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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군과 옥도리의 자연지리적 환경 및 연혁

 
  • 구분논고
 

Ⅱ. 용강군과 옥도리의 자연지리적 환경 및 연혁

 

용강군은 대동강 하류 서북쪽 유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포시 온천군, 강서구역, 대안구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평안남도의 서부 벌방지대에 속하는 용강군의 지형은 준평원에 가까우며, 북서쪽으로부터 남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다가 남동부에서 다시 조금 높아진다. 군의 북서부는 온천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남북방향으로 뻗은 오석산 줄기와 그 동쪽 비탈면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산지를 이루고 있다. 오석산 줄기에는 이 산줄기의 주봉을 이루며, 지대에서 제일 높은 오석산(烏石山, 해발 566m)을 비롯하여 화장산[(華葬山), 일명 봉곡산(鳳哭山), 해발 395m]·신덕산(神德山, 해발 410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석천산(石泉山)·두륵산(頭勒山) 등 비교적 낮은 산들이 있으며, 중부지역에는 언덕들이 드문드문 있고, 그 사이마다 구룡(九龍)벌, 용강(龍岡)벌이 펼쳐져 있다.
지질상태를 보면 군 소재지를 중심으로 시생대(始生代)의 편암류가 분포되어 있고, 오석산 줄기와 그 일대에는 중생대(中生代) 단천암군(端川岩群)에 속하는 깨바위가 분포되어 있다.
기후는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따뜻한 편으로 연평균 기온이 10℃, 1월 평균기온 -7.3℃, 8월 평균기온 24.9℃이고 일조율은 58%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880㎜ 정도이다.
군에는 대동강의 지류인 인황천(仁皇川, 길이 21.3㎞)과 서천(西川)·삼화천(三和川) 등 길이가 4㎞를 넘는 8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용강은 옛날 황룡국(黃龍國)이 있던 곳이며 고구려가 병합하였다고 한다. 고려시기에는 황룡성(黃龍城)이라고 불렀으며 일명 군악(軍岳)이라고도 하였고 후에 이름을 용강(龍岡)으로 고치고 현으로 하였다.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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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增東國輿地勝覽』권52 平安道 龍岡縣.


그러나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동사회강』·『삼국사기』·『고려사』 지리지·『동사강목』 등을 인용하여 용강에 고구려의 황룡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믿을 수 없다고 하였지만 여지고(與地考)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용강현을 군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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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補文獻備考』권18 輿地考6 龍岡縣·龍岡郡.



[도면 1] 옥도리 일대 유적 분포도
- 동북아역사재단, 2008, 『일본 소재 고구려 유물Ⅰ』 20쪽에 의거 재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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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1] 옥도리 일대 유적 분포도

    동북아역사재단, 2008, 『일본 소재 고구려 유물Ⅰ』 20쪽에 의거 재작성


용강군은 해방후 강서군(江西郡) 대안리(大安里)와 온천(溫泉)·남포(南浦) 일대의 일부 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2년에 대대면(大代面)·신녕면(新寧面)·금곡면(金谷面)·귀성면(貴珹面)·서화면(瑞和面)·용월면(龍月面)의 전체 리들과 해운면(海雲面)의 10개 리를 온천군에 넘기고 그 후 갈천리(葛川里)·덕해리(德海里)·우산리(牛山里)를 남포시에 넘겨주었다.
천연기념물로는 “동오동느티나무”·“석천산느티나무”가 있으며 “용강타령”·“용강기나리”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용강군에는 고조선·고구려 시기의 역사유적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우선 군 소재지인 용강읍 진지동(眞池洞)에 고구려의 벽화무덤인 용강큰무덤과 쌍기둥무덤(雙楹塚)이 있으며 오석산에는 큰 산성인 황룡산성이 있다.
다음으로 용강읍에서 약 4㎞ 정도 떨어져 있는 석천산(石泉山)에는 고조선 시기의 무덤인 120여 기의 고인돌무덤이 있으며 여기에서 특히 석천산1호고인돌무덤이 유명하다. 또한 옥도리(玉桃里)·용호리(龍湖里)·용흥리(龍興里)·후산리(後山里) 일대에는 고구려의 석실봉토무덤들이 수백 기나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 석천사(石泉寺)를 비롯한 절터와 임진왜란 시기 평양성(平壤城) 탈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김응서(金應瑞) 장군의 생가와 충렬사(忠烈祠)가 있다.
옥도리는 용강군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있다. 옥도리는 옥동(玉洞)의 “玉”자와 도교동(桃校洞)의 “桃”자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옥도리는 용강군 산남면(山南面) 옥동(玉洞)·도교동(桃校洞)·관남동(館南洞)이 합쳐져 나왔으며, 1952년에 서부리(西部里)를 합치고, 1975년에 양곡리(陽谷里)와 동우동(桐隅洞)이 편입되었다.
해방전까지 옥도리는 용강군의 소재지였다.
옥도리는 오석산 줄기에서 뻗은 작은 산줄기들을 경계로 하여 용호리(龍湖里)·용흥리(龍興里)·삼화리(三和里)·애원리(愛院里)·양곡리(陽谷里)와 서로 잇닿아 있다.
옥도리의 전반적 지역은 200m 안팎의 야산들과 언덕들로 되어 있다.
오석산 줄기에서 뻗은 산줄기들이 옥도리의 남쪽과 북동쪽으로 뻗어 있고, 리의 북쪽에는 오석산 줄기의 주봉우리인 오석산이 있다. 서쪽에는 오산(鰲山)·대덕령(待德嶺)·투구봉[笠岩山]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화장산(華藏山)·마산(馬山)·두륵산(頭勒山) 등 산들이 있고, 남쪽에는 충렬산이, 멀리로는 우산(牛山)의 국사봉(國師峯)과 남포시가지가 그림처럼 바라다 보인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오석산에서 시작하여 옥도리 중심을 동서로 가로 지른 서천(西川)의 양쪽 충적지에서 농업활동을 하는데 좋은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또한 이 일대는 남포해안으로부터 평양으로 통하는 요충지에 있어 교통 상 매우 유리하다.
이러하듯 농업활동과 교통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옥도리 일대에는 역사유적들이 적지 않게 분포되어 있다.
이번에 발굴 조사한 고구려 벽화무덤은 옥도리 소재지에 있는 황산(黃山) 언덕에 있으며(사진 6), 동우동무덤떼는 옥도리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동우동의 동글메에 있고, 오석산 일대의 성외동(城外洞)·향교동(鄕校洞) 무덤들은 리에서 북쪽으로 1.5~2㎞에 있으며, 오석산에 있는 황룡산성은 옥도리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져 있다. 또한 석천산 일대의 와동(瓦洞)고인돌무덤은 용강읍에서 서북쪽으로 3㎞ 떨어진 곳에 있다(도면 1).

 

주 002
『新增東國輿地勝覽』권52 平安道 龍岡縣.
주 003
『增補文獻備考』권18 輿地考6 龍岡縣·龍岡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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