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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발해 성 터

 
  • 저필자宋基豪(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발해유적은 성터, 무덤, 절터가 대별되는데, 위성 사진에서 그 모습이 확인되는 것은 성터뿐이다. 虹鱒魚場고분군처럼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도 있지만, 고분의 봉분이 크지 않아서 고분군의 대체적인 범위만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눈에 띄는 성터 사진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발해 상경성은 규모가 워낙 커서 항공사진 한 장에 모두 담아내지 못할 정도이니 지상에서 돌아다니며 그 면모를 파악하기란 아주 어렵다. 이럴 때에 위성 사진이 일목요연하여 크게 유용하다. 연해주의 발해성을 찍은 위성사진이나 항공사진도 역시 성터의 현상을 쉽게 파악 하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발해 유적은 접근조차 할 수 없으므로 위성사진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위성사진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 3개국 영역에 걸쳐 있는 발해 유적을 두루 살펴보는데에 매우 실용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I. 발해 성터 개황

 

지금까지 발해 때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나 보루들은 만주 지역에서 80개 이상, 북한에서 20여 개, 연해주에서 28개 정도여서 전체 숫자가 120개를 넘는다. 그러나 전면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곳은 거의 없어서 발해 성의 면모를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발해 성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1933~1934년에 일본의 東亞考古學會가 東京城(上京城)을 발굴하면서 비롯되었고, 이후 일본인 연구자들은 西古城과 半拉城(八連城)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중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1960년대에 중국학자들이 북한학자들과 공동으로 상경성을 발굴했고, 근래에는 발해유적의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하면서 상경성, 서고성 등을 발굴했다. 러시아에서는 과거에 노보고르데예프카 성터 발굴에 힘을 기울였으나 근래에는 크라스키노 성터를 주로 발굴하면서 말갈문화와 구별되는 발해문화의 표준을 설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발해의 성은 입지 조건에 따라 ‘평지성’과 ‘산성’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면 상경성 · 서고성 · 팔련성 등은 평지성에 속하고, 城山子山城·城墙砬山城 등은 산성에 속한다. 기능에 따라서는 ‘중심성’과 이를 호위하는 '衛城’ 으로 분류되고, 위성은 다시 보루 · 차단성 등으로 나뉜다. 성산자산성과 영승유적 주변에는 石湖古城 · 黑石古城 · 馬圈子古城 · 通溝嶺山城 등이 둘러싸고 있고, 강을 방어하기 위한 南臺子古城堡 · 大甸子古城堡 · 孫家船口古城堡 등의 보루도 있다. 서고성 주위에는 獐項古城 · 龍泉古城 · 紅星古城 · 河南屯古城 등의 위성이 자리잡고 있다. 함경도지역의 성을 예로 들면 靑海土城은 중심성이고, 강미봉 보루나 노루목 보루 등은 강가에 축조된 보루에 속하며, 새덕 차단성이나 지방리 차단성은 차단성에 속한다.
축성 재료를 기준으로 발해의 성곽을 분류하면 ‘토성’ · ‘석성’ · ‘土石 混築城’이 있다. 평지성은 토성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산성은 석성과 토석 혼축성이 많고 그 중에서도 석성이 주류를 이룬다. 크라스키노 성터에서는 안팎을 돌로 쌓고 안에 흙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성벽을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축조법은 상경성 성벽에서도 일부 확인되는데, 고구려 축조술을 계승한 것이다. 최근에 몽골의 遼代 성터에서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축조된 것이 확인되어, 발해 유민들이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요나라 때의 성이나 중원지방의 성은 흙으로 판축한 것이라서 이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평면 형태에 따라 크게 ‘장방형’ · ‘정방형’ · ‘기타 유형’으로 나뉜다. 평지성은 계획적으로 축조되어서 여러 형태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산성은 지형에 따라 축조하기 때문에 대부분 부정형에 속한다. 장방형에 속하는 것에는 상경성 · 팔련성이나 서고성이 대표적인데, 상경성은 횡장방형이고 팔련성과 서고성은 종장방형이다. 정방형에 속하는 것에는 연길시 北大古城(延吉街 北土城) · 돈화시 石湖古城, 스쵸클랴누하 성터 등이 있다. 연해주 크라스키노 성터의 경우에 남벽은 직선, 나머지 3면은 호형을 이루어 D자형을 이룬다.
발해는 전국에 5경 · 15부 · 62주 및 그 아래의 縣을 두어 다스렸고, 이러한 소재지마다 성을 쌓아 통치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 기준에 따라 발해 성들을 ‘도성’ · ‘부성’ · ‘주성’ · ‘현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도성에는 성산자산성 · 상경성 · 서고성 · 팔련성이 있다. 성산자산성은 대조영이 성을 쌓고 도읍을 정했다고 하는 동모산으로 추정되는 곳이니, 길림성 敦化에 있는 초기 도읍지이다. 이 산성과 짝을 이루는 평지성으로 그동안 敖東城과 永勝遺蹟이 지목되었으나, 근래에 발굴해본 결과 오동성에서는 발해 층위가 확인되지 않았고 영승유적은 金代 절터로 판명되었다.
상경성은 흑룡강성 寧安에 위치한다. 756년 초에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수도가 되었던 곳이다. 서고성은 길림성 和龍에 있는데, 8세기 전반기에 일시적으로 도읍을 삼았던 곳이고, 팔련성은 길림성 琿春에 있는데 8세기 후반기 에 10여 년간 도읍으로 정했던 곳이다.
부성으로 지목되는 것에는 靑海土城 · 蘇密城 · 大城子古城 등이 있다. 남경 남해부의 소재지로 추정되는 청해토성은 함경남도 북청에 있는데, 숙신고성 또는 북청토성이라고도 불린다. 소밀성은 길림성 棒甸에 있고, 長嶺府의 소재지로 여겨 진다. 率賓府의 소재지로는 대성자고성 또는 유즈노 우수리이스크 성터가 지목되어 왔는데, 근래에는 대성자고성으로 기울고 있다.
주성으로는 크라스키노 성터 · 溫特赫部城 · 薩其城 · 南城子古城 · 南湖頭城 등이 거론된다. 연해주 하산 구역에 있는 크라스키노 성은 동경 관할의 鹽州 소재지로 비정된다. 성 옆을 흐르는 강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얀치헤’ 즉 鹽州河로 불렸기 때문이다. 훈춘시에 있는 온특혁부성이나 살기성도 역시 동경 관할의 慶州 · 穆州 · 賀州 등의 소재지로 추정된다. 길림시 남성자고성은 獨奏州의 하나인 涑州의 소재지로 비정되고, 남호두고성은 上京에 속했던 湖州의 소재지로 거론된다.
현성으로 비정되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흑룡강성 영안시 城東鄕 土城子村에 있는 土城子古城이 상경 龍州 관할의 長平縣으로 보는 견해가 있을 정도이다. 연해주 스쵸클랴누하 성터도 현성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발해 도성은 초기에 산성 중심이었다가 이후 평지성 중심으로 전환한다. 이것은 초기에 산성의 나라였던 고구려 전통을 계승하다가 이후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II. 위성 · 항공 사진 들여다 보기

 

 

 1. 상경성

 

발해 도성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上京城이다. 이 성은 당나라 長安城을 본떠서 外城 · 內城(皇城) · 宮城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성은 동서로 긴 横長方形으로 되어 있는데, 위성 사진에서도 그 윤곽이 뚜렷이 확인된다(사진 1). 외성 북서각 밖으로 하천이 흘러서 북벽과 서벽이 직각으로 만나지 못하고 안쪽으로 약간 휘어 있다. 북벽 중간에서는 성벽이 밖으로 튀어 나와 있는데, 돌출된 부분이 서쪽에서는 1단으로 꺾여 나온 반면에 동쪽에서는 2단으로 꺾여 나왔다(사진 2). 이에 따라 외성 평면은 凸자형을 이룬다.
외성 전체 길이는 16,296.5m인데, 둘레 약 36.7km인 장안성과 비교된다. 이에 비해서 동시대의 신라 王京과 일본 平城京에는 외성이 축조되지 않았다. 외성 밖에는 해자를 돌렸다. 성벽의 현존 높이는 3m 내외인데, 정식으로 발굴되지 않았지만 토축, 석축, 토석혼축의 방법을 섞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북쪽 일대에서는 안팎으로 돌을 쌓아올리고 내부에 흙을 채워넣은 모습이 육안으로도 확인되는데, 이런 축조 방식은 크라스키노 성터에서도 채택되었다. 이것은 중원의 판축토성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고구려 전통을 반영한다.

상경성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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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경성 위성사진


외성에는 주요 간선도로와 연결된 10개의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성사진을 보면 현재 남벽에 4개, 동벽에 2개, 북벽에 5개, 서벽에 2개의 도로가 지나는데, 대체로 동벽 남부와 서 벽 남부를 관통하는 도로, 남벽 중간을 지나는 도로는 발해 당시의 성문과 일치한다.
성 안에는 11개의 도로가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 전체가 바둑판 모양의 坊을 이룬다. 방의 전체 숫자는 81개 이상으로 추정되며, 4개의 방이 한 단위를 이루어 田자 모양을 한다. 이곳에는 일반 주택뿐 아니라 시장이나 절이 자리잡고 있었다. 위성 사진에서는 종횡으로 구획된 선들이 희미하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발해 당시의 구획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여준다.
성 안의 북쪽 가운데에는 궁성이 보인다(사진 2). 사진을 보면, 성벽을 따라 나무가 자라고 있는 종장방형 구획이 보이는데, 이곳이 궁성지이다. 이에 비해서 그 밖으로 감싸고 있는 내성은 희미한 윤곽만 확인할 수 있다. 궁성지 북쪽으로는 밖으로 돌출된 외성 성벽이 지난다. 五鳳樓라 불리는 궁성 정문은 현재 잘 복원되어 있는데, 사진에서는 궁성 남벽 중간에 건물 기단 양쪽으로 난 두 개의 도로 흔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북쪽으로 5개 궁전지가 남북으로 배열되어 있다.

상경성 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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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경성 궁성

제2궁전지(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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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궁전지(1997년)


제1궁전지는 1980년대 초에 복원해놓았고, 나머지 4개 궁전은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발해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 궁성지를 발굴한 뒤에 건물 臺地를 복원해놓았다. 이 사진은 2004년에 촬영 되어 제2, 제3, 제4 궁전지가 복원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제2궁전지를 예로 들면, 1997년에 방문했을 때의 모습과 복원이 완료된 뒤인 2001년에 찍은 모습에서 외관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 확인된다(사진 3, 4).
제2궁전지 뒤쪽으로 황토색으로 노출되어 두 개 건물지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제3, 제4 궁전지이다. 특히 제4궁전지 북쪽으로 세로의 두 줄이 보이는데, 이것은 굴뚝 고래 자리이다. 제4궁전지에는 쪽구들(온돌)이 시설되어 있어 왕의 침전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궁성 동쪽 밖에 나무 그림자 때문에 U자형으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궁궐 내부에 조성된 인공호수로서 속칭 御花園인 禁苑址이다. 호수 북쪽에 두 개의 원형 둔덕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정자를 세웠던 주초들이 발굴되었다.
궁성 남쪽으로 관청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북 두 줄로 나란히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은 도로이고, 그 좌우에서 관청지가 발굴되었다.
상경성 북쪽으로 목단강에는 발해시대에 사용되었던 五孔橋, 七孔橋라 불리는 교량 유적이 남아 있는데 , 칠공교의 7개 교각 자리는 위성 사진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사진 5). 상경성에서 이 다리를 건넌 뒤에 서쪽으로 가면 三陵屯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발해 왕실 무덤 5기가 확인되었다.

제2궁전지(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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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궁전지(2001년)

칠공교 교각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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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공교 교각 유적


 

 2. 서고성

 

발해는 동모산에 도읍했다가 顯州로 천도했으며, 얼마 뒤에 상경성으로 옮겨갔다. 서고성은 현주에 도읍했을 때의 소재지이면서, 상경 천도 후에 마련된 5경의 하나인 중경 현덕부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현재의 유적은 중경이 설치된 뒤의 모습을 반영한다.
외성 둘레는 2720.1m이고, 성 안 중북부에 위치한 내성은 둘레가 992.8m이다. 서고성의 모습을 살펴보는 데에는 일제시대에 찍은 항공사진이 유효하다(사진 6). 이 사진에서 4개의 외성벽이 뚜렷이 드러나고, 북벽 밖을 따라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아울러 내부에 종장방형의 구획이 보이는데, 이곳이 내성이다.
2000년 이후 5년간 발굴하여(사진 6) 근래에 보고서가 간행됨으로써 내성의 구조가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 내성 북쪽에 동서 격벽이 지나가고 있어 남북 두 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남쪽 구역에서는 4개 궁전지, 북쪽 구역에서는 1개 궁전지가 발굴되었다. 남쪽의 4개 궁전지는 회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반면에 북쪽구역의 제5궁전지는 독립 건물이었다. 제4궁전지에서는 쪽구들 유구가 확인되었다.

 

 3. 팔련성

 

팔련성은 동경 용원부 소재지이면서 8세기 말에 일시 도읍했던 곳이고, 일본 및 신라와 왕래하던 교통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서고성항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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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고성항공사진

서고성 궁전지 발굴 모습(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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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고성 궁전지 발굴 모습(2001년)


유적이 많이 파괴되어 지상에서는 그 면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위상사진에서는 의외로 외성과 내성의 윤곽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외성 평면은 방형에 가까운데, 전체 둘레는 2,894m이다. 성 안은 모두 경작지로 변해 있는데, 둑의 경계선이 발해 당시의 구획선을 따른 곳이 많아서 대체적인 내부 구획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북부에 동서로 가로지르는 격벽, 중앙에서 세로로 배열된 세 개의 구역은 발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대체로 8개 구역이 설정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에 뚜렷이 자리잡고 있는 종장방형 구역은 궁전지가 있는 핵심지역으로서 전체 둘레는 l, 072m이다. 남벽은 안으로 휘어져 있고, 그 중간에 문지가 있다. 내부에는 궁전지가 남아 있는데, 사진 북부에 궁전 대지 흔적이 몇 개 보인다.

 

 4. 청해토성

 

청해토성은 5경 가운데 남경에 속했던 곳으로서 전체 둘레가 2,132m로서 동서로 장방형인 토성이다. 위성사진에 서 볼 수 있듯이(사진 9) 가운데 남북으로 난 길을 중심으로 동서 구역으로 나뉘는데, 방형의 서쪽 구역은 성벽이 잘 남아 있는데 비해서 동쪽 구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네 벽의 가운데에 성문이 서로 대칭되게 있고 성 안에는 이 문들을 연결하면서 가운데 남북 방향의 길을 포함하여 十자 모양의 도로가 나 있다. 성벽에는 角樓와 甕城, 雉가 설치되어 있다.

팔련성 위성사진 (구글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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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련성 위성사진 (구글 어스)

청해토성 위성사진(구글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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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토성 위성사진(구글 어스)


 

 5. 크라스키노 성터

 

크라스키노성은 동경 예하의 鹽州가 있던 곳이고, 일본으로 향하던 배가 출항하던 항구도시였다. 평면은 D자형으로 남벽만 직선에 가깝고 나머지 3면은 타원형을 이룬다. 성벽 높이는 1.5 〜2m로 높지 않고, 전체 둘레는 1,380m이다. 북 · 동 · 남벽에 각기 1개의 성문이 나 있고, 성문마다 장방형의 甕城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습지로 변해 있지만, 성벽의 윤곽은 항공사진에서 뚜렷이 확인된다(사진 10). 사진 제일 아랫쪽으로 약간씩 파진 부분이 성 북서쪽 구역에 해당하는데, 이곳에서 다년 간에 걸친 한러 공동 발굴을 통하여 절터, 우물, 기와 축조 지하창고, 쪽구들 주거지 등이 발굴되었다. 연해주의 성터들이 일반적으로 金代에 재사용된 데 비해서 이 성은 발해 멸망 직후에 폐기된 것이 확인되어 연해주에서 발해 문화를 연구하는 지표 유적이 되고 있다.
성터 윗쪽으로 鹽州河에서 유래된 얀치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데, 성과 강 사이의 평지에 발해와 금나라 때의 고분들이 분포해 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엑스페디치야灣이다. 이 일대에서 발해 사신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훈춘 팔련성에서 배를 타고 두만강을 따라 바다로 나가는 것보다, 육로를 이용하여 크라스키노 성으로 나오는 것이 훨씬 시간이 단축된다. 아울러 이곳의 바다는 다른 곳과 鹽度가 달라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이 항구 도시로 개발되었던 것 같다.
남문지가 사진 윗쪽으로 보이고 이로부터 사진 아랫쪽으로 색깔이 다른 직선 부분이 있는데, 이곳은 너비 30m 정도의 大路가 지나는 곳이다. 이 모습은 다른 사진에서 자세히 보인다(사진 11). 이 사진에서 아랫쪽에 방형이 남문과 옹성에 해당하고, 그 윗쪽으로 밝게 보이는 부분이 대로에 해당한다.

크라스키노 성 항공사진(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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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스키노 성 항공사진(1992년)

크라스키노 성터 남문지와 대로 유적(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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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스키노 성터 남문지와 대로 유적(1992년)

쪽구들 주거지(2005년, 고구려연구재단과 러시아 공동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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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구들 주거지(2005년, 고구려연구재단과 러시아 공동 발굴)


이 성터에서 발굴된 우물은 고르바트카 성터에서 발굴 된 것과 함께 고구려식으로 쌓았다. 주거지의 쪽구들 시설(사진 12)도 고구려로부터 배워온 것이다. 또 성벽 발굴을 통하여 안팎에 돌을 쌓고 그 안에 흙을 채워 넣는 상경성 축조 방식을 택한 것이 확인되었다.

 

 6. 니콜라예프카 성터

 

이 성은 평면이 이등변 사다리꼴, 또는 크라스키노 성터처럼 D자형에 가깝다. 이런 모습은 항공사진에서도 확인된다(사진 13). 성 안에 직선으로 지나는 것은 철로이다. 오른쪽 위로 보이는 마을이 성터 명칭을 따오게 된 니콜라예프카인데, 스탈린 강제 이주 전 이곳에 거주한 고려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성 왼쪽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니콜라예프카성터(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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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예프카성터(1992년)

니콜라예프카성터 동문지(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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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예프카성터 동문지(1992년)


성벽의 전체 둘레는 1,550m이고, 높이는 10m에 이를 정도로 높다. 내부에 內城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지표상으로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 성에는 치 12개, 문지 3개가 남아 있는데, 2개 문지에는 옹성이 있다. 항공사진에서도 東門址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ㄱ자형 옹성의 모습이 잘 확인된다(사진 14). 성벽 밖으로는 해자가 남아 있는데, 이 사진에서는 겨울이라서 실개천처럼 성문 밖을 돌아가고 있다.
이 성은 발해 때에 축조되어 사용되었고, 금나라 때에 다시 사용되었으며, 이 때에 성벽도 크게 중축되었다. 따라서 현재 모습은 발해 때의 원형은 아니다. 원래 이 성은 금나라 때 것으로 여겨오다가 성 안에서 당나라 때의 관직이 새겨진 부절이 발견되면서 발해 때에도 이 성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종전에는 발해의 지방에 있던 장군이 당나라로부터 부절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여, 이곳을 발해 15부의 하나인 定理府의 소재지로 비정해왔다. 그런데 근래에는 발해 영역 밖에 있던 靺鞨 首領이 독자적으로 당나라에서 받은 것으로 보아서 발해 국경선이 이곳까지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7. 마리야노프카 성터

 

발해 성터로는 연해주에서 최북단에 위치한다. 평면은 부정형에 가까운 반타원형이다. 우수리 강 지류에 바짝 붙어 있어 강물에 면한 남벽은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서 동, 북, 서의 성벽은 잘 남아 있는데, 전체 모습은 위가 넓고 아래가 오른쪽으로 좁아져 ㄱ자처럼 보인다. 이처럼 발해 성터는 강가에 축조된 것이 많으니, 수로가 주요 교통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성벽은 전체 둘레가 1330m이고 높이는 5〜7m에 이른다. 위성 사진에서는 강가 북쪽과 동쪽으로 성벽이 드러나 있다(사진 15). 모두 12개의 치가 시설되어 있다. 또 2개 성문이 있는데, 동문에서는 옹성이 확인된다.
이 성은 1995년에 한러 공동으로 발굴했을 때(사진 16)에 다수의 주거지와 돌담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성터도 발해 때에 사용된 뒤에 금나라 때 에 재 사용되어, 두 개의 문화층 위를 형성하고 있다. 발해 때 어느 행정구역에 속했지에 대해서는 불명이다.

마리야노프카 성터(구글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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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야노프카 성터(구글 어스)

마리야노프카 성터 주거지 발굴 모습(1995년, 고려학술문화재단과 러시아 공동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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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야노프카 성터 주거지 발굴 모습(1995년, 고려학술문화재단과 러시아 공동 발굴)


 

 8. 스쵸클라누하 성터

 

쉬코토보 강변에 있는 스쵸클랴누하 마을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스쵸클랴누하-1로 불리는 이 성터의 평면은 방형으로 전체 둘레는 1,000m 정도이고, 성벽 높이는 5~7m이다. 성벽에서 자라는 나무 때문에 위성 사진에서도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다(사진 17). 네 개의 성문에 옹성이 잘 남아 있고, 성벽 밖으로 해자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아직 정식으로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초기 철기시대부터 발해를 거쳐 금나라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규모로 보아서 발해 때에는 縣級 행정구역의 소재지였을 것이다.
이 성으로부터 북동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스쵸클랴누하-2로 불리는 산성이 있다. 사진에서 도로를 건너 윗쪽으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돌로 쌓은 성벽의 전체 길이는 250~300m이다. 축조 형식으로 보아 금나라 때 것으로 추정되지만, 내부에서 초기철기시대 유물도 수습되었다.

스쵸클라누하 성터(구글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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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쵸클라누하 성터(구글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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