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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4. 벽화

 

무덤에는 원래 천장과 벽면의 전체 부분에 벽화를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사진 132·133). 그러나 벽화가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석수가 계속 흘러내리는 과정에 박락되었거나 흐려졌으며, 벽면의 일부에는 석회수가 흐르다가 굳어져 회막이 형성되었으므로 벽화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현재 안길 양 벽에서 행렬도, 앞칸 북벽에서 붉은 기둥, 사잇길에서 문지기장수, 안칸에서 기둥과 여러 가지 무늬들이 발견되었다.
안길 동벽의 벽화는 많이 파괴되었는데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안쪽으로 향하고 있는 행렬도이다.
안길 천장에서 113㎝ 내려와 수평으로 먹선을 그은 것이 나타났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상하로 구분하였던 것 같다.
원래는 3단으로 구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벽면 윗단에는 4필의 말과 5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말들은 두 마리가 앞서고 두 마리는 벽면의 뒷부분에 그려져 있으며 그 사이에 3명의 인물이 있다.
아래 단에는 갑옷을 입힌 말의 몸통과 다리가 보이고 그 위에 그 말을 타고 가는 듯한 사람의 머리가 약간 보인다.
그 아랫부분에는 검은 무리수건을 쓰고 긴 창 같은 것을 들고 가는 사람들이 그려졌는데 회막이 두텁게 덮여 있으므로 인원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안길 서벽에는 수레바퀴와 뒤에 뿔이 솟은 듯한 문관모를 쓴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가 탄 말이 약간 보인다. 관모를 쓴 사람의 눈과 콧수염 그리고 말갈기가 아주 생동하게 남아 있다.
앞칸 벽화도 역시 회막이 덮여 있어 잘 알 수 없다. 현재 북벽·서쪽 부분에 붉은 기둥이 그려져 있는 흔적이 있으며 동벽에는 누런색·검은색으로 무엇인가를 그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사잇길 동벽에는 현재 아랫부분에 검은색으로 그린 장수가 입은 찰갑옷과 바지가 나타나며 양옆에는 붉은색 기둥을 그렸던 흔적이 있다. 문지기 장수를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칸의 벽화 내용은 잘 알 수 없으나 현재 윗부분에 도리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검은색의 어떤 무늬 같은 것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도리는 검은 선으로 테를 그리고 그 안에 붉은색을 칠한 다음 검은 먹선으로 장식무늬를 그렸던 것인데 정확히 알 수 없다.
남벽의 동쪽 부분에 붉은색 기둥이 그려져 있으나 거의 박락되고 장식무늬가 약간 보인다. 동벽의 남쪽 부분에 직선과 원형의 어떤 기하학적 무늬 같은 것이 보인다.

동산동 고구려 벽화무덤은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 벽화무덤들 가운데서 비교적 규모가 크고 구조형식이 독특한 무덤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평양시 중심부에서 알려진 고구려 벽화무덤 중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이 무덤은 무덤길과 안길, 앞칸과 두 곁칸, 안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조형식의 무덤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무덤칸 위에 회와 숯, 진흙을 엇바꾸어 층층으로 다지면서 봉분을 쌓은 것은 다른 무덤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것이다.
무덤에서 드러난 완전한 개체분의 인골과 순금 및 순은장식품들, 사자[범] 모양의 청자기와 청동화폐류 등은 고구려 사람들의 체질과 경제문화의 발전수준, 그 영향관계를 보다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동산동 고구려 벽화무덤은 그 구조상 덕흥리벽화무덤·약수리벽화무덤과 유사성이 많고 여러칸무덤 형식에서 곁칸이 있는 두칸무덤 및 감이 있는 두칸무덤으로 넘어가는 과도형식의 무덤형식으로 볼 수 있으므로 현재 학계에서는 4세기 말~5세기 초에 축조된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무덤을 왕릉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피장자의 관등급은 매우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발굴된 동산동 고구려 벽화무덤은 평양시 낙랑구역 일대에서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평양천도 이전 시기에 평양 일대에 축조된 가장 크고 독특한 무덤으로서 앞으로 고구려의 사회관계와 평양 일대 진출, 문화의 발전상과 그 보급 정황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들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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