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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 성벽을 통하여 본 축조시기

 
 

1) 안학궁 성벽을 통하여 본 축조시기

 

안학궁 성벽의 축조시기를 직접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자료는 극히 적다. 그러나 안학궁성의 성벽 축조방법과 성돌 가공방법 등은 대성산성을 비롯한 고구려 시기 성곽들과 대비하여 그 축조시기를 밝힐 수 있다고 본다.
안학궁 성벽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사각추모양으로 가공한 돌로 양면쌓기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돌로 쌓고,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로 쌓았으며 들여쌓기 방법으로 축조한 것이다. 안학궁 발굴자료에 의하면 동·서·남·북쪽의 성벽과 모든 성문들의 성벽은 밑에는 큰 돌을 놓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작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밑부분에는 들여쌓기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주157]
각주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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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대성산의 고구려유적』(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11~137쪽.

안학궁 성벽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성벽 축조방법은 고구려 시기 여러 성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기 이전의 왕궁성이었던 집안의 국내성 성벽도 안학궁성과 같은 방법으로 쌓았다. 이것은 안학궁성이 고구려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그러면 안학궁성이 고구려의 어느 시기에 축조되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대성산성과 같은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보여진다. 그 근거를 성돌 가공방법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고구려시기 성돌을 사각추모양으로 가공하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성돌 가공방법에서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여 안학궁성과 대성산성의 성돌 가공방법은 다른 고구려 성돌의 성돌 가공방법과 다르다. 안학궁성과 대성산성의 성돌은 이곳에 흔한 사암을 이용하였다. 사암은 결이 있으므로 깨면 각이 지거나 수평면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도 대성산성이나 안학궁성 주변에서는 각이 나고 네모 반듯한 돌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안학궁성과 대성산성의 성돌 가공방법을 구체적으로 보면 각이 났거나 면이 고른 돌들을 그대로 이용하면서도 앞면이 네모나고 뒤뿌리가 평면이 되게 조금씩 가공하여 사각추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평양성을 비롯한 고구려의 여러 성들의 성돌 가공방법은 이것과 다르다. 안학궁성과 대성산성 이외의 다른 고구려성의 성돌들은 대체로 화강암, 현무암, 사암 등을 이용하였는데 돌의 모든 면을 고르게 가공하여 사각추모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안학궁성이나 대성산성의 성돌들에서 보이는 큼직큼직하게 떼내어 사각추모양으로 만든 성돌과는 가공수법이 다르다.
이러한 성돌 가공방법이 시기적 차이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안학궁성과 대성산성 성돌 가공방법이 같다는 의미에서 이 두 성은 같은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고구려가 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기 위하여 수도방위성인 대성산성을 쌓으면서 안학궁성도 쌓았다고 보여진다.

 

주 157
1973년, 『대성산의 고구려유적』(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11~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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