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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독도를 불법 편입했을까?

 
 

일본은 왜 독도를 불법 편입했을까?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1904년에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대한 제국 정부에 강요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지역을 임의로 사용하는 권리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러시아 함대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등에 망루를 설치하였다. 러일 전쟁 당시 울릉도와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눈을 뜬 일본은 이전에 여러 번 일본 영역 밖의 무인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경험을 이용해 독도를 편입할 기회를 노렸다.
이때 독도의 강치 [주001]
각주 001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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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과, 바다사자아과, 강치 속으로 분류되는 포유동물이다. 강치는 가죽과 식량, 등불용 기름 등으로 쓸 수 있어 큰 수익을 내는 해양 생물이었다.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독점한 일본 어민들의 남획으로 인하여 독도의 강치는 멸종되기에 이르렸다.

잡이를 목적으로 시마네 현의 수산업자 나카이 요자부로가 한국 정부에 독도 이용 독점권을 요청할 계획으로 그 절차를 일본의 관료들과 의논하였다. 그는 1904년 9월 일본 정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여 나카이 자신에게 임대해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 때 일본 내무성은 “한국령으로 보이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할 경우 제국주의적 침탈 야욕을 의심받을 수 있다.”라며 청원서를 기각하였으나 외무성은 “독도망루를 세우고 무선 또는 해저 전선을 설치하면 적함을 감시하는 데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영토로 편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본문과 사진을 바탕으로 1905년 당시 일본이 독도를 불법 점유한 군사적, 경제적 이유에 대해 친구들과 토의해 보자.

 
 
 
 
 
정답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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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적 이유 :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독도에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는 망루를 설치하여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 경제적 이유 : 독도에서 일본인 나카이 요자부로 등이 강치잡이를 독점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일본은 ‘독도’를 뭐라고 불렀을까?

 

· 1905년 이전까지 일본은 독도를 ‘마쓰시마(松島)’, ‘랑코 도(리앙쿠르 록스의 일본식 명칭)’ 등으로 불러 명칭을 통일하지 못했으나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 이후부터 독도의 이름을 ‘다케시마(竹鳥)’로 변경했다. 일본 군함 니타카 호의 기록(1904년 9월 25일)에 의하면, “리앙코루도 바위, 한국인은 이를 독도(獨島)라 쓰고 우리 일본 어부들은 ‘량코 도’라고 호칭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독도를 강제 편입하기 전에 이미 한국인들이 ‘독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일본 내각은 이 청원서에 의거하여 1905년 1월 28일 ‘무인도 소속에 관한 건’으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호칭하고 시마네 현 소속 오키의 도사(島司)가 관할한다.”라고 결정하였다. 이어 2월 22일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 [주003]
각주 003시마네 현 고시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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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보 등에 게재되지 않았으며, 원본 또한 부재하다.

’로 이를 고시 [주004]
각주 004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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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관이 결정한 사항 등을 널리 일반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행위(공고)의 형식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법규로서의 성질을 갖지 않는다.

했다. 일본 정부는 대한 제국 정부에 아무런 문의 없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일방적으로 편입하였다. 또한 이를 중앙 정부의 관보에 싣거나 이해관계 당사국인 대한 제국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한 제국 정부는 1년이 지나도록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905년 5월 동해 해전에서 일본 함대가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여 전세는 일본으로 기울었고, 이 과정에서 독도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일본은 1905년 7월 독도에도 망루를 건설하여 울릉도, 독도를 거쳐 일본 시마네 현의 마쓰에로 연결되는 군용 통신선 체계를 완성하였다. 일본은 러시아와 포츠머스 강화 조약을 체결한 뒤 1905년 11월 대한 제국을 강압하여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외교권을 빼앗아 갔다.
1906년 3월 시마네 현 관리들이 울릉도에 와서 울도 군수 심흥택에게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 사실을 알렸다. 이에 놀란 심흥택은 3월 29일 강원도 관찰사 서리 겸 춘천 군수 이명래를 거쳐 대한 제국 정부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니 섬의 형편과 일본인의 행동을 잘살펴 보고하라.”라고 지령을 내렸다(1906년 5월 10일). 그러나 대한 제국 정부는 이미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게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된 상태여서 일본에 항의할 수가 없었다. 다만, “대한매일신보”(1906년 5월 1일), “황성신문”(1906년 5월 9일), 유생 황현이 일본의 독도 침탈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일본 내각의 독도 편입 결정문
- 결정문 중에 “다른 나라가 이 섬을 점유했다고 인정할 만한 형적이 없다.”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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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각의 독도 편입 결정문

    결정문 중에 “다른 나라가 이 섬을 점유했다고 인정할 만한 형적이 없다.”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마네 현 고시 표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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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네 현 고시 표지문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심흥택의 보고 기사
- ‘본군소재 독도’라고 적고 있어 독도가 울도군 소속의 땅임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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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심흥택의 보고 기사

    ‘본군소재 독도’라고 적고 있어 독도가 울도군 소속의 땅임을 분명히 하였다.

울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
울도 군수 심흥택씨가 내부에 보고하되, “일본 관원 일행이 본군에 와서 본군 소재 독도는 일본에 속한 땅이라 자칭하고 지역의 넓이, 호구와 농지 면적을 일일이 적어 갔다.”라고 했다. 내부에서 지령하기를 “유람하는 길에 지계와 호구를 적어 간 사실은 괴이할 것이 없지만 독도가 일본에 속한 땅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그럴 이유가 없으니 이번의 보고가 매우 놀랍다.”라고 했다고 한다.
- “대한매일신보” 1906년 5월 1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옳지 못한 이유

 

다음은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에 이용되는 자료이다.
 
“북위37도 9분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 섬으로부터 서북 85해리(157Km)에 있는 도서는 ‘다케시마’(죽도)라고 이름 짓고 본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
-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1905년 2월 22일)
 

 

 위에서 제시한 자료와 교재의 본문을 토대로 친구들과 토의하여 다음의 문제점2, 문제점3을 완성해 보자.

 
 
 
 
 
정답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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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2.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의 절차상의 문제점
→ 당시 관보 등에 게재되지 않아 국내외적으로 법적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문제점3.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라는 일본 주장의 문제점
→ 대한 제국이 이미 1900년에 칙령 제41호를 통해 법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규정하여 주인 없는 땅이 아니었다.


 

주 001
물개과, 바다사자아과, 강치 속으로 분류되는 포유동물이다. 강치는 가죽과 식량, 등불용 기름 등으로 쓸 수 있어 큰 수익을 내는 해양 생물이었다.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독점한 일본 어민들의 남획으로 인하여 독도의 강치는 멸종되기에 이르렸다.
주 003
당시 관보 등에 게재되지 않았으며, 원본 또한 부재하다.
주 004
행정기관이 결정한 사항 등을 널리 일반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행위(공고)의 형식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법규로서의 성질을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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