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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 성벽의 구조

 
 

2. 안학궁 성벽의 구조

 

궁성에서 성벽은 왕궁의 다른 건축물들과 함께 왕궁의 위엄을 돋우어 주며 왕궁을 튼튼히 보위할 수 있게 하는 주요한 구성부분의 하나이다. 안학궁성의 성벽은 밑에는 돌로 쌓고, 위에는 흙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학궁 성벽에 남아있는 성벽높이와 성돌단수를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안학궁 성벽의 남아있는 성벽높이와 성돌단수
[표 1] 안학궁 성벽의 남아있는 성벽높이와 성돌단수:1
구분단위동벽서벽남벽북벽

























































단수돌림5256155512233?833965
높이m1.41.11.62.41.251.42.40.60.80.751.60.80.721.551.300


높이m?0.51.310.40.621.40.651.10.821.40.50000




단수돌림7771555143123596118650
높이m1.61.51.42.21.251.321.70.72.70.3511.81.52.41.51.551.150


높이m?0.60.61.210.30.810.50.751.41.90.40.80.71.200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발굴 당시 안학궁 성벽에 남아있는 성돌의 개수와 그 높이는 각이하여 바깥성벽과 안성벽에서도 서로 차이가 있다. 발굴자료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 궁성의 성벽석축을 각이 한 단수(높이)로 정하였는가, 또 석축보다 토석혼축을 더 높이 쌓아올렸는가, 안성벽과 바깥성벽의 석축단수(높이)를 서로 달리하였는가 하는 등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안학궁성은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돌들이 유실된 상태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안학궁성에서 성돌들이 많이 유실되었다는 것은 대성산성, 고방산성, 청암동토성의 성돌들이 대부분 유실된 사실, 안학궁 성안의 건축기초석들이 대부분 없어진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안학궁 성벽의 성돌들이 유실되기 이전 상태 즉, 성벽을 처음 몇 단으로 쌓았으며 얼마만 한 높이까지 쌓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발굴자료에 의하면 궁성의 성벽을 쌓은 성돌은 대성산에 흔한 사암을 사각추 모양으로 다듬었고, 크기는 대체로 40×60cm~25×30cm 정도라고 하였다. [주151]
각주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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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대성산의 고구려유적』(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09쪽.


그런데 최근년간에 안학궁성의 동쪽성벽 바깥부분 세 곳에서 새로 국부발굴을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 크기가 106×46cm, 118×35cm, 96×30cm나 되는 매우 큰 성돌들이 밑부분에 놓여 있었고 위로 올라가면서 80×20cm, 70×25cm, 60×30cm, 65×40cm 등 조금씩 작은 성돌로 들여쌓기를 하면서 9단 올려 쌓은 것이 발견되었다.
이처럼 이미 알려진 안학궁 성벽에 대한 자료와 새로 발굴된 자료는 안학궁 성벽을 대성산성 일대에 흔한 사암을 사각추모양으로 다듬어 밑에는 큰 성돌을 놓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작은 성돌로 성벽을 높이 쌓았다고 볼 수 있게 한다. 안학궁 성벽의 성심은 돌과 진흙으로 다졌다. 현재 북성벽과 동성벽, 서성벽의 윗면과 측면들에 남아있는 돌과 진흙의 비율은 돌이 약 60~80% 이상이다. 현재 성벽에서 보이는 돌들의 크기는 대체로 3×4cm의 작은 돌부터 주먹만한 것들이 많고, 큰 돌들도 많이 섞여있다. 이것은 안학궁 성벽의 대부분을 겉은 가공한 돌로 쌓고, 성심은 돌과 진흙을 섞어 다지는 방법으로 축조하였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안학궁 성벽은 돌로 쌓고 성심은 흙으로 쌓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고구려가 집안 도읍 시기에 쌓은 왕궁성인 국내성의 성벽구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근 연간에 발굴된 국내성의 북성벽은 양쪽벽을 사각추모양의 다듬은 돌로 들여쌓기로 쌓았고, 내부는 돌이 섞인 흙으로 쌓았다. 현재 남아있는 성돌은 북쪽벽에 13단, 남쪽벽에 3단이다. [주152]
각주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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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국내성』(중국 : 문물출판사), 20~22쪽.

국내성의 서쪽성벽에서도 이와 같은 성벽구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국내성의 성벽을 겉은 돌로 쌓고 성심은 돌과 흙으로 쌓았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안학궁 성벽도 웅장화려한 궁전건축에 어울리게 국내성 성벽축조의 전통을 이어 돌로 양면쌓기를 하였고 성심에 돌과 흙을 다지는 방법으로 쌓았다고 인정된다. 안학궁 성벽의 성돌 축조부분은 현재 성돌이 남아있는 높이에 그치고, 그 위에는 흙으로 판축하여 쌓았는데 성벽의 총 높이가 8~10m나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성벽을 흙으로 판축하여 쌓는 방법은 고조선 시기에 창조되어 쓰였고 고구려 시기에 와서는 석축이 기본이었다. 고구려 시기에 성벽축조에서 돌을 많이 이용한 것이 전통적인 성쌓기 방법의 하나였다고 볼 때, 안학궁 성벽의 대부분을 흙으로 쌓았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당시 중국의 도성들과 궁성들은 대부분 성벽을 흙으로 판축하여 쌓았으며 돌로 쌓지 않았다. 대표적인 실례로 북위의 낙양성 왕궁성벽은 흙으로 다져 쌓았는데 현재도 20~30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주153]
각주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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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신중국의 고고발견과 연구』(중국 : 문물출판사), 519쪽.



 

주 151
1973, 『대성산의 고구려유적』(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09쪽.
주 152
2004, 『국내성』(중국 : 문물출판사), 20~22쪽.
주 153
1984, 『신중국의 고고발견과 연구』(중국 : 문물출판사), 5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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