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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사회 형성 단계

1. 군장사회 형성 단계

기원전 3천년경 중원지역 앙소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로 내몽고 동남부지역에 탁극탁현 해생불량주 011
교감주 011)
"해생불량"은 "해생불랑"의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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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生不浪)위치 유적을 표지로 하는 해생불랑문화가 있으나, 단순부족사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다음 기원전 3천년~2천년 경의 노호산위치문화(老虎山文化)에서는 석성으로 둘러싸인 취락이 있어 초기군장사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ISS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 석성취락은 양성(凉城) 대해(岱海)위치지구, 포두(包頭) 대청산(大靑山) 남록지구, 준격이기(准格爾旗)위치와 청수하현(淸水河縣)위치의 황하유역 지구에 집중되어 있다. 대해지구의 양성현 노호산유적의 경우 구릉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380m와 405m 길이로 북쪽과 남서쪽 두 갈래로 돌담이 조성되고, 그 사이 13만㎡ 공간에 다수의 석축기단과 주거지군, 그리고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대청산지구의 위준(威俊)위치 유적의 경우 3단의 계단식 대지에 돌담취락이 조성되어 있는데, 제1대지상에 조성된 방형 돌담 내에 3렬의 주거지군, 3기의 방형 석축제단, 제2대지에는 부채꼴모양의 돌담 내에 다수의 제단이 확인된다. 제3대지에는 구릉 사면을 따라 축조된 돌담 안 쪽에 6~7개의 석축기단이 확인된 바 있다. 황하유역지구의 백초탑(白草塔)위치 유적의 경우 하안단구 40~60m 대지상에 조성되어 있는데, 길이 240m의 돌담이 3급단구상에 시설되고 그 안쪽에 다수의 주거지가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내몽고 동남부 노호산문화의 돌담마을은 대부분 높고 상대적으로 험준한 곳에 입지하는 사실로 보아, 방어적 성격을 가진 취락임이 분명하다. 돌담 내에 열을 이룬 집자리가 있고 별도로 방형의 제단시설이 배치되어, 마을내에 종교적인 행사가 치루어진 조직화된 사회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석성마을들이 3~5㎞ 간격으로 2~3개소가 군을 이루고 있어, 다수의 마을군이 상호밀접한 관계망을 이룬 복합사회를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다음 단계인 기원전 2천년기의 중원의 하상시기에 등장하는 주개구문화는 이금작락기 주개구(朱開溝)내몽골뉴스구글북스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유적으로 대표된다. 이 마을 유적에서 수집된 동식물 자료를 통하여 환경의 변화에 맞물려 농경이 쇠퇴하고 목축이 발전하는 경제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화분분석을 통하여 모두 5단계 중에서 1단계에 연강수량 600㎜이상인 삼림초원경관을 갖추고 있었지만, 2·3단계에 이르면 연 강수량이 450~600㎜로 떨어져 관목초원으로 변화한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자연경관의 변화와 맞물려 주개구 유적에서 돼지와 소, 양 유골의 비율이 1단계에 1 : 0.8, 2단계에 1 : 1.6, 3단계에는 1.2로서 소와 양으로 입증되는 목축의 비중이 점차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무덤은 기원전 2천년기 중엽에 해당하는 주개구 3단계에 들어서 그 크기가 더욱 커지고, 남성을 중심에 둔 남녀 2인 혹은 다인 합장(多人合葬)의 사례가 증가한다. 큰 무덤의 경우 처첩을 배장한 사례도 있으며, 무덤에 순생(殉牲)한 동물의 유골도 크게 증가하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그림 7).
그림 7 주개구 무덤

  • 교감주 011)
    "해생불량"은 "해생불랑"의 오기이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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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사회 형성 단계 자료번호 : edeah.d_0001_003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