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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흘골산성

 
 

9. 흘골산성

 

지도 9 흘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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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9 흘골산성



흘골산성은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읍과 삼덕리 사이에 있는 흘골산에 위치한다. 성천군은 평안남도의 중부에 있는 군이다. 북부는 은산군과 북창군, 남부는 회창군과 평양시의 강동군, 동부는 신양군, 서부는 평양시와 은산군과 잇닿아 있다. 군의 북쪽에 흘골산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북쪽 면은 산줄기에 연결되고 동쪽, 남쪽, 서쪽은 비류강으로 둘러싸였다.[지도 9]
흘골산성은 흘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주봉(150.8m)을 주봉으로 하고 몽선봉·선녀봉· 고당봉을 비롯한 여러 개의 봉우리와 능선, 그리고 그 안에 깊지 않은 세 가닥의 작은 골짜기를 낀 고로봉 지형에 쌓은 성이다.
흘골산성의 평면은 동서로 긴 장방형으로 둘레의 길이는 약 1,340m이며 철성까지의 길이를 합치면 1,440m이다. 성은 봉우리와 능선들로 골짜기를 둘러막은 기본성과 동남 모서리에서 남쪽으로 연결된 보조성(철성)으로 이루어졌다. 흘골산성은 흘골산의 자연지세를 따라 전 구간을 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현재 북문 터가 있는 북벽의 일부와 남문 터가 있는 철성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토성 벽처럼 되었다. 성벽은 대부분 외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고 바깥 면에 비교적 잘 다듬은 성돌로 정연하게 쌓아올리고 그 안쪽에 막돌과 흙을 섞어 다져 쌓았다.
동벽은 몽선봉, 천주봉과 이 두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들을 따라가면서 쌓았다. 성 바깥쪽은 경사각이 75~85°에 이르는 가파른 벼랑이며 성안은 깊지 않은 골짜기와 이어진다. 동벽은 대부분 토성 벽처럼 되었고 천주봉 북쪽에 돌로 된 기초 부분 성벽이 조금 남아 있다. 현재 남은 토성 벽의 높이는 약 1~1.5m이고 밑너비는 2~3m 정도이다. 동벽의 길이는 약 300m이다. 동벽은 흘골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인 천주봉에서 북쪽으로 약 15m 떨어진 곳에서 북벽의 동쪽 모서리와 접한다.
북벽의 동쪽 부분은 산 경사면을 따라 점차 낮아지는 지대에 축조되었는데 북문 터 부근에서 서쪽으로 약 150m 구간은 평탄한 언덕이다. 성벽의 동쪽 부분은 토성 벽처럼 남아 있지만, 북문 터 서쪽 부분에는 성벽의 안쪽 면에 돌로 쌓은 부분이 잘 남아 있다. 성벽은 규암, 현무 암의 돌들을 사각형으로 가공하여 면을 맞추면서 아홉 혹은 열 돌기 정도 쌓았다. 성돌들의 크기는 큰 것이 70×50㎝, 60×30㎝이고 중간이 50×40㎝, 45×30㎝이며 작은 것이 40×15㎝, 30×10㎝이다. 성벽의 두께는 약 5m이다. 북벽의 길이는 약 300m이다.
서벽은 산 비탈면과 서쪽에서 뻗어 내려온 능선들에 의하여 생긴 골짜기를 가로막아 쌓았다. 서벽의 남쪽 부분은 산 비탈면으로부터 서문 터가 있는 골짜기 입구까지 쌓았다. 서벽의 남쪽 부분은 제일 높은 지대에 있는 서장대에서부터 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능선들을 따라 이어 지다가 골짜기 어귀에서 서문 터와 마주한다. 서벽은 대부분 토성 벽처럼 되었고 북쪽에만 기초 부분이 일부 남았다. 서벽의 남은 높이는 대체로 1m 미만이며 성벽의 너비는 2~3m 정도 이다. 서벽의 길이는 약 400m이다.
남벽은 완만한 산 경사면을 따라 쌓았는데 동쪽 몽성봉 가까이에서 철성과 이어진다. 서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토성 벽처럼 되었고 동남 모서리 부분인 철성 가까이의 남문 터 부근에만 기본 성벽이 남아 있다. 성 벽돌은 현무암이다. 규암과 같은 돌들을 가공하여 쌓았는데 그 높이는 3.5~4m 정도이다. 성돌들의 크기는 가장 큰 것이 80×30㎝ 또는 65×40㎝ 정도이고, 중간 것이 54×34㎝ 또는 45×17㎝이며, 작은 것은 40×10㎝ 또는 30×8㎝ 정도인데주먹만 한 돌도 혹간 있다. 남벽의 길이는 약 200m, 철성의 길이는 약 100m이다.
시설물은 성문, 장대 터, 망루 터, 홈구멍 자리와 건물 터가 있다.
성벽에는 4개의 성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문은 북벽의 동쪽 끝에서 산 경사면을 따라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중간 부분에 위치하는데 여기서부터 평탄한 둔덕지대가 시작된다. 북문의 너비는 약 3.5m이고 길이는 5m이며 높이는 서쪽 부분이 2m이며 동쪽 부분은 기초만 남아 있다. 남문은 성의 동남 모서리 부분에 남쪽으로 삐져나온 철성의 남쪽 끝부분에 설치되었는데, 현재는 너비 4m, 높이 1.5m, 길이 5m 정도만 남아 있다. 동문은 천주봉과 몽선봉 사이에 있는데 다 허물어지고 터만 남았다. 서문은 서벽의 제일 낮은 부분인 골짜기 입구에 있는데 동문과 같이 터만 남았다.
산성에는 4개의 장대 터가 있는데 지대가 높고 앞이 탁 트인 곳에 설치되어 있다. 즉 서장 대는 서문 터로부터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높은 봉우리에, 동장대 터는 천주봉 꼭대기에, 북장대는 북문에서 약 120m 떨어진 곳에 있다. 남장대는 남문의 바로 옆에 있는데 축대의 한부분이 약간 허물어졌을 뿐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장대 터에 오르면 성안은 물론 성 밖의 지형지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망루 자리로 인정되는 둥근 석벽 구덩이와 방형, 장방형의 석벽 움 시설들이 있는데 모두 13개이다. 그 가운데서 북문 터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장방형의 구덩이 시설이 현재까지 잘 남아 있다.
홈구멍 자리는 남벽의 중간 부분에 있는 바위 위에 2개가 나란히 뚫려 있다. 홈구멍의 직경은 10㎝, 깊이 15㎝ 정도이다.
건물 터는 서문으로 빠지는 골짜기와 남문의 장대 터 주변, 북장대 주변 등에 있다. 서문으로 빠지는 골짜기에는 여러 개의 집 자리들이 있다. 골짜기 안쪽의 집 자리를 조사한 결과 약 2m 깊이에서 돌로 쌓은 물도랑이 나타났다. 철성(보조성)에 있는 건물 터는 그 규모가 100㎡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 상당히 큰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 터와 성벽 주변에서는 숫키와가 적지 않게 나왔다. 기와는 붉은색, 회색, 흑회색, 흑갈색이다. 기와 안쪽 면에 베천 무늬가 찍혀 있으며, 등면에는 사선 무늬, 격자 무늬, 능형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흘골산성은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고로봉 지형을 이용하여 쌓았다. 흘골산성이 자리 잡고 있는 성천 일대는 북쪽의 요동부터 의주, 구성, 녕변, 개천, 순천, 순안, 신계, 평산, 개성을 통하여 한강 유역까지 통하는 남북 통로와 동해안의 원산부터 아호비령을 넘어 양덕-평양을 거쳐 서해로 이어지는 동서 통로와 교차되는 지점이다. 또한 양덕에서 평양성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합쳐지는 입구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산성은 성벽의 3면을 감돌아 흐르는 비류강을 자연 해자로 삼아, 골짜기를 가운데 끼고 높고 낮은 봉우리와 능선들을 서로 연결하여 쌓은 고로봉식 산성이다. 비류강변의 험한 절벽으로 동, 서, 남쪽이 막혔으며 서쪽 언덕 지대와 연결되었는데 이곳에도 앞에 큰 산이 막혀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하다.
흘골산성이 고구려 때에 쌓은 성이라는 것은 성에서 나온 숫키와 무늬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숫키와 등면에 사선 무늬, 격자 무늬, 능형 무늬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 시대에 쓰던 무늬와 비슷하다.
고구려 시대 평양성의 동쪽 위성이었던 흘골산성은 그 이후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시대에도 서북 지역 방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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