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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 정부는 울릉도 개척에 나섰을까?

 
 

왜 조선 정부는 울릉도 개척에 나섰을까?

 

을릉도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 1882년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이 울릉도에 체류할 때 새겼다.
이규원은 조사한 뒤 ‘울릉도 검찰 일기 계초본’과 울릉도 지도인 ‘울릉도 외도(外圖)’와 ‘울릉도 내도(內圖)’ 고종에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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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릉도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1882년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이 울릉도에 체류할 때 새겼다.
    이규원은 조사한 뒤 ‘울릉도 검찰 일기 계초본’과 울릉도 지도인 ‘울릉도 외도(外圖)’와 ‘울릉도 내도(內圖)’ 고종에게 올렸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 정부는 울릉도 일대에 수토 정책을 유지했으나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인들도 몰래 나무를 베어 가거나 전복을 채취하는 등 불법 침탈 행위를 벌였다. 1880년대 초 일본인이 울릉도에 송도(松島)라고 적은 푯말을 세워 놓은 사실을 알게 된 조선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사 작업에 착수하였다. 1882년 4월 고종은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여 울릉도와 주변 섬을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이규원의 보고를 받은 고종은 울릉도 개척을 명했고, 1883년부터는 주민들이 정식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개척민에게 세금을 면제해주고 배 만드는 일을 허락하는 등 우대 정책을 실시하여 이주를 장려하는 한편, 김옥균을 ‘동남제도 개척사’로 임명하여 동남해안 각 고을을 살펴보고 개척하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조선 정부가 울릉도를 비롯한 주변 도서를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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