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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적두산성

 
 

적두산성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수도성 주변에 청암동토성, 고방산성, 청호동토성을 새로 쌓거나 증축보수하여 수도방어체계를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6세기에 평양성(장안성)으로 수도성을 옮긴 다음에도 수도성 주변에 성들을 더 쌓아 최종 성 방어체계를 완성하였다. 고구려의 수도방어성들 가운데는 적두산성(赤頭山城)도 있었다.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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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철(2003), 『고구려의 성곽』, 사회과학출판사, 204쪽


그러나 지금까지 이 적두산성은 평양시 만경대구역(萬景臺區域)에 위치하고 있다고만 지적되어 있고 성의 규모와 크기, 형태, 축조재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시기의 역사책들에서 적두산성에 대하여 처음 서술한 것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며 적두산성과 관련된 기록들은 『고려사(高麗史)』나 『대동수경(大東水經)』 등 여러 책들에서 볼 수 있고 성의 위치에 대하여서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표시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평양의 고적을 소개하면서 “적두산성이 있는데 흙으로 쌓았다. 평양강의 서부에 있으며 주위는 5,100척에 달한다. 높이는 11척이며 묘청의 반란시에 김부식이 쌓았다고 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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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권 51, 평양부 고적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평양성(平壤城) 동쪽의 강은 대동강(大同江)이라고 하는데 옛 명칭이 패수(浿水)이며 혹은 왕성강(王城江)이라고 한다. 여기에 합류되는 노수는 평양성 서쪽에 이르러 서강이라고 하며 보통문(普通門) 밖을 지나 대수 (帶水)에 들어가는데 평양강(平壤江)이라고 한다.”고하였다.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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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 제11, 대동수경 권3, 패수2

따라서 적두산성은 보통문 밖을 흘러 대동강에 들어가는 평양강(현재의 보통강) 서쪽에 있으며 길이는 약 2,000m에 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록에는 적두산성을 고려 때 김부식이 쌓았다고 하지만 그 성은 고구려시기에 쌓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기록에는 고구려의 보장왕(寶蔵王) 19년에 평양의 하천이 피와 같이 붉었으며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장수 검모잠(劍牟岑)이 발로수(發盧水)를 건너 노성을 공격했는데 『명일통지(明一統志)』에서는 발로하가 평양성 서쪽에 있다고 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노성은 노선들이 다니던 노문(다경문) 옆의 평양성이며 검모잠은 적두성을 기지로 삼고 평양성 외성을 공격했다고 보아야 한다.
적두산성에서 나온 고구려의 붉은 기와와 회색 기와, 질그릇 조각들은 이 성이 고구려시기에 축조된 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는 적두산성에 대한 조사, 답사를 거처 2011년 5~6월에 이 성에 대한 발굴사업을 진행하였다.

 

주 001
지승철(2003), 『고구려의 성곽』, 사회과학출판사, 204쪽
주 002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51, 평양부 고적조
주 003
『여유당전서』 제11, 대동수경 권3, 패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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