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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무덤

 
 

3호 무덤

 

무덤은 지상에 축조하였고 봉분은 타원형의 반구형이다. 봉분 꼭대기는 우묵하게 들어가고 묘실 벽체의 윗부분들은 적지 않게 드러나 있다. 봉분의 옆 경사면에도 돌들이 겉면에 나타나는데 묘실이 무너지면서 일부 돌들이 봉분 밖으로 흘러내렸다.
봉분의 정점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얼마간의 사이를 두고 동쪽과 서쪽에 크기가 86×60×28cm, 70×46×30cm인 돌들이 나란히 드러나 있었는데 묘도 벽체로 인정된다. 봉분의 남북 길이는 12m이고 동서 길이는 10.5m이며 높이는 지대가 낮은 동남쪽에서 보면 2m이고 지대가 높은 서남쪽에서 보면 0.8m이다(그림 11, 도판 36).
[그림 11] 다래골 3호 무덤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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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1] 다래골 3호 무덤 봉분

무덤은 기본상 남북으로 놓였는데 방향은 178도이다. 무덤은 완만한 경사면에 축조하였기에 먼저 경사면의 높은 부분을 따낸 다음 지면을 평평하게 고르고 거기에 무덤을 축조하였기에 무덤의 대부분이 지상에 놓였다.
무덤은 묘도와 묘실로 이루어졌는데 묘도는 묘실 남벽의 중심에 설치하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면서 넓어져 평면이 나팔 모양으로 되었다. 바닥은 바깥쪽으로 느린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데 흙을 다져서 마련하였다. 안쪽과 바깥쪽의 바닥 차이는 22cm이다. 묘도의 동서 두 벽은 막돌로 쌓았는데 벽을 쌓은 돌의 크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묘도의 대표적인 돌 크기 (단위:cm)
묘도의 대표적인 돌 크기 (단위:cm):1
구분12345678910
길이98617876695260467585
두께3235401912158181513

벽체는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약간씩 좁혔는데 이러한 상태는 묘도 안쪽 벽체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묘도 안쪽의 서벽은 3단의 돌로 쌓은 높이까지 남아 있고 동벽은 6단의 돌로 쌓은 높이까지 남아 있지만 그 높이는 다 83cm이다. 벽체의 남은 높이에서 서벽의 밑면과 윗부분의 차이는 21cm이고 동벽은 17cm이다. 안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는 묘도 벽의 중간 부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180cm 나온 곳의 서벽 높이는 70cm인데 밑부분보다 윗면이 19cm나 안쪽으로 들어 갔으며 190cm 나온 곳의 동벽 높이는 37cm인데 5cm 안쪽으로 기울었다. 묘도 벽체의 바깥쪽은 1단의 돌만 남아 있는데 동벽의 높이는 26cm이고 서벽의 높이는 34cm이다. 묘도의 동벽 길이는 282cm이고 서벽 길이는 279cm이며 안쪽 너비는 74cm이고 바깥쪽의 너비는 155cm이다.
묘도에는 판석으로 된 막음벽이 있었다. 막음 판석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160cm 떨어진 묘도 중간과 묘도 바깥쪽 끝에 세워졌던 것인데 바깥쪽 막음 판석은 바깥쪽으로 밀리면서 엎어진 상태로 있었고 중간 막음 판석은 판석의 안쪽 밑에 문턱처럼 놓인 돌에 의해 의지되면서 안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었다.
중간 막음 판석의 안쪽에 문턱처럼 놓인 돌은 크기가 95×53×10cm, 50×18×11cm인 판석 2개이다. 중간 막음 판석은 양면을 평평하게 다듬은 네모난 것인데 그 크기는 높이 51cm, 너비 119cm, 두께 4cm인데 윗부분이 얼마간 깨져 없어진 듯하다. 두 막음 판석 사이에는 크고 작은 막음돌이 꽉 차있었다.
묘실은 크고 작은 돌을 대충 다듬어서 쌓았는데 평면윤곽은 원형에 가깝다. 묘실 남벽의 동쪽과 서쪽 끝, 그리고 북벽의 동쪽과 서쪽 끝을 바닥 위에 놓인 제일 밑층의 돌에서 약간씩 꺾으면서 각을 이루며 동서 벽과 이어진 듯하나 그 위에 놓인 돌들이 밑층에서 생긴 꺾인 각을 줄이면서 호선이 되게 하였다. 이것은 무덤 축조자들이 벽체를 쌓으면서 평면 생김새를 원형으로 구성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벽을 쌓는 데 쓰인 돌의 크기를 부류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묘실 벽의 대표적인 돌 크기 (단위:cm)
묘실 벽의 대표적인 돌 크기 (단위:cm):1
부류크기123
큰 부류길이665854
두께153340
중간 부류길이494748
두께303415
작은 부류길이404042
두께11107

벽체를 쌓는 데 쓰인 돌은 길이가 길고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은 감을 주지만 납작하거나 길쭉하게 생겨 벽을 쌓을 때 서로 맞물리기 좋게 되어 있다. 벽체를 쌓은 돌은 6~8단의 높이까지 남아 있다. 동벽과 북벽, 그리고 남벽의 동쪽 부분은 곧게 쌓았지만 서벽과 남벽의 서쪽 부분은 안으로 경사졌다. 서벽은 남아 있는 140cm 높이의 벽선이 밑부분보다 60cm 안쪽으로 들어와 있고 남벽의 서쪽 부분은 남아 있는 80cm 높이의 벽선이 밑부분보다 10cm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지형으로 볼 때 서쪽 벽이 높은 것으로 하여 외부의 압력에 의해 벽체가 안쪽으로 밀려든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다른 무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데 어떤 무덤의 서벽은 안으로 많이 기울어졌지만 어떤 무덤의 서벽은 약간 기울어졌거나 곧추 쌓은 대로 있다. 일반적으로 묘실 건축에서 대칭적인 수법을 많이 적용한 것을 보면 묘실의 서쪽 벽체가 안쪽으로 특별하게 크게 경사진 것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생긴 현상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묘실 바닥은 묘도와 같이 흙을 펴고 단단하게 다졌다. 천장은 이미 무너져 현존하지 않으므로 그 상태를 알 수 없다. 묘실의 남북 길이는 316cm이고 동서 너비는 300cm이며 높이는 160cm이다.
묘실 안에는 2개의 석관이 남북으로 길게 동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 동쪽관은 먼저 판석을 세워 벽을 만들고 바닥에 판석을 깐 다음 그 위에 뚜껑돌을 덮어 만들었다. 벽을 만든 판석들 가운데서 동쪽 벽만은 2장의 판석을 서로 잇대어 세우고 다른 벽 판석들은 한 장의 판석을 세웠다. 판석들은 묘실 바닥을 25~30cm의 깊이로 기초 홈을 파고 세웠는데 북쪽 짧은 벽 판석들은 동서 긴 벽 판석의 북쪽 끝에서 안쪽으로 1~4cm 안으로 들여세웠다. 남쪽 짧은 벽 판석들은 발굴 당시에 밖으로 제쳐지면서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동쪽 끝이 동쪽 벽의 남쪽 끝에서 얼마간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를 알수 있었으나 서쪽 끝은 서벽의 남쪽 끝에서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으므로 그 상태를 잘 알 수 없었다. 벽판석들은 모두 편암을 반듯하게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석관 판석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석관 벽 판석의 크기 (단위:cm)
석관 벽 판석의 크기 (단위:cm):1
벽체길이높이두께
동벽110114823~5
서벽209818
북벽67815
남벽70809

석관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는데 발굴 시 많이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석관 벽 위에는 편암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만든 두 개의 판석을 덮었는데 동쪽으로 미끄러지면서 한쪽 끝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북쪽의 뚜껑돌로 놓인 판석의 크기는 127×96×9cm이고 남쪽의 판석은 100×95×4cm이다. 석관은 길이 204cm, 너비 70cm, 높이 50cm이다.
서쪽관은 동쪽관의 서쪽에 잇대어 만들었다. 석관의 동쪽 긴 벽은 동쪽관의 서쪽 긴 벽을 그대로 하였으며 남쪽과 북쪽의 짧은 벽은 각각 한 개의 판석을 세웠다. 서쪽 긴 벽은 3개의 판석을 잇대어 세워 만들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2개의 판석을 일정한 사이를 두고 남북으로 길게 직선으로 맞추어 세운 다음, 사이를 이루고 있는 틈을 바깥쪽에서 판석을 덧대어 막아 서쪽 긴 벽을 축조하였다. 벽 판석들은 다 바닥에 기초 홈을 파고 기초 홈에 판석을 세워 만들었다. 북쪽과 남쪽의 짧은 벽 판석들은 동서 긴 벽의 양끝에서 안쪽으로 약간 들여세웠다. 관 바닥은 판석 세 개를 가지런히 깔아 마련하였다. 판석의 크기는 북쪽의 것이 55×40cm, 중간의 것이 54×40cm, 남쪽의 것이 72×40cm이며 두께는 5~7cm이다. 바닥 판석이 잘 물리지 않은 공간에는 판석 파편들을 깔았다. 관의 뚜껑돌은 없어졌다. 서쪽 석관의 크기는 길이 194cm, 너비 61cm, 높이 50cm이다. 서쪽 석관은 동쪽 석관에 비해 크기가 얼마간 작을 뿐만 아니라 축조상태도 조잡하다(그림 12, 도판 37~43).
[그림 12] 다래골 3호 무덤 평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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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2] 다래골 3호 무덤 평단면도

묘실 안에서는 여러 개의 질그릇이 나왔다. 북벽 가운데 부분 바닥에서 그릇뚜껑과 바리가 동쪽과 서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바리는 바로 선 상태에서 눌리면서 여러 파편으로 깨져 있었으며 그릇뚜껑은 뒤집혀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바리 위에 덮었던 뚜껑이 동쪽으로 밀리면서 뒤집힌 듯하다. 동벽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바닥에는 귀가 달린 단지 하나가 있었는데 밑부분이 바닥 위에 선 상태로 있고 윗부분이 깨어지면서 북쪽으로 밀려 있었다. 서쪽 석관 안의 동북모서리에는 목이 짧은 단지가 놓여 있었다.
바리는 지금의 사발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보드라운 진흙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회색 그릇이다. 아가리에서 밑으로 0.4cm 내려온 곳에 너비 0.5cm, 깊이 0.1cm의 홈 하나를 돌려 장식하였다. 그릇의 높이는 10cm, 아가리 직경은 19.8cm, 밑굽의 직경은 12cm이다. 그릇살은 아가리 부분이 얇고 밑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두꺼워 졌는데 살의 두께는 0.5~0.6cm이다(그림 13-3, 도판 118).
[그림 13] 다래골 3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 1. 귀가 달린 단지 2. 단지 3. 바리와 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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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3] 다래골 3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1. 귀가 달린 단지 2. 단지 3. 바리와 뚜껑

그릇뚜껑은 위가 고르게 부풀어 오르고 밑에 공간이 진 활등 모양으로 생긴 것이다. 뚜껑 중앙에는 꼭지가 달려 있었는데 출토 당시 꼭지는 깨진 상태였다. 그릇을 덮을 때 닿는 면에는 0.1cm 정도의 깊이로 홈을 주었는데 그릇의 아가리가 잘 맞물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뚜껑 아가리의 직경은 19.8cm로서 바리 아가리의 직경과 같으며 두께는 꼭지가 있는 가운데 부분이 얇고 변두리 부분이 두꺼운데 0.6~0.8cm이다(그림 13-3, 도판 117).
귀가 달린 단지는 깨졌지만 복원되어 전체의 생김새와 크기를 알 수 있다. 짧은 목이 위로 올라가면서 안으로 약간 굽혀 들어오다가 아가리로 끝나고 몸체의 배가 부르며 밑이 납작하다. 몸체의 배가 제일 부른 부분은 어깨 부분이다. 보드라운 진흙을 바탕흙으로 하여 만든 검은색 단지로서 아가리에서 4cm 정도 내려온 몸체의 어깨 부분 양측에 가로 구멍이 뚫린 귀가 대칭적으로 붙었는데 한쪽의 귀는 없어졌다. 겉면에 돌림판을 돌릴 때 생긴 선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돌림판으로 돌리면서 단지를 만든 다음 겉면을 매끈하게 다듬었기에 돌림 선들이 없어지거나 희미하게 된 것이다. 단지의 높이는 22cm, 아가리 직경은 13.2cm, 밑굽 직경은 14.6cm, 그릇살의 두께는 몸체 부분이 0.4~0.6cm, 밑부분이 1.2cm이다(그림 13-1, 도판 116).
목이 짧은 단지는 아가리가 해바라지고 몸체는 길게 배가 부르며 밑이 납작하게 생겼다. 보드라운 진흙으로 빚어 구워 만들었으며 색깔은 회색을 띄고 있다. 손으로 빚은 것으로 판단되며 목과 몸체의 어깨 부분, 아가리의 안쪽 면에 여러 줄로 된 가는 선을 돌려 장식하였다. 목에 돌린 선은 5~6줄이고 어깨 부분의 선은 9줄이며 아가리 안쪽 면의 선은 3줄이다. 단지의 높이는 12.8cm, 몸체의 최대 직경은 10cm, 밑굽 직경은 5.6cm, 그릇살의 두께는 0.4cm이다(그림 13-2, 도판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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