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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무덤

 
 

9호 무덤

 

무덤은 지상에 축조하였는데 봉분은 타원형의 반구형이다. 봉분은 본래의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꼭대기는 직경 5m 정도의 넓이로 평평하며 그 가운데 부분이 우묵하게 들어가 있다. 우묵해진 곳에는 무덤을 축조할 때 썼던 막돌이 드러나 있었고 봉분의 남쪽 경사면 위쪽에는 묘도를 봉할 때 사용했던 판석 윗부분이 드러나 있었으며 그 아래쪽에는 판석 앞에 놓았던 길이 80cm, 너비 50cm, 두께 35cm 되는 큰 돌이 놓여 있었다. 봉분의 크기는 남북 18m, 동서 13m이고 높이는 남쪽에서 보면 2.3m, 북쪽에서 보면 1m이다(그림 26, 도판 63).
[그림 26] 다래골 9호 무덤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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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6] 다래골 9호 무덤 봉분

무덤은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으로서 방향은 175도이다. 무덤은 묘도와 묘실로 이루어졌는데 묘도는 묘실 남벽의 중심에 설치하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약간 넓어졌으나 크게 차이가 없다. 묘도동벽은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가면서 점차적으로 직선으로 벌어졌으나 서벽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120cm 되는 곳까지 직선으로 약간씩 벌어지다가 다시 안쪽으로 휘어들면서 곡선을 이루었다. 묘도 서벽의 길이는 230cm, 동벽의 길이는 216cm, 너비는 안쪽이 78cm, 바깥쪽이 96cm, 중간 부분이 104cm이다.
묘도의 동서 두 벽은 크고 작은 막돌로 면을 맞추면서 쌓았는데 밑에서 위까지 현저하게 안으로 기울어져 있다. 동벽은 95cm 높이에서 밑이 위보다 10cm정도 안으로 들어왔으며 서벽은 73cm 높이에서 16cm 들어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벽체의 상태를 보면 5단의 돌이 남은 동벽 안쪽의 높이는 95cm이고 2단의 돌이 남은 바깥쪽의 높이는 60cm이며 3단의 돌이 남은 서벽 안쪽의 높이는 73cm이고 1단의 돌만 남은 바깥쪽의 높이는 32cm이다. 묘도 바닥은 흙을 한 벌 펴고 평평하게 다져서 마련하였다.
묘도에는 몇 겹으로 된 막음시설이 있었다. 묘실과 묘도가 접하는 곳에는 2단으로 막돌을 쌓았는데 그 높이는 46cm정도이고 묘실의 남벽과 일치하게 직선으로 놓여 있다. 이 돌은 묘실 바닥보다 5cm 정도 깊이까지 묻혀 있는데 이로 보아 묘도의 바닥이 묘실 바닥보다 5cm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묘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50cm 되는 곳에 한 개의 큰 돌을 가로놓아 턱을 이루고 이 턱에 기대 2장의 판석을 덧대어 세워 고정시켰는데 큰 판석은 너비 84cm, 높이 86cm, 두께 3.5~4.5cm이고 작은 판석은 너비 50cm, 높이 68cm, 두께 4cm이다. 이 판석에서 바깥으로 50cm 정도 나간 곳에 또 하나의 판석을 세워 봉하였는데 두 벽 사이의 거리는 50cm이다. 편암으로 된 이 판석의 크기는 너비 82cm, 높이 106cm, 두께 6~8cm이다. 두 판석 사이와 바깥쪽에도 막돌을 채워 넣어 판석이 넘어지지 않게 고정시켰으며 묘도의 제일 바깥쪽에는 커다란 돌이 놓여 있었다.
묘실은 크고 작은 막돌로 면을 맞추면서 정연하게 쌓았는데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되었다. 묘실의 벽을 쌓는 데 사용한 막돌의 크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벽체를 쌓는 데 사용한 막돌의 크기 (단위:cm)
벽체를 쌓는 데 사용한 막돌의 크기 (단위:cm):1
구분12345678910
길이50527040448046525040
두께32162016121022171218

묘실의 동벽과 서벽, 남벽은 벽체를 곧추 올려 쌓았으나 북벽은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안쪽으로 기울이면서 쌓았다. 북벽은 142cm 높이에서 밑바닥과 윗부분까지의 차이는 15cm이다. 묘실 벽에서 제일 잘 남아 있는 것은 북벽인데 8단까지 남아 있다. 묘실의 바닥은 길이 35cm, 너비 25cm 되는 작은 판석을 한 벌 깔아 마련하였다. 묘실의 남북 길이는 360cm, 동서 너비는 290cm, 높이는 160cm이다.
묘실 안에는 2개의 석관이 남북으로 길게 동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 석관들은 동쪽과 서쪽으로 치우쳐 벽에 붙어 있으며 석관들 사이의 중간 묘실 바닥은 통로처럼 너르게 비어 있다. 동쪽 석관은 동벽의 남쪽 끝과 북쪽 끝이 묘실 동벽에 닿아 있고 중간 부분이 24cm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는 관의 동벽은 직선으로 되었으나 묘실의 동벽은 호선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나타난 현상이다. 석관 바닥은 남북으로 40~50cm 정도의 사이를 두고 3개의 받침돌을 동서로 길게 놓고 그 사이에 흙과 돌을 섞어 다져 평평하게 고른 다음 그 위에 판석을 나란히 잇대어놓아 만들었다.
동서로 놓인 받침돌 가운데 제일 북쪽의 것은 북벽에서 남쪽으로 14c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긴 판석을 모로 세워 놓았다. 이 돌의 크기는 길이 53cm, 두께 10~11.5cm인데 20cm 이상 바닥에 묻혀있었다. 이 받침돌에서 남쪽으로 50cm정도 떨어져 있는 중간 받침돌은 길고도 납작하게 생긴 돌인데 그 길이는 64cm, 두께는 16~30cm이며 밑면이 북쪽의 곳과 거의 같은 깊이로 바닥에 묻혀 있었다. 중간 받침돌에서 남쪽으로 40cm정도 떨어져 있는 남쪽 받침돌은 길이 66cm, 두께 20cm 정도이다. 받침돌들의 윗면들은 대체로 같은 평면에 놓여 있다.
받침돌들의 윗면에는 남북으로 2개의 판석을 나란히 잇대어 놓아 석관 바닥을 이루고 있다. 북쪽 바닥 판석은 한쪽 모서리가 깨어지고 다른 세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었다. 북쪽 바닥 판석의 길이는 88cm, 너비는 북쪽이 57cm, 남쪽이 63cm, 두께는 4cm이다. 석관 바닥은 묘실 바닥보다 7cm 높게 놓여 있다.
석관 벽은 동쪽과 서쪽의 긴 벽은 2개씩의 판석으로, 북쪽과 남쪽의 짧은 벽은 1개씩의 판석을 세워 만들었는데 남벽 판석이 바깥으로 넘어져 있었고 서벽 판석과 북벽 판석은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북벽 판석은 동벽 판석의 북쪽 끝에서 20cm정도 안으로 들어와 세워졌고 서벽 판석의 북쪽 끝에 닿아 있었다. 북벽 판석의 너비는 53cm, 두께는 4cm이다.
동쪽과 서쪽의 긴 벽은 2개씩의 판석을 일직선으로 연결시켜 세웠다. 동벽 판석의 크기는 북쪽 것이 길이 120cm, 두께 4cm이고 남쪽 것이 길이 115cm, 두께 4~8cm이며 잇닿아진 길이는 240cm이다. 서벽 판석의 크기는 북쪽 것이 길이 130cm, 두께 4cm이고 남쪽 것이 길이 78cm, 두께 4cm이며 잇닿아진 길이는 210cm이다. 석관 벽으로 세운 판석들은 묘실 바닥에 20cm정도의 깊이로 묻혀 있었다. 바깥으로 경사지면서 넘어진 남벽 판석은 너비 68cm, 두께 3cm이고 석관 위에 덮었던 판석은 없어졌다. 석관의 길이는 바닥 상태로 보아 200cm로 추측되며 너비는 북쪽이 58cm, 남쪽이 68cm이고 높이는 56cm이다.
석관 남쪽에는 부장품을 넣어두는 칸이 잇닿아 있는데 판석이 이미 넘어져 있는 상태였다. 바깥으로 넘어진 남벽 판석 밑에는 길이 96cm, 너비 53cm 크기의 판석이 깔려 있는데 이 판석은 부장품 칸의 북벽으로 세웠던 것이 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장품 칸의 서벽 판석은 바깥으로 넘어지면서 얼마간 기울어져 있었다. 이 판석은 석관의 서벽판석에 겹친 상태로 놓이면서 남쪽 끝이 묘실 남벽에 거의 닿아있었는데 길이는 90cm, 두께는 3cm, 밑부분은 바닥에 묻혀 있었고 높이는 30cm 정도이다. 부장품 칸의 남벽은 묘실 남벽에 기대여 세워져 있었다. 그러므로 판석이 묘실 벽선을 따라 사선으로 놓여있다. 남벽 판석의 너비는 43cm, 높이는 28cm, 두께는 4cm이다. 부장품 칸의 동벽은 판석을 따로 세우지 않고 묘실 벽을 그대로 하여 벽선은 호선을 이루었다.
바닥에는 넓적한 돌들을 깔았는데 그 가운데서 제일 큰 것이 길이 44cm, 너비 42cm이다. 부장품 칸 바닥은 묘실 바닥과 같은 수평으로 놓여 있었다. 현 상태로 보아 석관 남쪽에 잇대어 높이가 낮고 크기가 자그마한 부장품 칸을 따로 설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서쪽 석관은 동쪽 석관과 마찬가지로 묘실서벽에 붙여 축조하였다. 직선으로 된 석관 서벽의 남쪽 끝과 북쪽 끝은 묘실서벽에 닿아 있지만 가운데 부분은 호선을 이룬 벽과 15cm정도 떨어져 있었다.
석관 밑바닥에는 5개의 받침돌이 놓여 있었다. 받침돌은 모두 길게 생긴 판석을 동서로 모를 세워 놓았다. 북쪽의 받침돌은 석관 북쪽에서 남쪽으로 16cm 떨어져 있고 이로부터 차례로 각각 23cm, 56cm, 52cm, 14cm 사이를 두고 4개의 받침돌이 설치되었다. 받침돌 가운데서 14cm사이를 두고 있는 남쪽의 두 개는 본래 하나의 받침돌로 겹쳐 놓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받침돌은 네 곳에 마련했던 것으로 인정된다.
받침돌의 두께는 서로 다른데 북쪽의 것은 3cm이고 남쪽으로 가면서 차례로 5cm, 3cm, 3~5cm, 2~3cm이다. 길이는 석관의 너비와 같다. 받침돌은 대체로 바닥 20cm 깊이까지 묻혀 있는데 중간의 두 곳에 있는 받침돌은 윗면이 양쪽에 있는 받침돌의 윗면보다 4~6cm 낮게 되어 있으나 그 위에 길이 50cm, 너비 38cm, 두께 4cm 크기의 판석을 올려놓아 윗면이 다른 것과 같은 높이로 맞추었다. 이 받침돌들은 양끝이 동벽과 서벽에 닿아 있으므로 바닥 판석을 받쳐주는 것과 함께 동서 긴 벽이 안으로 기울어 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겸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받침돌 사이에는 판석파편들과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받침돌위에는 북쪽과 남쪽에 각각 1개씩의 판석을 잇대어놓아 석관 바닥으로 하였다. 바닥판석은 2개 모두 네모나게 생겼고 모서리는 각을 이루었다. 북쪽 바닥 판석의 크기는 길이 62cm, 너비 57cm, 두께 4~5cm이고 남쪽 바닥 판석의 크기는 길이 98cm, 너비 57cm, 두께 4~6cm이다. 석관 바닥은 묘실 바닥보다 7cm 높게 놓여 있다.
석관 벽은 남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의 판석을 세워 짧은 벽으로 하고 동쪽에는 2개의 판석, 서쪽에는 3개의 판석을 잇대어 세워 긴 벽으로 하였다. 북벽 판석은 서쪽 끝이 서벽판석의 북쪽 끝에 닿은 상태로 있지만 동쪽 끝이 동벽 판석의 북쪽 끝에서 안으로 2cm정도 들어와 있다.
동벽은 길이 96cm, 두께 4~5cm인 2개의 판석을 연결하여 세워 만들었는데 그 길이는 194cm이다. 서벽으로 잇대어 세운 3개의 판석크기는 북쪽의 것이 길이 88cm, 두께 4cm, 가운데 것이 길이 102cm, 두께 6cm, 남쪽의 것이 길이 36cm, 두께 3cm이고 총길이는 231cm이다.
동벽의 남쪽 끝은 남쪽 판석 끝과 4cm정도 떨어져 있으나 서벽의 남쪽 끝은 남벽 판석에서 24cm 더 나가 있다. 동벽의 남쪽 부분 바깥에는 덧대어 세워진 2개의 판석이 있는데 이것은 남쪽으로 36cm 곧추 연장되어 있다. 덧대어 세워진 이 판석들은 공간이 나 있는 동벽의 남쪽 부분을 보강하는 것과 함께 남쪽에 마련된 부장품 칸의 동벽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관 남쪽에 잇대어 부장품 칸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석관의 서벽 남쪽 부분이 남벽에서 24cm 연장되어 세워져 있고 동벽 남쪽 부분 바깥에 덧대어 세워진 2개의 판석이 남쪽으로 36cm 연장되어 있는 것은 부장품 칸의 동서 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석관의 동서 벽에 연결되어 남쪽으로 연장되어 있는 벽들이 부장품 칸의 동서 벽으로 판단된다. 이 곳의 바닥에는 길이가 각각 40cm, 42cm, 35cm, 너비가 각각 22cm, 30cm, 20cm 되는 3개의 판석이 나란히 깔려 있었다. 이 판석들은 묘실 바닥과 같은 수평면에 놓여 있었는데 부장품 칸의 바닥으로 인정된다. 남아 있는 흔적들은 서쪽의 석관 남쪽에도 동쪽의 석관 남쪽처럼 부장품을 넣어두는 칸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일부분이 파괴되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관의 뚜껑은 이미 없어졌으므로 그 상태를 알 수 없다. 석관의 길이는 198cm, 너비는 58cm, 높이는 60cm이다.
무덤의 구조와 관련하여 묘실의 천장시설이 이 무덤에서 잘 나타났다. 묘실 안에는 천장시설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편암으로 된 판석들이 꽉 차 있었다. 발굴 당시 묘실 벽체를 따라 안쪽으로 경사를 지으면서 세워진 판석들이 드러났으며 석관 안에서도 남북으로 열을 지으면서 박혀 있는 판석들이 나타났다. 석관 안의 판석들은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동쪽 석관에는 2~3줄로, 서쪽 석관에는 3~4줄로 열을 지어있었다.
벽체의 변두리를 따라 드러난 판석과 석관 안의 판석들은 석관의 절반 부분 깊이까지 박혀 있었다. 이런 판석들은 묘실 위에서부터 바닥 가까이까지 계속되어 드러났는데 무덤에서 나온 판석의 양은 엄청나게 많다. 무덤에서 드러난 판석들의 크기는 아래와 같다.

 
묘실 안에서 나온 판석의 크기 (단위:cm)
묘실 안에서 나온 판석의 크기 (단위:cm):1
구분12345
길이118767010060
너비5054585653
길이5358605053
너비4043564040
길이4540343740
너비2830302426

판석 가운데서 큰 것들은 대부분 벽체를 따라 나타난 것이고 다른 것들은 관안과 묘실 안에서 나온 것들이다. 판석들 가운데는 양쪽 면에 황갈색의 진흙이 붙어 있는 것도 있고 한쪽 면에만 붙어 있는것도 있다. 판석에 남아 있는 형태로 보면 본래의 천장은 황갈색 진흙으로 미장하면서 판석을 겹쳐놓으며 쌓았던 궁륭식 천장으로 판단된다(그림 27, 도판 64~70).
[그림 27] 다래골 9호 무덤 평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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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7] 다래골 9호 무덤 평단면도

무덤에서는 유물들이 나왔다. 동쪽 석관의 북벽에서 안쪽으로 30cm 들어온 바닥에서 4점의 철파편이 나왔고 여기에서 남쪽으로 35cm 떨어진 서벽가까이에서 쇠못 2개가 나왔으며 남벽에서 20cm 안쪽으로 들어온 서벽 가까이에서 돌로 만든 가락바퀴 1점이 나왔다.
동쪽 석관의 남쪽에 설치한 부장품 칸의 동쪽 모서리에서는 꼭지가 달린 단지뚜껑이 나왔고 서쪽 석관의 남쪽에 있는 부장품 칸의 서벽에 치우친 곳에서는 목이 짧은 단지가 나왔다.

단지뚜껑 1점 단지뚜껑은 윗면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고 그 중심에 보요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뚜껑 윗면의 직경은 10cm 정도 되며 가운데 부분이 꼭지를 중심으로 약간 경사졌으며 여기에서 아가리 끝까지 2단의 각을 지으면서 경사져 내렸다. 측면으로 볼 때 뚜껑 윗면 선은 턱이 있는 활등 모양의 호선을 이루었다. 단지뚜껑은 진흙에 가는 모래를 섞어 만들었는데 회색을 띄었다. 뚜껑 직경은 16.8cm이고 높이는 5.8cm, 꼭지 높이는 2.3cm이며 그릇살의 두께는 0.5cm이다(그림 28-1, 도판 126).
[그림 28] 다래골 9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 1. 그릇뚜껑 2.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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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8] 다래골 9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1. 그릇뚜껑 2. 단지


목이 짧은 단지 1점 단지는 짧은 목에 해바라진 아가리가 붙어 있고 배가 약간 부르며 밑굽이 납작하다. 손으로 빚어 만든 것으로서 목과 아가리의 두께가 고르지 못하고 몸체의 겉면이 거칠다. 보드라운 진흙에 모래를 섞어 만들었는데 회갈색이다. 단지의 높이는 9.2cm, 아가리의 직경은 10cm, 밑굽 직경은 7cm, 그릇살의 두께는 0.5~0.6cm이다(그림 28-2, 도판 125).

가락바퀴 1점 가락바퀴는 회색의 점판암으로 만든 것인데 둥글게 생긴 몸체의 중심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락바퀴의 직경은 3.8cm, 두께 0.8cm, 구멍 직경 1cm이다(그림 29-4, 도판 150).
[그림 29] 다래골 9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 1,2. 못 3. 칼 4. 가락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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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9] 다래골 9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1,2. 못 3. 칼 4. 가락바퀴


쇠못 2점 쇠못은 2점인데 생김새와 크기는 다르다. 하나는 몸체의 단면이 네모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형이다. 네모난 쇠못은 대가리가 없고 끝으로 가면서 약간씩 얇아졌으므로 아래위의 굵기가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쇠못의 길이는 12cm, 몸체 한 변의 너비는 0.4cm이다. 원형의 쇠못도 대가리가 없고 끝으로 가면서 굵기가 점차 가늘어지면서 뾰족하게 끝났다. 쇠못의 길이는 8cm, 몸체의 직경은 0.5cm이다(그림 29-1,2, 도판 188).
이 밖에 철 파편이 4점 나왔는데 2점은 위쪽이 두껍고 아래쪽이 얇으므로 칼이나 낫이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다른 2점은 형태를 알 수 없다(그림 29-3, 도판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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