역(2006), 『고사변자서』, 소명출판사.RISS


첫째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전설 속의 고대사는 점점 소급되어 올라간다는 것이다. 주대(周代) 사람의 생각 속에서 가장 옛날 사람은 우(禹)위키백과였지만, 공자 시대에는 요위키백과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순위키백과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堯·舜)이 더해졌고, 전국시대에는 황제(黃帝)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신농(神農)위키백과이 더해졌으며, 진대(秦代)에는 삼황(三皇)위키백과이, 한대(漢代)에는 반고(盤古)위키백과가 각각 덧붙여졌다는 것이다. 주대에는 우를 가장 오래된 인물로 상정했다가, 그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한대로 내려올수록 점차 더 오래된 인물이 나타났고, 결국 한대에는 세상을 창조한 신화적 인물로서 반고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마치 ‘장작을 쌓듯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차곡차곡 위에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지만, 한대 이후 모두 쌓아 올린 뒤에 보면 반고부터 우에 이르기까지 전체 구조가 마치 처음부터 갖추어진 역사처럼 보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설 속 중심인물은 더욱 위대해진다는 것이다. 순의 경우를 보면, 공자 시기에는 단지 ‘무위지치(無爲之治)’로 나라를 잘 다스렸던 성군이었는데, 『요전(堯典)』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이 만들어진 시기에 이르면 나라 일에 앞서 집안을 먼저 평안히 다스린 도덕군자로서의 성인(聖人)이 되고, 맹자(孟子)위키백과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시기에는 효자(孝子)의 이상적 모범이라는 모습이 덧붙여졌던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나중에 덧붙여진 사실로서 역사를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전국시대 덧붙여진 황제와 신농 이야기를 그 시기의 사실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덧붙여진 이야기를 통해 왜 그 시기에 이러한 신화가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연구할 수는 있다. 즉 황제와 신농 그 자체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국시기에 황제 및 신농을 어떻게 상상하였는지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주 014
袁珂 저·정석원 역(1987), 『중국의 고대신화』, 문예출판사RISS
주 015
王明珂 저·이경룡 역(2008), 『중국 화하 변경과 중화민족』, 동북아역사재단.RISS
주 016
고힐강 저·김병준 역(2006), 『고사변자서』, 소명출판사.R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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