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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인류

 
 

1. 중국의 고인류

 

오늘날 중국은 경제 개발의 힘을 빌려 폭발적으로 고고학적 발굴 건수가 늘고 있는데 그 여파로 인한 방대한 양의 고고학적 자료가 매일매일 발견 되고 있다. 알고 있듯이 중국은 여러 소수민족을 껴안고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아시아에서 많은 지리적 공간이 중국에 해당된다. 아프리카를 수 백 만 년 전에 떠난 인류가 도착한 그 끝 부분에 해당되는 아시아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을 통해 이동하여 한반도의 한국과 일본에 도달하게 된다. 기존의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중국에는 광대한 지역에서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많은 화석인류의 증거를 살펴볼 수 있다.
중경 무산위키백과 지도 , 운남원 지도 등의 시기가 이른 플라이스토세 초기 또는 더 이른 시기에 속한 고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아쉽게도 유물이 풍부하지 못하여 여러가지 의심을 받고는 있지만 초기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로써 인식하였다. 오늘날엔 그러한 자료들은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다고 정정이 되었지만 한반도에서 아직 출토되지 않은 고인류의 자료가 이전부터 발견되었던 점들은 충분히 중요한 사실들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중국에서 ‘남쪽의 민원숭이(Australopithecus)’는 아직 발견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서남 지역에 마이오세(Miocene)위키백과 말기에서 플라이오세(Pliocene)에 이르는 층위 내에서 풍부한 고원(古猿) 화석이 발견된 점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초기 인류의 기원지에 관련된 최근의 연구 흐름은 아프리카 기원론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다지역기원론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도 뿌리깊게 학계를 이끌고 있는 그룹 속에 포함되어 있다. 초기의 인류가 약 600만 년에 가까운 시점에 원숭이들과 분리하여 최초의 사람속(Hominidae)위키백과의 그룹이 아프리카 동쪽에서 남부의 넓은 지역 사이에서 생활 하였다. 그 이후 아프리카 동부에 대략 180만 년 전, 또는 더 이른 시기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흐름과는 다르게 중국 내에서 원숭이로부터 인류진화의 완전한 계통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그룹이 있다.
중국 내에서는 지질 제3기 마이오세 말부터 제4기 플라이스토세 초기까지의 옛원숭이(古猿)와 초기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어 초기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중요지역이 되고 있다. 초기인류의 기원과 관련된 시기, 지점 및 환경, 배경 등 문제는 더 많은 지질학적 배경과 인류학적 자료의 증거를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인류의 기원과 관련된 과거의 사실들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중국 내에서 플라이스토세 초기(780000~1800000 B.P.)의 인류화석이 강남(江南)에서도 일부 발견됐지만 확실한 증거는 장강(長江) 이북지역이다.
중국의 북부지역에서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초기단계 호모 에렉투스의 체질적 특징을 지닌 공왕령인(公王嶺人) 지도 의 표본 외에, 근년에는 니하만(尼河彎) 지도 분지에서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중국 최초의 인류의 형질인류학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진가와(陳家窩) 지도 와 공왕령인을 합쳐 남전인(Homo erectus lantienensis)위키백과이라고 부르는데 진가와의 아래턱의 시기는 70.60만 년 전이고, 공왕령의 두개골 연대는 110만 년 정도로 플라이스토세 초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류로 얘기되고있다.
아프리카나 유럽 및 서아시아의 플라이스토세 중기(128000~780000 B.P.) 고인류의 상황을 살펴보면 에렉투스의 분포된 시기와 공간은 일정한 제한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전형적인 에렉투스의 화석 표본은 없지만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에렉투스의 분포가 더욱 보편적으로 플라이스토세 중기 기간 전기간에 걸쳐 발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동쪽과 서쪽 사이에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형질 인류학적 특징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고인류학자들이 플라이스토세 중기 구대륙 각지에서 발견된 고인류화석의 분류에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동아시아와 구대륙 서쪽 양지역의 고인류의 형질에 있어 뚜렷한 특징이 있다.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아프리카와 유럽에 있었던 고인류 집단은 밀접한 혈연적인 관계에 있다. 두개골에서 보이는 특징을 보면 모두 상대적으로 돌출된 뇌정골과 뇌의 용량이 보편적으로 크다. 눈 위의 눈썹 밑에 있는 눈두덩뼈도 여전히 거칠고 역팔자형이다. 앞이마는 넓어지고 얼굴 면적은 커지며 뒷머리는 원형으로 변하였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같은 시기의 인류는 거칠고 큰 일자형 눈두덩뼈를 가지고 있다. 눈두덩뼈에서부터 뒷머리 뼈와 시상척 등이 구성된 머리 부위는 증가된 결구를 가지고 있다. 앞이마는 낮고, 비교적 넓은 뇌정골 바닥 및 비교적 두터운 뇌정골 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에 대한 많은 인류학자들이 다른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의 플라이스토세 중기 인류는 아직까지 지속적으로 에렉투스로 분류하고 있지만 구대륙 서쪽의 사람들은 더욱 복잡하게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하게 됐는데 근래에 그들을 하이델베르그(Heidelberg)위키백과 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북쪽에서 발견된 대려인 지도 과 금우산인(金牛山人) 지도 도 같은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분류 특징이 명확한 탕산(湯山)인위키백과 지도 의 두개골 표본에서 코뼈가 높이 솟아있고, 위턱 뼈가 공처럼 돌출된 것은 유럽의 집단과 형질인류학적 특징에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북경대학의 王幼平은 동양과 서양의 인류집단이 모종의 교류에 의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하였다(王幼平 2008RISS).
중국의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으로는 북경원인(Homo erectus pekinensis)위키백과을 배출한 주구점(周口店)위키백과 지도 유적을 들 수 있다. 북경에서 남서방향으로 48㎞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유적으로 주구점 용골산에 위치해 있는 유적이다. 유적은 1921년 스웨덴의 지질학자 안데르손과 그랜저가 주구점에서 화석을 발견하였는데 이가 유명한 북경원인이다. 1927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10년간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1929년 배문중(裵文中)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어 그해 북경원인의 제1두개골을 발견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 후 수년 동안 지속된 발굴에서 손가락뼈와 같은 다량의 화석과 석기가 출토되었다. 그러나 북경원인은 중일전쟁 중에 분실되었으나 다행히도 분실 이전의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49년 이후에 다시 주구점유적은 여러차례의 발굴을 실시하여 새로운 에렉투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이어진 많은 추가발견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북경원인과 관련된 연구가 계속 될 수 있는데 수십년의 발굴을 통해 주구점 제1지점에서는 모두 40개체의 원인 화석이 확인되었다.
플라이스토세 중기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존재했었던 북경원인은 에렉투스가 등장한 이후 수십만 년 또는 250만 년전 부터 시작된다는 중국의 플라이스토세의 단위를 인용한다면 수백만 년이 지난 이후의 에렉투스이지만 두개골은 많은 원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북경원인을 얘기하는데 있어 남전인(藍田人)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인류의 화석인데 북경인의 1075㏄에 달하는 뇌 용량은 남전인 보다는 많지만 현생인류에 비교한다면 아직도 작은 상태에 불과했다. 또한 두개골의 높이는 남전인 보다는 높지만 현생인류에 비해 상당히 낮다. 앞이마도 비교적 낮고 두개골 상부는 좁으며 그 아래는 넓다. 하지골은 현대인의 형태를 갖고 있으며, 직립보행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넓적다리능선을 지니고 있다.
주구점 제1지점의 퇴적은 상부와 하부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상부층의 화석은 하부층 출토 원인에 비교해 뇌 용량도 1140㏄이며 두개골 벽도 얇고 이마뼈도 거칠지 않으며 뒷머리 둥근 부위도 수축되어있다. 이러한 모습은 시대에 따른 진화의 형태를 나타낸다 할 수 있겠다. 북경원인의 복원된 모습에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신장이 156~157㎝이며 22개체 중에 14세 이하에 죽은 개체가 15, 15~35세와 40~45세가 각 3개체, 50~60세가 1개체로 나왔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수명이 길지 않았으며 생활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북경원인의 존재는 한반도에 원인(原人)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시점을 던진다고 볼 수 있다. 북경원인은 불을 사용하였으며 육류를 먹었고 동굴을 주거지로 한 집단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오늘날 현존하는 우리의 직계조상은 아니지만 아프리카로부터의 긴 여정을 밝히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중국의 플라이스토세 후기(10000~120000 B.P.)의 초기 또는 약간 늦은 시기에 속하는 인류로는 정촌인(丁村人)위키백과 지도 , 허가요인 지도 , 마파인 지도 , 장양인 지도 , 협수인(浹水人)과 유장인 지도 등이다. 전통적인 인식에 의하면 이들은 초기 네안데르탈인(Homo sapiens neanderthalensis)으로 일괄하여 분류되고 있으며 과도기에 등장했던 인류로 분류를 하고 있다. 근래의 고고학 자료와 연대학 연구의 진전에 따라 나타난 바에 의하며 초기 네안데르탈인의 체질 특징은 일반적으로 에렉투스와 사피엔스 사이의 중개자이다.
중국의 초기 네안데르탈인의 자료는 형질 인류학적 특징에 의하면 초기와 후기의 두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초기에는 소현인(巢懸人), 금우산인, 대려인 등이 포함되는데 그시기는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후기에서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초반까지다. 후기의 대표적인 인류로서는 마파인, 정촌인, 허가요인 등으로 그 시기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초반이다.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중반에 이르러서 유강인(柳江人) 등 비교적 이른 시기의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시작한다(王幼平 2008RISS).
중국의 초기 네안데르탈인과 구대륙의 기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같은 단계의 고인류는 동일한 특징을 가졌다. 뇌용량의 증대, 뇌정골의 높이 증가, 이마뼈가 일자형에서 팔자형으로 변하며 귀밑 뼈도 높아지고, 아래턱 관절도 넓고 얇게 되며 뒷머리 뼈부위와 소뇌도 작아진다. 또한 얼굴뼈도 약하게 되며 턱의 돌출도 약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초기 네안데르탈인에 비하여 앞니와 얼굴 부위가 감소, 이마뼈의 감소, 뇌정골도 높고 크게 되었다. 뇌의 용량과 신장은 이미 당시 인류의 변형 범위내에서 증가되었다.
시기가 더욱 늦은 인류와 비교하면 이시기의 비교적 이른 사피엔스에게는 아직도 원시적인 특징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데, 두개골이 거칠고 뼈들은 비교적 발달되었으며 이마뼈와 눈두덩뼈는 비교적 현저해졌다. 두개골, 다리뼈가 두터워지고 다리뼈의 골수 구멍은 비교적 가늘어졌다.
중국내에서 발견되는 초기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진화가 이루어지는 도중에도 외부와의 약간의 제한적인 교류가 있었다고는 하나 중국내의 고인류에서 이어지는 계보를 따르는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시기는 자연환경이 시기별로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시기로 세계적인 규모로 지역차를 보이는 시기이다. 삽모양의 앞니 등이 중국에서 발견된 초기 네안데르탈인의 앞니와 동일한 특징을 갖추고 있다. 얼굴부위의 특징은 코뼈가 심하게 유기되지 않았으며 높은 관자놀이 뼈와 비교적 넓은 얼굴 모양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몽골로이드의 특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유장인 지도 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피엔스 사피엔스(新人)로 출현 시기는 50000 B.P.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아직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보고자의 견해를 존중한다면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최초의 신인이라 하겠다. 이시기에는 지역적으로 특징을 달리하는 인류의 화석이 출토되고 있는데 초기 네안데르탈인 또는 에렉투스로 분류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 쟈바의 앙동인(昻棟人)과 하북 협수인이다.
플라이스토세 후기가 되면 후기 네안데르탈인으로 분류되는 인류가 빠른 속도로 확산이 된다. 이 단계는 40000~30000 B.P. 무렵으로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가장 최근의 단계로 오늘날의 우리들을 포함하는 단계이다. 중국내에서 발견된 이 시기의 유적의 수를 살펴 보면 대략 40군데 정도이다.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 불리는 현생인류가 등장 하는 단계에 연결되는 인류로 1856년 8월 독일의 Neander 계곡에서 채석중이었던 인부에 의해 Feldhofer Grotto 지도 동굴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뼈가 발견되었다. 특이한 형질에서 오는 독특함이 한동안 진위여부를 불러올 정도였으나 이들이 중요한 진화의 한 단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학자는 없어진 지 오래다. 이들은 초기에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호모 사피엔스를 일컫는 일반적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유럽과 서아시아에서만 발견되는 제한된 지역성을 가지고 있는 쪽으로 개념 정리가 되어있는 형편이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라는 명칭을 사용함에 있어 ‘옛 사피엔스(archaic Homo sapiens)’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시기의 인류의 자료는 세계곳곳에서 많은 형태의 자료가 축적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은 비교적 좁은 시간폭 안에서 여러 종류가 발견되었기에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시기의 결정에 섬세한 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시기의 고인류 화석들은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분류를 하여 아시아대륙,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중근동 및 유럽의 5개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이선복 1988RISS).
이 옛사피엔스에 관련된 자료는 주로 유럽에 집중돼 있으며 그들은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서 볼 수 있는 진화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150000~30000 B.P. 에 걸쳐 존재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발달된 뇌 용량의 증가는 1,000~1,600㏄(평균 1,450㏄)에 달했으며, 체중은 남자가 63.5㎏, 여자가 45.4㎏, 신장은 남자가 168㎝, 여자가 160㎝로 아주 건장한 근육질의 특징을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은 르발로와 기술(Levallois technique)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위키백과라고 불리우는 석기 제작기술을 지녔으며 수렵채집 활동을 하며 살았었다. 그들은 1997년에 실시된 미토콘드리아 DNA의 유출에 의한 연구에서 현대인의 각종 집단에서 보이는 nucleotide위키백과의 차이가 8개 부위에 불가한 것과 비교하여 네안데르탈과 현대인 사이에서는 28개 부위에 차이가 보였다. 이것은 양자가 유전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이 현대인의 조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현대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은 현대인과 함께 공존했었던 시간 폭을 지니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한지역에 이웃으로 존재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싸움의 대상이 되기도한 증거를 유적에 남기기도 하였다. 중동의 한 유적에서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석기가 네안데르탈인의 뼈에 박힌 채 출토되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절멸의 원인이 현대인의 등장에 의한 절멸이라는 논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다. 최종빙기의 추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절멸을 했을 수도 있으며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에 면역체계가 다른 네안데르탈이 먼저 절멸을 했을 수도 있다. 네안데르탈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가까운 현생인류의 조상이며 과거를 알 수 있는 실마리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많은 미스테리를 인류학사에 남기고 또다른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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