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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룡골산성

 
 

5. 룡골산성

 

지도 5 룡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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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5 룡골산성



룡골산성은 평안북도 염주군 반곡리에 있다. 염주군은 평안북도 북서부 바닷가에 있으며, 북부는 용천군·피현군, 동부는 동림군, 남부는 철산군과 잇닿아 있고, 서부는 서해에 면한다. 북동 (서림리)-남서(다사노동자구) 사이의 길이 29㎞, 북서(연곡리)-남동(향봉리) 사이의 길이 14㎞, 면적(섬 포함) 330여k㎡, 해안선의 길이(섬 제외) 11.8㎞이다.[지도 5]
반곡리는 평안북도 염주군 북부에 있다. 남부는 용산리·동성리·내중리, 서부는 연곡리, 북부는 용천군 인흥리·피현군 성동리·동상리, 동부는 피현군 양책노동자구와 잇닿아 있다. 북동부에는 룡골산(476m)이 솟아 있고 북부와 남부에는 동서 방향으로 구릉들이 있으며 룡골산 골짜기에서 내중천이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른다.
룡골산성이 자리 잡은 룡골산을 메누에산이라고도 하는데 평안북도 피현군과 염주군과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문수산줄기의 주요 봉우리다. 성은 룡골산마루를 따라 북서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5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 중에 북쪽에 있는 3개의 봉우리를 둘러싼 산성이다. 성의 서쪽과 동쪽으로 약 10리 지점에 고려 시대의 성인 운암산성과 좌현령성이 있다.
룡골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성은 고구려 때 쌓았으며 외성은 조선 왕조 시대인 1692년에 내성 남쪽에 덧붙여 쌓은 것이다.
내성은 3개의 봉우리, 즉 제일 높은 봉우리(해발 476m)를 중심으로 북쪽과 서쪽의 봉우리를 둘러싼 석성이다. 내성벽은 봉우리와 산비탈면을 깎아내리고 사각추 형태로 일정하게 다듬은 성돌로 면과 선을 맞추어 쌓았다. 성벽의 일부 구간은 자연 바윗돌을 그대로 이용해 쌓았다.
남벽은 가운데 높은 봉우리와 북쪽 끝에 있는 봉우리까지 쌓았다. 이 구간에는 앞면을 가공한 성돌과 막돌을 결합하여 쌓았다. 제일 잘 보존된 부분은 북쪽 부분이며 높이는 3m 정도이다. 남벽의 일부 구간에는 큰 바위를 성벽으로 그대로 이용하거나 바위와 바위 사이에 가공한 돌들을 쌓아 성벽을 서로 연결시켰다.
동벽은 성의 북쪽 끝에 있는 봉우리를 따라가며 쌓았는데 성 바깥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벽도 남벽처럼 바위를 성벽으로 이용한 부분이 있다.
북벽은 3개의 봉우리 중턱을 따라가면서 북-서 방향으로 길게 쌓았는데 성 밖은 경사가 급한 능선과 골짜기들이 북쪽으로 뻗어 내려갔다. 북벽은 이 성의 성벽 중에서 잘 보존된 성벽이다. 벽은 10~15돌기를 3m 정도로 축조했는데 고구려 성벽과 같이 밑에는 잘 가공한 큰 돌로 줄과 면을 맞춘 다음 그 위에 사각추 모양의 성돌을 80°의 경사를 이루게 쌓았다. 이와 같은 축조 방법은 고구려 산성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곽산의 릉한산성, 태천의 롱오리 산성, 용강의 황룡산성 등을 들 수 있다.
서벽은 3개의 봉우리 중에 맨 아래쪽, 즉 남쪽 봉우리의 중턱을 감싸며 쌓았다. 서벽도 동벽이나 북벽과 같이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한 부분이 많다.
외성은 내성의 남쪽 벽을 북쪽 면으로 하고 남쪽으로 20~60m 정도 떨어진 밋밋한 산기슭에 덧붙여 쌓았다. 성벽의 밑부분에는 큰 돌들을 놓았으며 성돌이 밀려나지 않도록 홈을 파고 그 위에 쌓아올렸다. 이 구간에도 바위를 성벽으로 이용한 부분이 있고 바위 위에 성돌을 올려놓은 부분도 있다. 성벽의 길이는 670m이며 남은 성벽의 높이는 3~3.5m이다.
룡골산성의 시설물로는 성문과 수구문, 성가퀴, 건물 터 등이 있다.
성문은 외성에 3개, 내성에 2개 있다.
성문 중에서 외성 남문은 그 중 낮은 지형에 축조되었고 성의 통로이다. 남문은 지형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화강암으로 든든히 쌓았고 옹성까지 구축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남문의 크기는 높이 2.3m, 너비 2.1m, 길이 7.8m이다.
외성 동벽의 중앙 부분에 암문이 있다. 암문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였는데 북쪽 벽은 바위를 지반으로 하고 그 위에 거칠게 다듬은 돌을 쌓았으며 남벽은 큰 자연 바위를 연결시켜 쌓았다. 천장은 약간 다듬은 큰 돌 3개를 나란히 올려놓았다. 천장돌 위에는 약 60㎝의 높이로 성돌을 쌓았다. 문은 현재 많이 허물어진 상태다. 현재 남은 성문의 크기는 길이 약 3m, 너비 1.8m, 높이 2m이다.
외성 동문은 동쪽으로 치우쳤다. 좌우 벽은 막돌로 4돌기 정도 쌓았고 그 위에 2개의 큰 판돌을 올려놓았다. 문의 크기는 길이 3m, 너비 2.4m, 높이 1.5m이다.
내성 남문은 외성 남문과 통하는 곳에 있다. 현재 천장은 허물어지고 양 벽만 남았다. 벽들은 기초 부분에 큰 돌을 놓고 그 위에 이보다 작은 돌들을 곧추 쌓아올렸다. 내성 남문의 크기는 길이 3m, 폭 2.5m, 현재 남은 높이 1m이다.
내성 동문은 내성 남문의 축조 방식과 같다. 현재 천장돌은 파괴되어 1개의 큰 돌만 남았다. 크기는 길이 2.5m, 너비 1.5m, 높이 1.2m이다.
산성에서 수구문은 내성 남벽의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설치되어 있다. 내성 동벽의 북쪽 부분에 성가퀴가 조금 남아 있다. 성안에는 무기 창고 터, 식량 창고 터, 병영 터 등 건물 터들이 있다.
룡골산성은 압록강계선에서 해안을 따라 평양으로 통하는 통로의 입구에 있는 서북 방위의 중요한 성으로 고구려는 물론 고려, 조선 시대까지 계속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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