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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궁터와 서궁터 발굴

 
 

3) 북궁터와 서궁터 발굴

 

 

 ● 북궁터 발굴 ●

 

중궁터 발굴에 이어 북궁터에 대한 발굴에 달라붙었다. 북궁터에 대한 발굴은 1970년 5월에 진행하였다. 북궁터 발굴에서는 제1호궁전터와 제2호궁전터를 먼저 찾아내고 뒤이어 제3호궁전터, 제5호궁전터를 드러냈다. 북궁3호궁전터는 제1, 2호궁전터보다 2.5m 낮은 지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그위에 흙이 많이 덮혀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옹근기초자릿돌만 하여도 15개나 보존되어 있었다. 계속하여 제6호궁전과 제7호궁전도 발굴하였다.
북궁터 발굴에서는 안학궁 시기의 건물터들과 그 위에 세웠던 고구려 말기의 것으로 인정되는 2차건축터도 드러났다. 제2차건축터는 북궁 기본건물터 일부를 파괴하고 그 위에 세웠던 것인데 기초 형식은 이미 잘 알려진 집안 동대자유적의 것과 아주 비슷하였다. 이 2차건축터에서는 고구려 기와들이 나왔을 뿐 다른 유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안학궁의 2차건축터도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북궁터는 전체적으로 남궁, 중궁터보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구조가 아기자기한 것이 특징이다. 북궁터까지 발굴하고 나니 안학궁터의 중심 건축군에 대한 발굴이 끝난 셈이다.

 

 ● 서궁터 발굴 ●

 

서궁터의 발굴은 1970년 6월에 진행되었다. 서궁터의 지형은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졌다. 그러므로 서궁터의 서쪽부분이 많이 유실되면서 궁전터의 일부도 파괴되었다. 이런 상황은 발굴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었다.
발굴은 먼저 북궁 제6호, 제7호궁전터 서쪽의 회랑에 대한 시굴을 확대하여 서궁 제1호궁전터를 찾고 계속하여 제1호궁전터 앞마당을 ‘ㄴ’자 모양으로 둘러싼 회랑자리를 드러냈다. 다음 1호궁전터 서쪽에서 또다른 회랑자리를 발굴하였다. 서궁터의 뒤뜰에서는 다른 건축시설이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기묘한 바위가 다섯 군데 놓여 있었고 못자리 1개가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서궁 제1호궁전터를 발굴하면서 2중회랑과 후원까지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궁전이 공주가 살던 궁전이 아니었겠는가하고 생각하였다.
서궁 제1호궁전 서쪽회랑의 서부지대를 발굴하면서 나는 나래채가 없는 정면 5간, 측면 2간짜리 건축지 2채를 찾아냈다. 한채는 기초자릿돌이 모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며 회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서궁의 남쪽부분도 지형이 많이 파괴되어 경사지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건축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서궁발굴이 끝나갈 무렵에 서궁 제1호, 제2호궁전과 북성벽사이에서 제3호, 제4호건물터 2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건물들도 역시 본채의 좌우에 나래채를 대칭으로 배치한 형식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위치로 보아 이 건물들도 회랑으로 둘러 막히지 않았겠는가 생각하며 그 주위를 시굴침으로 조사해보았지만 끝내 회랑기초를 찾지 못하였다. 서궁터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였지만 서궁 제3호, 제4호궁전터의 회랑시설을 해명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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