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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지역 고구려 산성의 분포와 특징

 
 

황해도 지역 고구려 산성의 분포와 특징

 

고구려인들은 훌륭한 문화재를 창조하였는데 오랜 전투경험에 기초하여 지형 조건에 맞 추어 견고하게 쌓은 고구려의 성곽이 그 중 하나다. 고구려가 보여준 성곽 축조기술은 고대 동북아의 문화발전뿐 아니라 군사기술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독특하고 견고한 성곽은 외래 침략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황해도 지역의 고구려성들은 크게 종심 방어성, 지역 방위성, 해안 방어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종심 방어성 체계에 속하는 성으로는 평양–개성 방향, 평양–이천 방향, 사리원–해주 방향에 있는 성들이다. 평양성에서 남쪽으로 황주–사리원–봉산–서흥–평산–금천–개성 방향의 기본 도로 주변에는 황주 덕월산성, 봉산 휴류산성과 태봉산성, 서흥 대현산성, 평산 태백산성 등이 일정한 사이를 두고 분포하고 있다.
황주성은 평양에서 남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남쪽 방어위성이다. 『증보문헌 비고』에는 치가 1,288개 있었다고 하며 『황주읍지』에는 사혈이 1,288개, 포혈이 3,051 개 있었다고 한다. 『해서읍지』 황주군영조에는 5개의 못과 10개의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황주는 고구려 때 동흘군이었고 통일신라 시기에는 취성군이었다.
휴류산성은 평양으로 통하는 기본 통로를 막아선 정방산줄기(자비령 산줄기)의 서남쪽 에 축조된 관문성으로 태봉산성과 함께 은파, 봉산, 서흥 방면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흥군 고성리에 있는 대현산성은 고구려 시기의 오곡성으로 평양–개성 사이 주요 도 로와 함께 신계, 이천, 평강 방향의 통로들, 재령, 린산, 신원을 통해 서해로 통하는 통로 들이 지나간 교통상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 대규모 성이다. 『동국여지승람』과 『서흥읍지』 에는 성의 둘레가 각각 2,238척, 3,880보로 되어 있다.
태백산성은 평산군 산성리의 예성강가에 축조되어 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시기에 대곡군이었으며 기록에는 사혈이 1,031개, 포혈이 1,036개 있었다고 한다. 이 성은 개성으 로 통하는 주요 도로와 서해안으로 통하는 도로들을 차단하고 있으며 예성강을 자연적인 해자로 하여 축조되어 방어력이 매우 강했다.
황해도 지역의 지역 방위성이면서 종심 방어성 체계에 속한 성으로는 평양–상원–연산–수안–곡산 방향으로 통한 기본 도로의 주변에 축조된 장새성, 방원진성, 무갈리성 (두대동성), 문성진성, 달보산성을 들 수 있다. 장새성은 연산읍에서 동남쪽으로 약간 떨 어진 성재산에 위치한 석성으로서 평양–원산 도로뿐만 아니라 강동–성천 방향 도로와 흘동–곡산 방향 도로, 수안–신계 방향 도로들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 방원진성은 연산–수안 사이 기본 도로의 협곡지대에 쌓은 차단성이다. 무갈리성은 수안군 용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안–곡산 방향의 도로를 장악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쌓은 성이다. 문 성진성은 곡산군 청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곡산–신평 도로와 곡산천, 남강 상류를 차 단하고 있는 매우 유리한 곳에 축조된 고구려의 성이다. 곡산군은 고구려 대곡군 십곡성 현이었으며 문성진성은 일명 십곡성으로도 불리웠다. 달보산성(달해산성)은 신평군 생양 리 달보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성진성과 함께 남강으로 흘러드는 두무천과 평양–원산 도로를 차단하는데 매우 유리한 위치에 쌓은 성이다.
황해도 일대 지역 방위의 중심성이면서 한때 고구려의 부수도였던 장수산성은 신원군 아양리에 있다. 이 성은 고구려 시기 한성이었으며 남평양성이었다. 산성의 앞에는 도마 동토성이 있고 아양리의 넓은 벌에는 평지의 궁성이었던 아양리토성이 있다. 장수산성 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 남부의 해안 방어성들로는 태탄의 오누이성, 옹진의 옹천성, 강령 고읍성, 해주 수양산성, 연안읍성과 봉세산성, 배천의 치악산성 등이 있다. 황해도 지역 서부 일대에는 지역 방위성으로 구월산성이 있고 해안 및 강안 방어성들로 풍천성과 용연읍성, 금복리성이 있다.
위에서 본 종심 방어성 체계에 속하는 성들은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전 시기인 4세기 경에 축조된 성들로서 처음에는 지역 방위성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본격화되고 고구려가 황해도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서부터 수도 평양성을 보호하 기 위한 종심 방어성들과 외곽 방어성으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고구려의 남평양 성이었던 장수산성은 평양–해주 방향, 평양–배천 방향, 평산–개성 방향의 주요 도로 들을 장악하고 해안 방어성들을 전반적으로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구월산성은 대동 강 하류와 서해안 일대 안악, 재령, 신천, 삼천, 용연, 은률 등지의 도로와 넓은 벌들을 장악하고 있는 지리 지형상 유리한 위치에 축조된 견고한 성들이다.
황해도 지역 고구려성 방어 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해안 방어 체계이다. 고구려는 해안 방어를 강화하는데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들에 많은 해안 방 어성들을 쌓았으며 긴밀하게 연계하여 하나의 거대한 성 방어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리 하여 과일군읍의 풍천성으로부터 용연군의 용연읍성, 태탄군 성남리에 있는 오누이성과 옹진군 본영리의 옹천성, 강령군 용연리의 고성 등이 해주 서쪽 황해도 서남해안에 일정 한 거리를 두고 성 방어 체계를 형성하였으며, 고구려 시기 내미홀군이었던 해주 수양산 성(지성산성)을 기점으로 그 동쪽에는 고구려 시기 고영성으로 불리웠던 연안읍성과 함 께 그 북쪽 비봉산에 축조된 봉세산성 그리고 바다 가까이의 털미산성, 배천의 치악성(치 양성) 등이 남쪽 해안성 방어 체계에 속해 있었다.
이 성들은 북쪽으로 신원, 린산, 은파, 재령을 통해 평양으로 통할 수 있고 좌우로 해 주, 청단, 금천, 개성으로 통할 수 있는 지리 지형상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장수산성의 위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한편으로는 해안방어와 함께 고구려 수군의 해상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작전 및 보급기지로, 예성강과 임진강을 건너 남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남방 진출기지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가 남방진출을 통해 황해도 지역을 완전히 차지한 것은 3세기 말~4세기 초였다. 이 시기부터 황해도 지역에 성들을 축조하기 시작한 고구려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다음 남평양성인 장수산성을 비롯하여 이 일대의 성들을 축조 및 보축하고 지역적인 성 방어 체계와 해안성 방어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의 넓은 벌과 풍부한 철 광석 자원을 통해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삼국통일을 위한 고구려의 남 방진출에도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
고구려가 이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고 성 방어시설 구축에 중요한 곳은 장수산 일대였다. 4세기 중엽에 축조된 장수산성은 고구려 남방진출의 거점이며 이 일대 정치·경제· 군사적 중심지로, 고구려의 부수도가 되었다. 4세기 말에 고구려는 배천의 치양에서 백 제를 몰아내고 치양성을 쌓았으며 서해안을 따라 수양산성과 봉세산성, 옹천성, 오누이 성 등 국남 7성을 쌓아 해안성 방어 체계를 완성하였다. 황해도 지역에는 국동 6성에 속 한 성들도 있었을 것이다.
황해도 지역에 수도 평양성을 보위하기 위한 외곽성 방어 체계와 남쪽에서 들어오는 적들을 막기 위한 종심 방어 체계 그리고 해안성 방어 체계까지 수립됨으로서 고구려의 삼국통일 전쟁은 더욱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으며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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