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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전 안학궁터의 상태

  • 리스트여닫기 안학궁터에 대한 발굴을 시작하다. 2. 안학궁터에 대한 발굴을 시작하다. 안학궁터 발굴은 1958년 이후 매해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다. 실례로 1959년도에 진행한 발굴에서는 채희국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들이 남문터를 조사하였는데, 지표면으로부터 약 40cm 정도의 깊이에서 회색노끈 무늬기와를 발굴하였다. 이번에 고구려연구재단의 학자들이 촬영해 간 회색가는노끈무늬 암키와는 당시에 발굴하여 학부진열장에 오랫동안 전시하였던 것이다. 내가 안학궁터 발굴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61년 4~5월 경이었다. 당시 대학 3학년 학생이었던 나는 채희국 선생님의 지도 밑에 안학궁 발굴에 직접 참가하였다. 나는 대학에 오기 전에 과학원 물질문화연구소(지금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조수로 2년 동안 일한만큼 발굴에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채희국 선생님은 60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서 나를 지명하면서 “전동무, 이번에 크게 제껴봅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해 발굴에서는 북궁터의 일부를 조사하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보기로 한다. 그 다음에도 매해 안학궁터에 대한 발굴은 조금씩 진행되었다. 내가 현장책임자로 발굴을 진행한 것은 1966년 6월부터였다. 이해 발굴을 진행하면서 채희국 강좌장선생님은 강좌교원들과 연구실의 고고학자들이 참가하는 협의회를 조직하고 모든 교원, 연구사들과 학생들이 우리 민족의 자랑인 안학궁터를 훌륭히 발굴하자고 호소하며 실무적인 조직사업을 진행하였다. 3학년 학생들의 전공실습으로 진행된 이 발굴에서는 영예로이 내가 현장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미 강좌의 교원이 된지 4년이 된 나는 이번 발굴을 통해 채희국 선생님으로부터 더 많은 지식을 배울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이 방대한 사업을 잘 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가지게 되었다. 거창한 규모의 발굴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나의 질문에 채희국 강좌장선생님은 “궁성부터 발굴하시오. 첫 순서는 남문터요.”라고 결론내렸다.

  • 리스트여닫기 궁전터의 비밀을 밝히다. 3. 궁전터의 비밀을 밝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내가 궁전터 발굴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61년이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채희국 선생님의 지시대로 북궁 조산 남쪽기슭의 중심부에 자리를 정하고 十자형의 트렌치(trench)를 째는 방법으로 시굴을 진행하였다. 약 50cm 정도 파내려가니 마침내 기초자릿돌이 나왔다. 이 기초자릿돌은 내가 안학궁터에서 처음으로 발굴해낸 것이었다. 기초자릿돌의 직경은 3m, 두께는 60cm 정도되었다. 이 기초자릿돌을 중심으로 사방을 시굴침으로 찔러가며 다른 자릿돌들을 찾아냈다. 이해 발굴에서는 북궁 제1, 2, 5호의 기초자릿돌들과 북궁회랑터 기초자릿돌들을 찾아냈다. 이 발굴을 통해서 건축지 발굴에 대한 적지 않은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이후 안학궁터 전체 발굴에서 귀중한 밑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