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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문터를 찾다.

 
 

3) 남서문터를 찾다.

 

나는 남문터와 남동문터 발굴에 기초하여 남서문도 같은 형식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학생들에게 시굴지점을 정해주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땅을 1m 깊이까지 파내려갔지만 주춧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실망하여 맥을 놓고 있었고 나 역시 당황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당시 발굴장에 나와 계시던 채희국 강좌장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강좌장선생님은 주변지형을 유심히 살펴보시다가 남서문 북쪽지역이 동산처럼 지대가 높으므로 흙이 흘러내려 이 문터를 덮었을 수 있으므로 남문터의 기초가 땅속깊이 묻혔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직접 파서 확인하기로 결심하였다.
구덩이에 들어가 시굴침을 박는 순간 딱 하며 돌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있구나!’하고 환성을 올리면서 시굴침을 뽑아보니 불과 20cm 정도의 깊이였다. 학생들도 ‘야!’하고 환성을 올리면서 마저 파보았는데 역시 원형주춧돌이 드러났다. 그만 파자는 의견을 제기했던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짧았다며 채희국 강좌장선생님과 나에게 “선생님들은 정말 땅속을 들여다보는 귀신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남서문 발굴을 통하여 고고학자는 판단과 추리도 잘해야 하지만 일단 발굴을 시작한 다음에는 결과가 확인될 때까지 끈기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참으로 채희국 강좌장선생님은 나에게 고고학자의 자세와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실천행동으로 가르쳐 준 잊지 못할 고마운 스승이었다.
마침내 안학궁성벽 남쪽에 자리 잡았던 3개문에 대한 발굴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처음에는 과연 궁성문터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3개의 문터를 다 확인하고나니 발걸음이 나는듯 가벼웠다. 석양노을에 붉게 물든 학생들의 얼굴에는 발굴에서 이룩한 성공의 기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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