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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朝英) 조약은 미국 조약을 기준으로 하고 한불(韓佛) 조약은 마건충(馬建忠)이 돕도록 했다는 서리북양대신(署理北洋大臣)의 문서

1. 朝·美條約체결이 마무리되었으며, 英·朝條約도 미국과의 조약에 비추어 정하고자 합니다(美韓議約完竣, 英韓卽可照美約定擬). 2. 이미 馬建忠에게 지시하여, 諭旨에 따라 조선에 잠시 더 머물면서 朝·佛條約체결을 돕도록 하였습니다(已囑馬建忠遵旨暫駐朝鮮襄助法韓議約).

 
  • 발신자署理北洋大臣張樹聲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2년 4월 20일 (음) , 1882년 6월 5일
  • 문서번호2-1-1-55 (413, 585b-587b)
4월 20일, 署理北洋大臣 張樹聲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다.
朝·美條約 체결 논의가 이미 마무리되었고, 날짜를 정하여 모여서 서명하는 일에 대해서는 열람하실 수 있도록 17일에 이미 따로 서신으로 올린 바 있습니다. 오늘 馬建忠 道臺가 李中堂大人께 올리는 서신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6일에 미국·조선 양국 사절이 연안 제물포에서 천막을 세우고 만나 서명을 하였으며, 이때 조선 국왕의 照會와 國書條約을 모두 미국사절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미국 측은 곧바로 8일에 출항하여 귀국하였습니다. 영국사절 윌리스(George O. Willes)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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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Sir George Omancy Willes, 韋力士, 1823~1901)는 영국 해군제독으로 아편전쟁에도 참여하였다. 1881~1884년 영국의 주중국 함대사령관을 맡았으며, 1882년에는 영국정부를 대표하여 조선에서 조·영조약을 체결하였으나, 이 조약은 영국에서 비준을 받지 못하였다.

해군제독이 이미 군함을 타고 도착했는데, 대략 모든 것을 미국과의 조약에 비추어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현재 정해진 朝·美條約에 대해 아직 馬道臺가 보낸 문건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도착하기를 기다려 따로 奏摺으로 갖추어 상세히 아뢰고, 馬道臺가 차례로 기록한 『일기』와 『필담』 등도 초록하여 귀 부서에 올리는 것 외에, 먼저 삼가 馬道臺의 원 보고문을 초록하여 신속히 보내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삼가 평안하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張樹聲이 삼가 보냅니다.

삼가 재차 서신을 보냅니다 :
어제 귀 總理衙門의 直字627號서신 초록을 받고,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朝·佛條約 체결 논의 사안 역시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李 中堂大人께서 “프랑스인들은 선교를 중시하는데, 조선인들은 기독교를 심히 경계하고 있으니, 의견충돌이 생길까 심히 우려됩니다. 게다가 부레 공사가 직접 天津아문으로 와서 면담한 것도 아니고 따로 서신을 보내 부탁한 것도 아니니, 부득불 절차를 지키면서 신중하게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아주 당부하신 바 있습니다. 지금 이번에 시의적절한 심모원려의 지시를 내려주셨으니, 곧바로 귀 總理衙門의 서신을 초록하여 馬建忠 道臺에게 전달하도록 하였으며, 서신을 일단 煙臺로 보내서 그곳에서 편리한 배편을 찾아 발송함으로써, 馬道臺가 지시에 따라 적절히 처리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로 하여금 곧바로 西行하여 귀국하지 말고, 잠시 더 머무르도록 하였습니다. 재차 서신을 보냅니다. 삼가 복되시기 다시 기원합니다.

삼가 추가로 첨부합니다 :
다시 별도의 지시를 내려주시기를 여쭈오며, 아울러 粵字299號서신을 초록하여 보내오니, 모든 것을 삼가 따르겠습니다. 總理衙門에서 澤生, 中亟 [주002]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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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생(澤生), 중극(中亟)은 누구의 별칭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에게 보내는 공문은 역시 이미 그날 곧바로 招商局선편으로 신속히 부쳤습니다. 평안하시기를 재차 기원합니다.
 
별지 : 馬建忠이 李鴻章에게 올리는 서신(馬建忠稟少荃中堂函)
 
첨부문서 :

1. 「馬建忠이 李鴻章에게 올리는 서신」초록
삼가 아룁니다. 제가 이번 달 4일 삼가 서신을 작성하여, 『일기』와 『필담』 및 照會원고 각 건과 함께 鎮海船에 넘겨주어 天津으로 보냈으니, 이미 열람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바로 뒤인 6일에 미국·조선 양국 사절이 해안 근처의 濟物浦에 장막을 치고 만나 조약문에 서명하였습니다. 이때 조선 국왕의 照會와 國書條約을 모두 미국사절에게 건네주었고, 미국사절은 곧바로 8일에 출항하여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저도 이날 丁汝昌제독과 함께 漢城으로 출발하였고, 10일에 조선 국왕을 알현하여 便殿에서 賓主之禮를 행하였습니다. 11일 申時에 배로 돌아왔는데, 영국사절 윌리스 제독이 이미 군함을 타고 이날 午時에 한강 입구에 도착하여 저희 배 옆에 정박하였습니다. 제가 배에 오른 뒤 윌리스는 參贊마우드(Charies Thomas Maude) [주003]
번역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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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드(Charies Thomas Maude, 懋德)는 영국 외교관으로 1880~1884년 주중국 공사관의 이등참찬(二等參贊)으로 일하였고, 1882년에는 조선에 파견되어 해군제독 윌리스와 함께 조·영조약의 체결을 도왔다.

를 보내와서는 제 출발 일정을 물었습니다. 다음날 출항한다고 알려주자, 그는 간절히 만류하며, 조선과의 사이에서 중재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아울러 大人의 서신을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엄숙히 읽어보고 하나같이 기억한 다음 곧바로 저녁에 글 속의 뜻을 서신으로 작성하여 조선의 申櫶 [주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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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申櫶, 1810~1884)은 조선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금당(琴堂)·동양(東陽)·우석(于石) 등이다. 전형적인 무관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김정희(金正喜) 문하에서 다양한 학문을 수학하여 무관이면서도 독특한 학문적 소양을 쌓아 유장(儒將)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또 개화파 강위(薑瑋)·박규수(朴珪壽) 등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1828년부터 무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을 시작하여 순조·헌종·철종·고종조에 걸쳐 중요 무반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고종 초기에도 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형조·병조·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총융사(摠戎使)로 강화의 염창(鹽倉)을 수비하였고, 1874년 진무사(鎭撫使)에 임명되자 강화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광성(廣城)·덕진(德津)·초지(草芝) 3진(鎭)에 포대를 구축하였다. 운양호(雲揚號) 사건 이듬해인 1876년에는 판중추부사로 전관대관(全權大官)에 임명되어 강화도에서 일본의 전권변리대신(全權辨理大臣) 구로다 키요타카(黑田淸隆)와 협상을 벌여 강화도조약을 체결,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때의 협상 전말을 『심행일기(沈行日記)』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1882년에는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로 역시 전권대관이 되어 미국의 슈펠트(Shufeldt, R.W.)와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金宏集두 사절에게 신속히 보내 그들로 하여금 조선 국왕에게 전달하여 적절하고 신속하게 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윌리스와 다시 조약문 초안 제1조에 대해서 논의했는데, 윌리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웨이드 공사가 天津에서 李 中堂大人과 함께 조약 일체는 모두 미국 사례에 비추어 처리하기로 분명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屬邦이며 평소부터 중국을 상국으로 섬겨왔으므로, 미국이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영국 또한 마땅히 그대로 따를 것이지만, 만약 반드시 조약문 안에 기입해야 한다면, 아직 본국의 회신 전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조약은 오직 양국 사신이 마련한 것이고, 照會는 조선 국왕이 영국 군주에게 보내 스스로 밝히는 것이므로, 이 방법이 뜻을 더욱 분명하고 올바르게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 조약에서 미국은 그 내용을 조약문 안에 기입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므로, 영국에게만 이를 수용하게 한다면, 평행관계를 유지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미국에서 웃음거리가 될 터이니, [주005]
번역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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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묵주(墨洲)는 멕시코 등이 있는 신대륙, 즉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뜻은 실로 따르기 어렵습니다. 미국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약 체결 전에 조선 국왕에게 지시하여, 먼저 照會를 보내 밝히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조선 국왕 또한 조약 체결이 신속히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여, 13일에 兵曹判書 趙寗夏 [주006]
번역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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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하(趙寧夏, 1845~1884)는 자가 기삼(箕三), 호가 혜인(惠人)으로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의 조카이다. 1863년(철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통리기무아문당상, 독판군국사무, 공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873년 민승호(閔升鎬) 등 민씨 척족과 결탁하여 대원군세력 축출에 앞장섰으며, 1882년 전권대관(全權大官)으로 일본의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조·미수호조약 체결 예비교섭 차 인천에 도착한 마건충(馬建忠)과도 접견하였다. 이후 대청외교의 사무를 전담하면서 관세·외교 담당고문으로 독일인 묄렌도르프(Mollendorf, P. G. von)를 초빙, 입국하게 하였고, 청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하였는데, 갑신정변 때 피살당하였다.

를 大官으로, 經理機務事金宏集을 副官으로 삼아 보내와, 영국사절들과 함께 논의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오늘 午時에 저를 만나러 배로 왔고, 결국 함께 영국 선박으로 가서 윌리스와 만났습니다. 윌리스는 임무를 처음 맡아 여러 업무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특히 의심도 많아서, 朝·美條約은 대강만을 간략히 열거한 것이라 누락되는 것이 있으니, 몇 개 조항을 추가하여 보다 세밀하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번은 처음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므로 대강의 내용만을 간략히 열거할 수 있을 뿐이고, 5년이 지나 양국 교류가 두터워지고 이해가 깊어졌을 때 비로소 조약문의 수정을 논의할 수 있으며, 종래 각국이 조약을 체결할 때 모두 이렇게 하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거듭하여 그에게 반복하여 설명하였는데, 그 參贊마우드가 사리판단이 정확하여 옆에서 대신 설명해주자, 이에 윌리스도 다른 말을 하지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朝·美條約에 비추어 결정하기로 하였으며, 다만 영국 통역관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날짜를 정하여 서명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 대인께서 곧 출발하실 터라 그 뒤에 보고를 올리면 분명히 시일이 많이 걸릴 것이며, 거듭 주의를 기울이시는 수고를 끼쳐드리게 될 수도 있으므로, 우선 영국과 조선이 조약체결에 관하여 논의한 상황을 먼저 보고 드리고, 『필담절략』 한 책을 첨부하여, 지금 쾌속선 揚威號를 통해 煙臺로 보내서 도중에 찾아서 전달해드리게 하고, 아울러 그 김에 연료와 식량을 보충하게 하였습니다. 『일기』는 아직 촉박하여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으며, 나중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정중히 아룁니다. 삼가 엎드려 복을 기원합니다. 열람해주실 것을 엎드려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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