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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정부는 독도를 어떻게 보았을까?

 
 

메이지 정부는 독도를 어떻게 보았을까?

 

1)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1870년)
 
죽도(竹島: 울릉도)·송도(松島: 독도)가 조선에 속하게 된 사정
송도(독도)는 죽도(울릉도) 옆에 있는 섬입니다. 송도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기재된 기록이 없지만 죽도에 관해서는 원록 연간 [주001]
각주 001원록 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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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1704년

(元祿年間)에 주고받은 서한에 기록이 있습니다. 원록 연간 이후 한동안 조선이 거류하는 사람을 파견하였으나 이제는 이전처럼 무인도가 되어 있습니다. 대나무나 대나무보다 두꺼운 갈대가 자라고 인삼도 저절로 나며 어획도 어느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설치된 최고 통치 기관인 태정관은 조선의 사정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외무성을 통해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정탐을 시작하였다. 1869년 12월에 외무성 관료 3명은 조선에 파견되어 부산에 도착한 후 초량의 왜관에 머물며 조선의 사정을 염탐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870년에 작성된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에는 마지막 항목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염탐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2) 태정관 지령(1877년)
 
품의한 취지의 죽도(울릉도) 외 일도(一島: 독도)의 건에 대해 본방(本邦,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메이지 10년 3월 29일
 

일본 내무성이 지적(地籍: 토지기록부)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하여 ‘죽도(울릉도) 외 일도(一島: 독도)의 지적 편찬에 관한 질의’를 작성하여 메이지 정부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에 제출하였다. 이에 1877년 3월 태정관은 질의서를 검토한 후 도쿠가와 막부와 조선 정부간 교섭 결과를 근거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 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문서를 태정관 지령이라고 한다.
기죽도약도(18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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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죽도약도(1877년)


 
태정관 지령과 관련하여 일본 내무성 질의서에 첨부된 지도인 ‘기죽도약도’에서는 독도가 당시 일본이 부르던 ‘송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2016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수정을 거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독도 관련 기술 중의 일부이다. 교재에 나온 일본 측 자료를 근거로 이 내용에 반박하는 글을 500자 내외로 써 보자.

 
 
‘다케시마’는 오키 제도의 북서 약 158km의 일본해상에 있는 군도로, 시마네현 오키노시마쵸에 속해 있다. 이미 에도 시대에 일본은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립하였고……
- 이궁서점, 지리A 교과서
 
 
 
 
 
정답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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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태정관 지령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내용 등으로 작성한다.


 

주 001
1688~17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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