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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의 돌감

 
 

2. 석기의 돌감

 

석기에 사용된 돌감으로는 한국에선 석영암위키백과으로 대표되는 석영계와 흑요암위키백과이나 응회암위키백과 등으로 대표되는 비석영계로 나눠진다.
석영암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골고루 이용된 반면에 비석영계인 응회암이나 안산암위키백과 등은 후기구석기에 가까워지면서 이용되기 시작한다. 이렇듯 돌감이용에 시간적 차이가 보이게 되는 것은 어째서 일까?
한국의 구석기시대에 보이는 돌감을 통해 인류의 지적 발전과 확산의 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겠다. 돌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질로 과거의 인류에게도 역시 같았었는데 도구를 만드는 소재로 이용하는 데는 인류의 발달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문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 환경을 더 잘 이해하고 이용해온 역사가 있다. 구석기시대의 인류도 주어진 환경아래 시간을 두고 하나씩 하나씩 개발을 해온 진화론적 단계를 보여준다.
한반도에 있었던 인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감인 석영암계를 일반적으로 이용하였다. 정확히 얘기하면 석영맥암이나 규암위키백과으로 거의 모든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이런 돌감이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맞춰 좀더 상세하게 그 사용내역을 구분하면 석영암계에서 화성암계인 유문암위키백과, 응회암위키백과, 혈암(shale)위키백과, 그리고 흑요석위키백과 등으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인류가 살아가면서 의식적인 선택과 활용을 하였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으로 진화론적인 단계를 밟아간다 할 수 있다.
돌감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면 구석기시대의 전기에는 위에서 말한 석영암계의 돌감을 이용하였으나 후기로 가면 흑요석과 같은 특별한 지역에만 존재하는 돌감을 개발하게 된다. 흑요석은 화산이 분화할 때 생성되는 검은색의 천연유리라고 이해되는데 돌을 깼을 때 그 변이 날카롭게 생성되는 특성으로 구석기시대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이용되게 된다.
백두산 지도 은 한반도에서는 유일한 흑요석 산지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흑요석이 출토되는 유적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백두산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한국의 전라남도 지역의 장흥신북에서 출토된 흑요석이 백두산에서 가져온 것으로 산지동정을 한 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사실은 약 1,000㎞ 정도의 거리를 이동권으로 한 구석기시대의 삶의 공간적 지역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과 함께 구석기시대의 인류가 의도적으로 돌감을 선택해서 이용했다는 중거로는 유적 주변에 산재한 석영암의 이용과 화성암의 이용에 있어 중요도에 차별을 두고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석기중에 중요하며 휴대에 적합한 도구를 만드는데 있어 화성암계의 돌감을 선택적으로 사용했던 점을 들어 알 수 있다. 한 사례로 전라남도 월평이나 경기도 호평동과 같은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석영암을 석기전체의 비율에서는 90%정도의 비중으로 이용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석기를 제작하는데는 화성암계의 돌감이 90%이상의 비율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점은 선택적 활용이라는 점에서 구석기시대의 인류의 지적 발달조차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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