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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생업활동

1. 생업활동

1) 수렵·채집·어로
(1) 중국 황하유역
중국 황하유역은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하여 농경사회가 형성되지만 수렵, 채집, 어로 등도 꾸준히 보조식량의 조달원으로서 이루어졌다. 특히 이른 시기일수록 오히려 농경보다 이러한 활동들이 더 중요한 식료조달원이었다. 황하유역에서 확인되는 채집대상물은 낙엽수림의 견과류가 많은데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 등의 도토리류가 많고 개암나리스, 밤, 호두 등도 확인된다. 과실류로는 복숭아, 대추 등이 확인된다. 이외 들깨나 콩류도 확인된다.
수렵대상물은 사슴과 멧돼지가 많으며 그 중에서도 사슴이 주류를 이룬다. 사슴은 삼림성 동물로 농경의 확대에 따른 삼림의 제거가 사슴사냥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인위적인 삼림제거는 곧 참나무류 등의 이차림(二次林) 형성을 가져오고 이 이차림이 사슴과 동물들을 불러모으는 효과를 가져와 사슴사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유럽의 중석기시대인들 경우에도 이와 같이 사슴사냥을 위해 의도적으로 삼림을 불태워 이차림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앙소문화 등 황하유역에서는 돼지를 중심으로 가축사육이 성행하여 상대적으로 양자강 유역에 비하면 단백질원으로서 가축의 비중이 많은 편이다.
황하유역에서는 일부시기와 지역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어로활동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이는 당시 유적 주변으로 풍부한 어족자원이 분포하지 않았고, 사냥이나 가축사육을 통해 단백질원을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황하 하류와 발해만 지역은 중국내에서도 어로문화가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그물, 낚시, 작살 등에 의한 어로가 발달하고 산동반도나 요동반도에는 패총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뿐 아니라 회유하는 삼치 등의 어류도 역T자형 낚시바늘의 연승어법 등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포획하였다. 황하 하류에서는 대문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에서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단계까지 악어류도 적극적으로 포획한 증거가 확인된다.
(2) 중국 양자강유역
양자강하류역에서 특히 많이 채집된 것은 마름, 연, 율무 등이다. 이들은 쌀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꾸준히 이용되었다. 이러한 야생식물들은 대부분 수생성으로 호수와 늪지 등이 많은 양자강 하류의 환경에 적응한 식물들이다. 당시인들이 주변에 풍부한 이러한 식물자원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과실류로는 복숭아, 대추, 매실, 감 등이 확인된다. 완두콩, 박 등도 확인된다.
양자강유역의 사냥대상물은 사슴류가 가장 많다. 양자강유역은 매우 풍부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축사육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황하유역에 비하면 사슴류의 사냥을 통한 단백질원 획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사실 가축사육은 겨울철 사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으므로 자연환경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그렇게 선호되지 않는 생계활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장강하류유역은 황하유역에 비해 수변지구가 풍부하여 그물어로 등의 어로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수도작과 관련하여 수로 등에 서식하는 메기나 잉어과 담수어의 포획이 활발하였다. 이외에 장강유역에 서식하는 악어도 포획대상이 되었다. 장강유역은 수도작과 담수어로, 수변식물의 이용과 사냥이라는 다양한 대상을 이용하는 유기적인 생업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3) 한반도 지역
한반도의 신석기시대는 기본적으로 수렵채집사회이다. 각 지역별로 양상의 차이는 있지만 농경사회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수렵채집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바닷가를 중심으로 어로문화가 잘 발달되었다. 어로문화의 중심지역은 크게 서해안, 남해안 및 강원 영동, 동북해안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발달한 특징으로 인해 신석기 전기간을 통하여 주로 그물을 이용한 어로가 발달하였다. 그물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는 최대 1㎏이 넘는 대형 그물추들이 많은 편인데 이는 파도가 거친 바다라는 특성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그 크기로 보아 그물은 아마도 밀물과 썰물의 반복을 이용하여 갯벌에 고정식으로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서해안지역에서는 해안과 도서지역에 수많은 패총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굴이 중심을 이룬다. 조개류는 선사인에게 단백질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유용한 식량자원으로 역시 신석기 전기간을 통해 이용되었으며 주로 겨울을 중심으로 조개 채취가 이루어졌다.
남해안지역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해양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북부큐수와의 사이에 대한해협이라는 공통의 어장을 소유한 남해안 신석기인들은 다양한 어로문화를 발달시켰는데, 낚시어법, 그물어법, 작살어법 등이 대표적이다. 낚시는 남해안과 강원 영동지역에서는 결합식 낚시바늘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이라는 독특한 도구가 사용되었다. 이 낚시바늘은 돌로 만든 축부와 뼈로 만든 바늘을 끈으로 묶어 사용하는 것으로 환태평양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낚시도구이다. 작살은 돌과 뼈로 만들어졌는데, 자루에 고정시켜 사용한 것과 대상물이 박히면 촉부분과 끈으로 연결된 자루가 분리되는 분리식작살이 있다. 작살은 상어나 바다 포유류 등 가죽이 두꺼운 대상물을 포획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안에서 잡힌 대상어종은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돔류, 대구나리스, 농어나리스, 복어, 다랑어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많다. 동해안의 경우 실물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회유하는 연어나리스를 일시에 다량 포획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바다포유류로는 바다사자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강치위키백과, 돌고래, 고래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확인된다. 동북해안 역시 어로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서포항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포항유적위치에서는 이음낚시와 외낚시, 각종 작살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두만강하구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러시아의 보이스만문화와 자이싸노프카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단계에 역시 패총이 매우 발달하였다.
사냥은 단백질을 제공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한반도에서는 주로 해안가 패총에서 출토된 동물뼈를 통해 당시 사냥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많이 포획된 대상은 사슴으로 부산 동삼동 패총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동삼동 패총위치에서는 천여점이 넘는 사슴뼈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사슴나리스 다음으로 많은 것은 멧돼지나리스이다. 이 둘을 제외하면 너구리나리스나리스, 곰, 호랑이나리스, 개 등 다양한 동물들이 확인되지만 그 양은 미미한 수준이다. 즉 사슴과 멧돼지가 주요한 식료자원이었던 것이다. 사냥은 고기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가죽이나 털, 뼈 등 다양한 자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생업행위이다. 특히 사슴이나 멧돼지의 뼈는 낚시바늘이나 작살, 화살촉 등 각종 골각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사냥은 연중 행해지지만 여타 생업활동이 어려운 겨울철에 특히 많이 행해졌다. 사냥도구는 주로 활과 화살이었으며 일부 창이 확인된다.
신석기시대 채집활동의 증거는 도구를 통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채집활동은 특별한 도구 없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적에 남겨진 식물유체를 통해 그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은 도토리류이다. 한반도는 참나무류가 식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여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도토리류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남해안지역에서는 창녕 비봉리나 울산 세죽 유적 등에서 도토리 저장구덩이가 많이 발견되어 도토리가 집중적으로 이용되었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는 호두나 밤 등의 견과류가 보인다. 견과류는 보존이 용이해 유적에서 많이 남겨졌지만 남아 있지 않은 그 이외의 다양한 구근류나 열매류 등도 채집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은 이와 같이 도토리를 중심으로 한 채집활동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사냥과 어로를 통해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신석기 이른 단계를 제외하면 정착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자원의 다량 획득과 저장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저장은 선사인들이 집단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정착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자 전략이었다.
(4) 일본열도지역
일본열도는 약 1만년 전 대마난류가 동해로 유입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환경적으로도 온난화의 과정 속에서 새로이 형성된 삼림(낙엽활엽수림)에 적응한 동식물상에 대응해 인간집단들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일본열도에 처음 토기가 등장하고 새로운 석창과 석부가 등장하는 죠몽 초창기 단계(미꼬시바위키백과 문화 단계)는 바로 이런 시기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 죠몽인들은 점차 본격적인 정착수렵채집민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식량자원이 된 것은 물론 식물성 식량으로서의 도토리를 중심으로 한 견과류, 동물성 식량 중에서는 특정 시즌에 대량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중심으로 한 어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죠몽시대에 식량으로 이용된 견과류는 도토리류, 밤, 호두 등 다양한데, 도토리류는 일반적으로 탄닌성분을 제거하지 않으면 식용하기 어려우므로 탄닌제거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이 확보되는 것은 죠몽 중기 이후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필요없는 밤, 호두, 개암나리스 등은 죠몽 초창기부터 일찍이 적극적으로 채집되었다. 채집활동은 사냥에 비해 포획의 안정성이 압도적으로 높고 탄수화물을 제공해줄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므로 선사인들에게 기본적인 활동 중 하나이다. 특히 견과류 등과 같이 가을의 짧은 시기동안 수확해야 하는 경우는 집단의 일부만이 아니라 전체가 집중적으로 채집활동에 나섰을 것이다. 실제 죠몽 초창기의 유적에서는 이러한 견과류를 대량으로 저장하였음을 보여주는 저장시설이 발견되고 있다. 견과류는 곡류에 비해서 더 높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좋은 식량자원이며 또한 저장성이 높아 대량 채집 후 년간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하다. 견과류의 대량채집과 높은 저장성 및 칼로리는 죠몽인들이 정착을 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소이다. 죠몽 중기 이후 유적에서 대규모의 도토리류 처리시설(수장시설)이 나타나는 것은 견과류가 당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자원의 대량획득, 저장에 필요한 시설의 축조는 필연적으로 인간이 한 지점에 장기적으로 살게하는, 즉 정착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구석기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이 확립된 것이다.
사냥은 다른 동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로 사슴과 멧돼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활과 화살 이외에 함정을 이용한 사냥방법도 사용되었다. 함정사냥은 함정의 설치를 위한 초기노동력 투여가 높은 단점이 있지만 한번 설치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고, 함정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어 시간적으로도 유용한 장점이 있다. 연어류는 대량으로 회귀하면서도 포획이 용이하고 처리를 통해 보존이 용이한 장점이 있어 초기 죠몽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었다. 따라서 연어를 대상으로 한 하천어로는 죠몽문화 성립에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견과류와 어류 양자의 조합을 통해 죠몽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농경과 목축
농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과 목축은 고전적 정의에서 신석기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실제 유럽에서는 농경 시작 이후를 신석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지역에 따라 농경의 개시연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위도가 높은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신석기시대의 어느 때쯤부터 대부분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의 농경이 시작된다. 동아시아 농경과 목축의 전개과정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관련된 주요개념들에 대해 정의해두도록 하자.
농경(목축포함)과 관련된 주요 개념으로는 경작 또는 재배(cultivation), 馴化(domestication), 농경(agriculture)이 있고 이들은 서로간에 구별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작이란 인간의 행위적 측면을 강조한 개념으로 식료자원이 될 수 있는 대상물에 대해 어떠한 관리적 행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벼를 경작한다는 것은 논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며,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행위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작은 재배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자연적 숲에서 밤나무 이외의 경쟁종들을 베어내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밤나무의 번성을 가져와 밤의 수확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관리행위 역시 경작이라는 개념에 포함된다. 즉 경작은 대상물이 재배종인가 여부에 관련 없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순화 또는 재배종화는 이와는 달리 동식물 자체의 외형적, 유전자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야생종은 야생상태에서 살아가도록 적응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야생종의 생활주기에 개입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야생종의 형질이 변화되어 야생상태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순화라 한다. 예를 들어 야생의 벼나 보리 등은 알곡(씨앗)이 익는 기간이 길고 위쪽부터 순차적으로 익어가며 익으면 줄기에서 잘 분리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야생상태에서 자손을 번식시키기 용이하도록 적응한 결과이다. 그러나 재배종의 벼나 보리는 익는 기간이 짧고, 익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야생에서는 좋지 않은 형질(즉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형질)이지만, 수확이라는 면을 생각할 때 이용을 하는 인간에게는 유리한 형질이다(익자마자 잘 떨어져버리면 수확하기 어려움). 재배종의 경우 자손의 번식을 인간이 담당해주므로 이러한 점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즉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로 변화된 재배종은 더 이상 자연상태가 아닌 인간의 개입에 의해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하게 되는 형질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야생종의 생활주기에 인간이 개입하여 인간에 유리한 방향으로 형질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를 순화라 한다. 농경은 재배종을 이용해 경작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1) 황하 및 중국 동북과 양자강유역의 농경 및 가축사육 개시와 발전
중국의 화북지구에서는 아직 초기단계의 농경기원과 관련된 유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초기에 해당하는 하북성 남장두위키백과위치, 북경 동호림(東胡林) 유적 등에서는 다량의 타제석기와 갈돌, 갈판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토기 등이 확인되었지만 농경관련 식물유존체는 확인되지 않았고 대부분 야생의 동식물들이 확인되어 수렵채집 위주의 생업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남부지구에서는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이 층위적으로 알려진 유적들이 몇몇 알려져 있다. 이 중 초기의 농경 출현과정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적은 강서성 만년(萬年) 선인동(仙人洞)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과 적통배(吊桶环) 유적이 있다. 이 유적들에서는 하층에서는 구석기시대 최말기의 타제석기와 야생벼가 확인되었고, 상층에서는 재배벼로 생각되는 식물규산체가 확인되고 토기가 등장하고 있다. 식물규산체에 의한 재배벼 동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부에서 처음으로 도작농경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호남성의 옥섬암(玉蟾岩)유적위치에서는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원시고재배도(原始古栽培稻)와 함께 농경구로 볼 수 있는 괭이형 석기,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유적에서는 다양한 야생 동식물 유체가 확인되어 도작농경은 생업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야생벼가 출토된 하층은 기원전 80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고재배벼가 출토된 상층은 기원전 6000년(미교정) 무렵으로 측정되었다. 중국 남부지구에서는 이와 같이 아주 이른 단계에 야생벼를 이용하던 단계에서 재배벼로 이행하는 과정이 점차 알려지고 있다.
기원전 7500~5000년 무렵에 해당하는 신석기시대 전기가 되면 이전과 상황이 매우 달라져 중국 각지에서 본격적인 대규모 취락유적들이 발견되며 이와 함께 전형적인 농경문화가 확인된다. 유적은 초기의 유적들과 달리 주요 하천의 충적대지상으로 확대된다. 중국 요서지구의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문화, 하북 남부 중심의 자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하남성 중심의 배리강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산동성 북부의 후이문화위키백과위치, 관중지구 및 섬서 남부의 노관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키백과 등 황하유역과 중국 동북지구에서 많은 농경문화가 등장한다. 양자강유역에서도 동정호위치 지구의 팽두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항주만 남부의 과호교(跨湖橋)문화위치 등 여러 문화가 등장한다. 이제 황하와 양자강을 중심으로 조(粟) 중심의 전작문화와 수도작문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황하 중하류의 자산(磁山)유적에서는 조를 저장한 80여기 이상의 저장시설이 확인되기도 하였고, 양자강 중류의 팽두산문화 유적인 팔십당(八十塘)유적에서는 1만 점이 넘는 완전한 벼껍질과 알곡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농경도구로는 각종의 삽과 괭이 형태의 굴지구(堀地具)들이 다량 확인된다. 가축도 활발하게 길러져 이때가 되면 주로 돼지와 개, 소, 닭을 중심으로 한 가축사육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석기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5000~2600년 무렵이 되면 농경문화는 더욱 성숙하게 되는데, 황하중류의 앙소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하류의 북신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대문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동북지구의 신락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조보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홍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양자강 중류의 대계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굴가령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하류의 마가빈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송택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양저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조기 등이 대표적이다. 황하유역에서는 농경취락유적들의 분포밀도가 증대되고 규모도 확대된다. 앙소문화 강채유적은 이러한 취락유적의 대표격이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120여기의 집자리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가축우리, 환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덤이 정연하게 배치된 강채유적위치의 예는 성숙한 농경취락의 예를 잘 보여준다. 이제 각지에서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한 농경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배추 등 채소류의 재배 증거들도 확인된다. 양자강 하류의 마가빈 문화에 해당하는 초혜산(草鞋山)위치 유적에서는 기원전 4000년을 넘는 논 유적이 발견되어 가장 이른 단계의 경작유구로 알려져 있다. 논 유적은 관련된 수로 등 관개시설도 확인되어 발달된 수도작농경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4000년 이후가 되면 수도작농경이 산동 등 황하유역까지 확대되고 가축사육도 더욱 진전되어 돼지는 이제 부의 상징으로서 무덤에 하악골이나 머리가 부장되는 사례가 증가한다.
신석기시대 후기는 용산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로 대표되며 대략 기원전 2600~2000년 사이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하남용산문화인 왕만3기, 후강2기, 산서남부의 도사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섬서 중심의 객성장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장강유역의 석가하문화위치, 양저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생산력은 더욱 증대되어 쟁기가 활발히 사용되고 석산이나 석도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석겸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우리역사넷은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양저문화에서는 삼각형의 쟁기날이 보편적으로 확인된다. 인골과 돼지뼈에 대한 자연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이 시기 조를 중심으로 한 소위 C4 식물의 섭취량은 이전보다 훨씬 증가된 것으로 나타나 발달된 농경사회의 양상을 알게 한다. 특히 돼지도 조 등의 곡물을 사료로 섭취하였다는 것은 농업생산력의 증대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외에 주목할 것은 이 시기에 새로운 작물인 보리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석기시대 초기에 수렵채집민의 보조수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초기농경은 전기.후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화북의 조 중심 전작문화, 양자강유역의 벼 중심 수도작 문화라는 양대축을 형성하며 농경사회로 이행하였고, 벼농사의 확대, 가축사육의 증대, 도구개량에 의한 생산력의 증가, 보리라는 새로운 작물의 재배 등 성숙된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중국 신석기문화의 개화에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였고 이어지는 초기문명의 등장에도 밑거름이 되었다.
(2) 농경의 동아시아 확산
중국 대륙 내에서 황하유역과 양자강유역, 화남지구, 동북지역 등 주요한 농경의 발생지 및 중심지들에서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본격적인 농경문화가 형성되어 온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중국 내에서도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수도작 농경은 서서히 북상하여 산동까지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신석기시대 농경문화는 중국의 요동, 길림, 흑룡강, 러시아의 연해주, 한반도, 일본열도로 시차를 두고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중국 동북지역을 먼저 살펴보면 요하를 중심으로 요서지역에서는 전기의 흥륭와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문화단계부터 이미 농경이 시작되지만 요동지역의 경우는 이보다는 한단계 늦게 조나 기장 중심의 화북농경이 시작된다. 심양의 신락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에서 기장이 출토된 바 있다. 그러나 요동반도나 길림, 흑룡강성 남부 등 요서의 동쪽에 있는 지역들에 본격적으로 농경이 확산되는 것은 이보다도 더 늦은 신석기 중기 단계가 되어서이다. 요동반도나 요중지역의 소주산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 중층문화군에서는 농경관련 석기와 함께 돼지뼈도 다량 출토되어 농경과 가축사육이 중기 단계에 본격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4000년기 전반에 중서부지역으로 초기농경이 수용된다. 황해도의 봉산 지탑리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이나 마산리 유적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치에서 처음으로 따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형 석기와 같은 농경도구와 함께 곡물로서 조가 확인된다. 현재로는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가장 이른 단계의 농경 증거이다. 한반도에서는 이후 기원전 4000년기 후반이 되면 최남단의 부산 동삼동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문화재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삼동 패총위치에 이르기까지 조와 기장이 확인되고 농경도구도 함께 출토되어 전국적으로 초기농경이 확산됨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초기농경은 화북지역의 특징적인 형태인 따비형석기와 조 및 기장을 세트로 하여 수용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길림성 동부, 흑룡강성 남부, 러시아 연해주 등 요서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극동지역에서도 기원전 4000년기 후반이 되면 조와 기장을 중심으로 한 초기농경이 수용되는 양상이 보인다. 화룡 흥성, 금곡, 북한의 서포항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포항위치 3, 4기, 러시아 연해주의 자이싸노프카문화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단계의 크로우노프카 I 유적 등에서는 기장 등 곡물이나 따비형석기 또는 곰배괭이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와 같은 농경관련 석기가 출토되고 있어 초기농경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다. 이 지역의 초기농경 역시 요서지역과 관련이 깊다. 조 중심의 화북형 농경은 한반도나 중국 동북, 러시아 연해주 남단과 같이 기존에 수렵채집어로를 중심으로 한 생업을 영위하던 집단들이 커다란 생업상의 변화나 도구상의 개혁, 경작지 조성의 어려움 등이 없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수용할 수 있는 농경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들에서 수용된 농경은 그들의 생업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았으며 여전히 중심은 수렵채집어로였다. 초기농경은 이러한 생업에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일본열도의 경우는 죠몽시대위키백과 만기를 제외하면 본격적인 곡물 농경의 양상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른 시기부터 조롱박 등의 비식료자원에 대한 농경, 경쟁식물을 제거하는 것을 통한 유용작물의 관리와 같은 경작행위 등은 존재하였다. 일본 산나이마루야마[山內丸山] 유적문화유산DB(일본)위치에서는 밤나무의 의도적인 관리행위가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수렵채집민에 의한 채집의 연속선상에 있었던 것으로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양상으로 볼 수는 없다. 죠몽 후기단계에 한반도와 관련하여 쌀농사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한반도에서의 쌀농사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아직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처럼 중국의 주변지역으로 농경이 확산되는 과정은 신석기 중기에 이루어지지만 수용지에서 농경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농경사회로 이행한 예는 없었으며 한반도나 연해주, 일본 등에서는 여전히 신석기시대 전기간을 통하여 수렵채집이 중심을 이루는 사회가 유지되었다. 또 한가지 이들 수용지에서는 돼지의 사육과 같은 가축사육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데, 이 역시 농경사회로 이행하지 않은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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