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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 터 평면 배치구조 조사

1) 안학궁 터 평면 배치구조 조사

현재 남아 있는 안학궁 터는 이미 발굴을 통해 확인된 유구를 중심으로 정비가 이루어져 있어 보고서와 같은 조사 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에서 북궁으로 이어지는 중심 지역이 좌우의 지역보다 상당히 높다는 것은 육안으로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3D레이저 스캐닝을 통한 조사에서도 남문에서 남궁 제1 궁전 터의 레벨차이가 4.5m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학궁의 성벽은 한변의 길이가 622m로 성벽둘레가 2,488m에 이르고, 1973년의 보고서를 통해 발굴 결과 총 건평 31,458m2나 되는 52채의 집자리들과 기둥자리 2,590여개를 확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번에는 기본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안학궁의 극히 일부에 대한 조사만을 시행하였다.
우선 안학궁의 중심곽으로 여겨지는 남궁 지역에서 제1호 궁전과 그 주위를 둘러싼 회랑에 대한 3D레이저 스캐닝 기기를 중심으로 평면 실측 조사를 실시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조사 대상지역은 보고서에서 확인하였던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생겨 있었지만, 이는 발굴이 이루어지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여겨진다. 다만 건물 터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건물의 기둥이 놓여졌던 자리에 남아 있는 적심들은 이동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보여 보고서의 도면과 맞추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1970년대의 발굴 이후 되메우기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들을 금번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을지 하는 부분도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 남궁 제1호 궁전 터 및 회랑 터 평면조사 ●
안학궁에 대한 평면 실측 조사 작업은 조사가 착수된 이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의 계획으로는 남문에서부터 남궁을 지나 중궁에 이르는 정도까지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기기의 작동이 원활하지 못하였고, 평면 실측 이외의 다른 작업까지 겹치면서 계획된 진도를 전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이에 따라 본 조사에서는 먼저 남문에서 남궁 제1호 궁전에 이르는 부분에 대한 레벨 측량을 실시하고 이어 남궁 제1호 궁전과 연결 회랑 부분에 대한 평면 측량을 시행하였다. 따라서 남궁 2호와 3호 궁전과 주변 지역, 중궁 이후의 유구와 중심 라인이 아닌 동궁과 서궁지역은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남문에서 남궁 제1호 궁전에 이르는 구간에 대한 레벨 측량에서는 남문 터와 남궁 제1호 궁전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대지와의 수평 차가 3m에서 3.4m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남궁 회랑 내에서는 완만한 경사를 이르며 중궁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회랑 내부 대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정지 작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그림 29). 1970년대 발굴 조사에서는 이 대지 부분을 어떻게 조성하였는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는데, 아쉽게도 이번 조사에서도 시간 상의 문제로 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 29] 안학궁 남문-남궁 중심곽 부분 평면도주 078
각주 078)
측량 및 실측에 있어 기준점(B.M)에서 계측한 해발 높이는 이전에 이루어진 북측의 작업과 연결하기 위해서 조사 후 북측 연구자들에 의해 정리되어 오기로 하였다. 그러나 일정 문제로 현재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이 부분은 후에 북측 연구자들과 협의하에 보완하여 보고토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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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0] 안학궁 남궁 제1궁전 중심곽 평면도
다음으로 남궁 제1호 궁전과 연결 회랑 부분에 대한 평면 측량을 실시하였다. 이는 보고서의 유구 도면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발굴 조사 성과를 이후의 조사 및 연구와 어떻게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확정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 30).
이 과정에서 안학궁유적의 평면에 대한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기존의 보고서에서 제시한 남궁 제1궁전과 주변회랑에 대한 평면도와 금번 이루어진 3D측량을 통해 작성한 평면도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였다. 우선 제1호 궁전터에 대한 유구 도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면이 57.1m이며 측면이 27.3m인 점을 감안하고 당시의 실측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염두에 둔다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회랑까지 포함한 유구 도면의 경우 그 차이가 분명해 진다. 회랑내에서 제1호 궁전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 있어서는 새롭게 측량한 도면과 약 11m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언하면 중심건물의 위치가 기존의 도면에서는 좀더 전면으로 나와 있으며, 이와 동시에 건물 뒷부분의 후랑도 그 길이가 건물의 위치차이만큼 길어지게 되었다(그림 31).
[그림 31] 안학궁 남궁 제1궁전 터와 회랑에 대한 구도면과 신도면의 평면도 비교
회랑 기둥자리의 개수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본고에서는 기존의 보고서가 개별건물지의 경우 어느 정도 정확하지만,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도면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는 당시 전면 평면도의 경우 개념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안학궁 평면 배치구조의 재검토 ●
안학궁 보고서의 도면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기존의 연구에서도 논의된 바가 있다. 치다(千田)는 안학궁 출토 기와에 대한 편년을 검토하면서 보고서의 사진과 도면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였다.주 079
각주 079)
千田剛道, 1983, 앞의 글, 1036~10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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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학궁의 건축에 있어서 몇 종류가 방위(方位)를 달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개축의 흔적으로 보아 안학궁의 하층에 초기 평양시대의 것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물론 이 글에서도 개별 건물자체에 대한 도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 전체 평면에 유구를 배치하는 것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고 본 것으로 여겨진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진과 그림을 1대 1로 비교한다는 것은 각각의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적의 기본적인 흐름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차이를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에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시도해 볼 필요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 고구려연구재단에서 간행된 보고서를주 080
각주 080)
고구려연구재단, 2005, 『위성사진으로 보는 고구려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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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안학궁 일원에 대한 위성사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이전까지 1973년 간행된 보고서와 『조선유적유물도감』에주 081
각주 081)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1989, 『조선유적유물도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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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되었던 사진 및 그림을 새로운 관점에서 비교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전에 치다에 의해 논의되었던 구역의 개별 건물들(사진의 A, B부분)의 방향문제와는 별도로 보다 큰 구역에서 궁궐의 평면플랜을 검토해 보아야 할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안학궁유적에서 확인된 세 개의 문화층 중에서 안학궁이 폐궁된 다음에 그 위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건축물들이 있던 유적층이주 082
각주 082)
전제헌, 1985, 「안학궁유적에 대한 연구」, 『고구려력사연구』,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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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되었던 곳은 북궁과 서궁터이다. 비록 북궁 제7호 궁전의 경우 이 위에 집을 지였던 사정으로 인해 기초보존상태가 좋지 못하기는 하지만,주 083
각주 083)
전제헌, 1985, 앞의 글,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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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북궁 유적은 다른 궁에 비하여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고 한다.주 084
각주 084)
전제헌, 1985, 앞의 글,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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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궁의 경우에도 아직 발굴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는 하나,주 085
각주 085)
전제헌, 1985, 앞의 글,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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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의 경우는 일정한 수준이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성사진을 통해 건물의 배치와 유구 잔존 현황의 검토한 결과 기존의 문제가 되었던 개별건물의 방향만이 아닌 회랑으로 둘러싸인 북궁 전체 축의 방향이 남궁 및 중궁과는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 42).
일반적인 고대 권위건축군의 배치와 플랜을 고려할 때 축의 방향을 달리하는 건축군의 경우 조성된 지형의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지만, 조성 혹은 중건의 시기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재 보고서의 도면을 통해 볼 때 안학궁 유적에서 유구의 중복 혹은 중건이 확인되는 건물터로는 남궁중심부로부터 동북쪽에 위치한 중궁 제2호 궁전과 북궁 제3호 궁전을 들 수 있다.
[그림 42] 안학궁 전경 인공위성 사진 (A·B는 千田논문)
1973년 보고서에 의하면주 086
각주 086)
김일성종합대학, 1973, 앞의 책,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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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결과 중궁 제2호 궁전의 기초시설이 2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두 기초시설의 높이의 차이는 10cm이며 밑에 있는 두 기초시설 사이는 몸채의 것과 같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 건물을 고쳐 지을 때 그 옆면을 좀 좁히는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지 후세에 완전히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한편 북궁 제3호 궁전의 기초시설에서도 2중으로 확인되었는데, 그 높이의 차이가 20cm이고 기초시설사이의 차이는 70~90cm에 이른다고 한다. 이 2중으로 된 기초시설을 통해서도 여기에서 두 번 집을 지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음 지은 집은 몸채와 나래채의 구분이 없는 단순한 형식의 긴 집이였고 그것을 헐고 다시 지은 집은 안학궁의 고유한 형식의 건물인 몸채와 나래채가 있는 집이였다고 한다.주 087
각주 087)
김일성종합대학, 1973, 앞의 책,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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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된 현상에 대한 해석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안학궁에서 다양한 중복 또는 중건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건물배치의 축을 달리하는 건축군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궁의 경우에는 보고서에서도 언급한 바와같이 훨씬 더 분명한 수준으로서의 중건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각주 078)
    측량 및 실측에 있어 기준점(B.M)에서 계측한 해발 높이는 이전에 이루어진 북측의 작업과 연결하기 위해서 조사 후 북측 연구자들에 의해 정리되어 오기로 하였다. 그러나 일정 문제로 현재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이 부분은 후에 북측 연구자들과 협의하에 보완하여 보고토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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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79)
    千田剛道, 1983, 앞의 글, 1036~10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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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0)
    고구려연구재단, 2005, 『위성사진으로 보는 고구려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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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1)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1989, 『조선유적유물도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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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2)
    전제헌, 1985, 「안학궁유적에 대한 연구」, 『고구려력사연구』,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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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3)
    전제헌, 1985, 앞의 글,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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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4)
    전제헌, 1985, 앞의 글,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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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5)
    전제헌, 1985, 앞의 글,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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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6)
    김일성종합대학, 1973, 앞의 책,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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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87)
    김일성종합대학, 1973, 앞의 책,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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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 터 평면 배치구조 조사 자료번호 : cr.d_0006_0010_004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