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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조약 체결에 대해 보고하는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미국 해군준장 슈펠트와 朝·美條約체결에 대해 논의한 것을 서신으로 알립니다(函述與美總兵薛斐爾商辦美韓訂約事).

 
  • 발신자李鴻章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2년 2월 10일 (음) , 1882년 3월 28일
  • 문서번호2-1-1-32 (389, 548b-555b)
2월 10일, 北洋大臣李鴻章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다.

美國과 조선의 조약 논의는 지난 12월 4일 상주한 다음 奏摺을 초록하여 咨文으로 알린 바 있습니다. 연말에 들으니, 미국은 다시 해군준장 슈펠트를 조선 議約全權大臣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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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슈펠트가 국무성으로부터 받은 정식 직함은 ‘Envoy Extraordinary and Minister Plenipotentiary to Negotiate a Treaty with Korea’이다. 김원모, 1992, 『조미조약 체결사』, 193쪽.

으로 차출한 다음 그로 하여금 올봄에 군함을 타고 동쪽으로 서둘러 가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당시 마침 조선 陪臣金允植이 두 차례 保定府로 와서 저를 만나서 말하길, “조선 국왕의 비밀지시를 받았는데 李 中堂大人께서 대신 주지하여 신속히 미국 사신과 논의해주십시오. 아울러 조선 機務大臣이 마련한 조약 초안을 올리니, 검토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天津海關道 周馥에게 방법을 강구하여 슈펠트 준장을 머무르게 하고, 제가 천진에 도착한 다음 협상할 수 있게 하라고 비밀리에 지시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윤식에게 국왕에게 비밀 보고를 올려 고위 관원을 선발해서 2월쯤 천진으로 파견한 다음 슈펠트 준장과 직접 만나 대략 논의를 하고, 그다음 [슈펠트가] 조선에 가면 아마도 쉽사리 성사될 것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어제 제가 천진에 도착해서 슈펠트 준장과 약속을 잡고 직접 만났는데, 우선 슈펠트가 작성한 조약 초안을 周馥이 번역해서 올리게 하였습니다. 슈펠트의 의도는 일본의 조약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두 초안을 비교해 보니 차이가 매우 심하였습니다. 또 중국의 屬邦이라는 구절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저희 쪽에서 이 문제에 간여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각국이 이를 본받고 시간이 지나면 조선이 우리의 屬土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후환은 더욱 커집니다. [만일 屬邦이라는 구절을 넣는다면] 萬國公法에서는 무릇 自主할 수 없는 附庸小國은 다른 큰 나라들과 조약을 맺기도 불편하므로, 양쪽 다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우선 周馥에게 부탁하여 이러한 뜻을 슈펠트에게 “조약 내용에 반드시 중국의 屬邦이지만 정치는 예전대로 自主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야 한다”고 은근히 암시하게 하였는데, 그 뜻은 [중국과 조선의 관계가] 아주 붙어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떨어진 것도 아닌 그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주002]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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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부점부탈(不粘不脫)은 부즉불리(不卽不離)나 무박무탈(無縛無脫)과 같은 뜻으로 붙어있는 것도 떨어진 것도 아닌 상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관계·상태를 비유한다.

저는 또한 김윤식 일행과도 이것을 상의하였는데 그는 거기에 호응하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적절하게 조약 초안을 수정하고 아울러 각 조항 중에서 방지해야 할 폐단과 획득해야 할 권리를 하나하나 포함시킨 다음, 즉시 周馥 및 馬建忠등으로 하여금 슈펠트에게 비밀리에 건네주어 검토하게 하였습니다. 슈펠트는 평소 교섭 사안에 밝으니, 이점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보아 이러한 범위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가 2월 7일의 『問答節略』 및 조선을 대신해서 작성한 조약 초안을 초록하여 올리오니 검토해주십시오. 추후 어떻게 논의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수시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비밀리에 알립니다. 평안하시길 송축합니다.
 
별지 : 北洋大臣李鴻章과 미국 해군준장 슈펠트의 『問答節略』(北洋大臣李鴻章與美總兵薛斐爾問答節約)
 
첨부문서:초록

1. 『미국 해군준장 슈펠트와 문답절략』:光緖8년 2월 7일 10시. 미국 해군준장 슈펠트가 찾아와 문답한 내용(8년 2월 7일)
[李鴻章-이하 동일] 질문:“北京에 온 지 얼마나 되었고,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슈펠트:“北京에 있은 지 한 달이 되었으며 미국 [서리]공사 홀콤브(Chester Holcombe, 何天爵) [주003]
번역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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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콤브(Chester Holcombe, 何天爵, 844~1912)는 미국 선교사·외교관으로 1869년 이후 중국에서 활동하였다. 1871년부터 1등 참찬으로 일하면서 1875~1876, 1876~1879, 1881~1882년 서리공사직을 맡았다. 1882년 조미조약의 체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의 관청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질문:“귀 준장이 조선에 사신으로 가는데, 홀콤브 공사가 대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듣지 않습니까?”
슈펠트:“이 일은 본국에서 전적으로 본 준장을 파견해서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본국에서 본 준장에게 내린 훈령은 예전에 國務省에서 홀콤브에게 초록하여 알려주었습니다. 다만 조선과 議約하는 사안은 오로지 본 준장 혼자서 주지합니다. 홀콤브는 단지 참관할 뿐입니다. 홀콤브가 급히 천진에 온다는 것은 달리 어떠한 일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본 준장은 홀콤브에게 통역을 맡기고자 합니다.”
질문:“본 대신이 保定府에 있었을 때 조선 관원이 찾아왔었는데, 본 대신은 그에게 귀국한 다음 조선 君臣에게 미리 조약 초안을 기초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초안은 벌써 며칠 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귀 대신이 초안한 조약 초안은 이미 周馥을 통해 받아보았습니다. 본 대신이 두 초안을 비교해 보니 차이가 매우 심합니다. 현재 조선에서 보내 온 조약 초안을 수정하여 논의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하고자 합니다. 며칠 후에 周馥이 귀하가 검토할 수 있도록 초안을 전달할 것입니다.”
슈펠트:“이러한 방법은 매우 좋습니다. 周馥은 조선의 조약 논의 사안에 관해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李 中堂大人의 초안이 내려오면 본 준장이 周馥과 함께 적절하게 상의한 다음, 다시금 초안을 귀 中堂에게 보내 수정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답변:“아주 좋습니다. 조선은 예전부터 중국의 屬邦이었습니다. 조선의 내정과 외교문제는 종래 自主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전에 일본과 조약을 맺을 때에도 간여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니, 하물며 서양은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때 본 대신이 서신으로 권유하고서야 비로소 일본과 조약을 맺으려 하였습니다. 다만 조선은 비록 중국의 뜻을 받들었지만 중국에 와서 가르침을 청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본국에서 창졸 간에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중국에 알려왔습니다. 조선은 오늘날 종전에 일본과의 조약에서 손해 본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고, 현재는 일본과의 조약을 결코 기준으로 삼고자 하지 않습니다. 본 대신이 保定府에 있을 때 이미 조선에 서신을 보내 2월쯤 고위 관원을 비밀리에 천진에 파견하여 귀 준장과 우선 직접 만나서 상의하고, 실마리가 생기길 기다렸다가 다시 조선에 가서 논의하면 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지금 아직 회신을 받지 못했지만 대략 4~5주 내에 회신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때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슈펠트:“이 일은 李 中堂大人의 배려를 받으니, 본 준장이 개인적으로 감격할 뿐 아니라 미국정부도 더욱 감사해할 것입니다. 전에 본국의 공문을 받았는데, 본 준장으로 하여금 대신 감사의 뜻을 알리라는 내용으로, 이미 周馥에게 대신 전달을 부탁하였습니다. 이번 조약 논의문제는 본디 재촉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조선은 종래 굼뜬 경우가 많아 본국에서 파견한 군함은 서력 5월 1일에 煙臺에 도착할 것이고, 그때 조선 사신이 오지 않는다면 본 준장은 반드시 조선에 직접 가야 할 것입니다. 李 中堂大人께 고위 관원 한 사람을 선발하여 동행시켜달라고 간청해도 됩니까? 혹은 문서를 제공해주어 지참하여 가는 방법도 괜찮습니다.”
답변:“아마도 관원을 선발하여 같이 가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다만 조선에서 회신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결정해야 합니다. 듣기에 조선 국왕과 대신 두세 명은 여전히 미국과의 조약을 원하지만 그 밖의 신하들은 원치 않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가령 공공연히 관원을 天津에 파견하여 조약을 논의한다면 아마도 스스로 먼저 요구한다는 혐의 때문에 國人들의 비난을 초래할 것입니다. 때문에 조선의 관원 파견은 아마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귀 준장이 성급하게 홀로 방문한다면 역시 서로 간의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현재 北京주재 각국 공사들은 귀 준장이 조선에 사신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슈펠트:“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질문:“누가 알렸습니까? 어찌 홀콤브 공사가 알려주었습니까?”
슈펠트:“홀콤브가 누설한 것이 아닙니다. 본국의 공문이 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기에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이 없다고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질문:“각국 공사들은 귀 준장이 이곳에서 본 대신과 상의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슈펠트:“알지 못합니다.”
질문:“각국은 미국의 조약 체결을 기다렸다가 관원을 파견해 조선으로 보내 議約할 것이라는 말을 합니까?”
슈펠트:“지금은 아직 들은 내용이 없는데, 작년에 각국 공사들이 언급했었으니 미국이 조약체결을 성공하면 모두 잇따라 뒤를 따를 것입니다.”
질문:“이번에 조약을 논의할 때는 반드시 매우 공정해야만 이후 조선에 가는 나라들이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평소 情理를 중시하였고 귀 준장 또한 大局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風氣가 고루하고 중국의 흥망과도 관계가 되므로 고심해서 계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슈펠트:“저 또한 이렇게 하기를 몹시 바라고 있습니다. 조선에는 부산·인천 두 항구가 있는데, 인천은 王京에 가깝고 부산은 왕경에서 10일 정도 걸립니다. 이번에 조선으로 갈 때는 인천이 아니라 부산에 정박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 때문에 朝鮮海圖를 가져 오게 해서 슈펠트에게 비밀리에 말해주기를, 일본과 이미 올 8월에 인천항을 열기로 하였는데, 조선은 미국이 먼저 인천으로 오길 바라며, 일본이 먼저 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슈펠트:“그렇다면 응당 본국에 알려 군함 두세 척을 파견해 인천으로 가야겠습니다.
답변:“귀국에서는 군함을 많이 파견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때가 되면 본 대신은 혹시 중국 군함을 같이 파견할 수도 있습니다.”
슈펠트:“아주 좋습니다.”
질문:“인천항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비교해 보면 몇 척이나 됩니까?”
슈펠트:“30척입니다.”
질문:“귀 군함의 흘수는 몇 척입니까?”
슈펠트:“17척 반입니다.”
질문:“항구 안에서는 어디에 배를 정박할 것입니까?”
슈펠트가 지도 위에 쇠닻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이 곳에 정박이 가능합니다.”
질문:“이곳은 왕경과 몇 리나 떨어져 있습니까?”
슈펠트:“겨우 60리입니다. 小輪船을 타고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 李 中堂大人을 접견하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야기를 나눈 각 내용을 본국에 전달하겠습니다.”
답변:“비밀로 해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슈펠트:“삼가 그에 따르겠습니다.”
 
별지 : 李鴻章이 조선·美國의 修好通商條約을 대신 기초하였습니다(李鴻章代擬美·韓修好通商條約)
 
2. 「李鴻章이 대신 기초한 조선과 미국의 수호통상조약(李鴻章代擬美·韓修好通商條約)」 [주004]
번역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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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書의 목차에서는 조선과 美國의 함께 표기할 때 韓·美 또는 美·韓으로 하고 있지만, 번역에서는 모두 조선·미국[또는 조·미]로 처리하였다.

(光緖8년 2월)
大朝鮮國과 大美國은 和好를 돈독히 하고 商民에게 혜택을 주고 보살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에 大朝鮮國군주는 全權大臣을 특파하고, 大美國의 대통령도 全權大臣을 특파하여 각기 받은 전권위임장을 서로 확인한 다음, 조약의 항목을 다듬어세워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제1조. 조선은 중국의 屬邦이지만, 내정과 외교문제는 종래 모두 自主할 수 있었다. 지금 이번 조약을 체결한 다음 大朝鮮國군주와 大美國대통령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한다. 양국 인민은 영원히 우호를 돈독히 한다. 만약 다른 나라가 불공정하게 대하거나 모욕한다면 반드시 서로 후원하여 보호하거나 혹은 중간에서 잘 조정하여 영구히 안전을 보전할 수 있게 한다.
 제2조. 이번에 通商條約을 맺은 뒤 양국은 통례에 따라 서로 [권한을 부여받은 고위 관원인] 秉權大員을 파견하여 왕래하며 주재한다. 아울러 통상항구에 總領事·副領事·署領事 등의 관원을 두는 데 모두 그 편의를 들어준다. 이들 관원은 현지 관원과 교섭하기 위해 왕래할 때에는 모두 같은 품급에 상당하는 예절로써 대우한다. 양국 秉權大員과 領事등의 관원은 갖가지 특혜를 누릴 수 있으며, 양국에서 서로 最惠國의 관원을 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게 한다. 領事官은 반드시 주재국의 비준 문서를 받아야만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파견되는 領事등의 관원은 반드시 정규 관원이어야 하며, 상인을 겸임시킬 수 없고, 또 무역 행위를 겸해서도 안된다. 만약 각 항구에 아직 領事官을 두지 못하면, 다른 나라 領事의 겸임을 요청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또한 商民으로 겸임하게 해서는 안되며, 혹은 현지 지방관이 현재 체결된 조약에 비추어 대신 처리할 수 있다. 商民의 교섭사건에 대해서는 현지 官民과 마찰이 생긴 경우, 領事官이 임의로 다퉈서는 안된다. 만약 領事官의 일 처리가 부당한 경우, 피차 公例에 따라 비준 문서를 회수할 수 있다.
 제3조. 양국 선박이 피차의 연해지역에서 태풍을 만나거나 좌초되는 일이 생길 경우 지방관이 이를 알게 되면 즉시 방법을 강구해 구조한다. 양국 군함이 왕래할 때는 서로의 개항된 항구를 이용한다. 만일 식량·석탄·물을 구입하거나 선박을 수리할 경우 지방관은 응당 적절하게 지원해준다. 다만 商船은 폭풍을 만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방하지 않은 항구로 배를 몰아서는 안되며, 위반한 경우 처벌한다.
 제4조. 朝鮮國商民이 미국의 각 항구에 가서 각종 무역을 하고자 할 때는 미국의 律例와 章程을 준수해야 한다. 미국 또한 최혜국의 商民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우한다. 미국 商民도 朝鮮國에 가서 통상항구에서 무역을 하는 것을 허용하며, 구미 각국의 통례에 따르면 원래 응당 현지 지방관이 관할해야 하지만, 조선과 미국은 政制가 매우 다르고 현재 아직까지 東西交涉의 公律을 訂改하지 않았다. 따라서 朝鮮國정부는 잠시 동안 미국 商民이 領事館의 관할에 속하는 것을 허용한다. 미국 船主등이 항구에 상륙하여 문제를 일으키면 응당 지방관이 領事官과 함께 적절하게 통제한다.
 제5조. 朝鮮國商民과 商船이 미국에 가 무역할 때는 무릇 關稅나 船舶稅등은 응당 美國稅關章程에 따라 처리한다. 미국 商民과 商船이 조선에 가서 무역하는 경우, 수출하는 화물은 모두 關稅를 납부한다. 다만 각종 화물의 물동량을 예측할 수 없으므로 당장 稅則을 구체적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이에 우선 大綱을 만들어, 각종 수입품 가운데 민생과 관련된 일용품은 가격의 10%를 받고, 예를 들어 洋酒·담배·시계 등의 종류와 같은 사치품이나 완구 종류는 가격의 30%를 받는다. 수출하는 토산품은 대략 5%를 받는다. 미국 商船이 조선의 항구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船舶稅를 납부하는데, 매 톤당 은 5錢이며 음력을 기준으로 계절마다 한 차례씩 징수한다.
 제6조. 朝鮮國商民이 미국 각지에 가서 무역을 할 때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면서 건물을 임대·구입하거나, 창고·점포를 세우는 것이 허용된다. 모든 토산품과 제조품, 법류를 어기지 않은 화물은 모두 매매를 허용한다. 미국 商民이 이미 개항한 조선의 항구로 갈 경우, 그곳에서 거주하면서 건물을 임대하거나 땅을 빌려 건물을 짓는 것을 허용한다. 다만 조금이라도 강제가 있어서는 안된다. 조차한 땅은 여전히 조선의 영토에 속하며 지방관의 통치권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본국의 토산품 및 외국에서 수입해 온 불법적이지 않은 수입품은 모두 개항지에서 매매할 수 있다. 단 미국 商民은 洋貨를 내지로 가져가 판매할 수 없으며, 또한 내지로 들어가 토산품을 사올 수도 없다. 아울러 토산품을 이쪽 항구에서 다른 항구로 가져가 팔아서도 안된다. 위반하는 경우 선박과 화물은 관으로 몰수하며 해당 상인은 領事官에게 넘겨 처벌한다. 鴉片은 평소 엄금하는 물건이므로, 만약 운반·판매하기 위해 항구로 수입하는 경우 조선 관원이 처벌한다.
 제7조. 무릇 미국 商民이 조선의 개항장에서 조선 민간인과 재산 및 각종 범죄와 관련하여 교섭해야 하는 사건을 만나면 모두 피고가 소속된 관원이 재판·처벌하며, 각기 본국의 律例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다만 절도·채무 등의 사건은 양국 관원이 단지 체포하여 추궁할 수 있을 뿐 대신 배상할 수는 없다. 혹 사건 원고가 달게 승복하지 않으면, 응당 그가 소속된 쪽의 관원이 피고가 속한 관원에게 照會를 보내 다시 조사하게 한다.
 제8조. 양국 관원과 商民이 피차의 통상지방에 거주할 때, 모두 각종의 인원을 고용·초청하여 직무상 기술 작업을 돕거나 처리하게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인으로서 본국의 금령을 범했거나 연루되어 기소되었는데 미국 관민의 공관과 거택·창고 및 상선에 숨은 경우, 지방관은 한편으로 領事官에 통지하고 다른 한편으로 差役을 파견하여 체포한다. 미국 관민은 이 사람을 비호하거나 억류해서는 안된다. 양국의 학생이 오가며 언어·문자·법률·기술 등을 배울 때에는 서로 도와줌으로써 우의를 두텁게 한다.
 제9조. 이번에 朝鮮國이 처음 조약을 체결하므로 여기 다듬어 세운 조항은 일단 간략하게 정하였는데, 응당 조약에 따라 이미 기재된 사항을 우선 처리하고, 기재되지 않은 것은 5년을 기다려 다음 양국 관민이 서로 언어가 조금 통하게 될 때 다시 논의하여 정한다. 通商에 관한 詳細章程은 반드시 구미 각국의 통례를 참조하여 공평하게 논의·결정하되, 輕重이나 大小의 차별이 없게 한다.
 제10조. 이번에 양국이 체결한 조약과 이후에 왕래할 공문은 조선은 漢文[華文]을 전용하고 미국 역시 漢文을 사용하거나 혹은 英文을 사용하되, 반드시 한문으로 주석을 달아 차이나 잘못을 피해야 한다.

이상 각 조항은 현재 양국에서 파견한 전권대신이 논의하여 정하였다. 우선 서명을 하고 날인함으로써 신뢰를 밝힌다. 大朝鮮國군주는 중국 禮部에 자문을 보내 비준 받고, 大미국 대통령은 국회의 원로대신이 논의하여 비준한다. 그다음 서로 조회를 보내 알리고 한 곳을 지정하여 [거기에서 조약 문서를] 교환한 다음, 간행하여 널리 알림으로써 양국 관민이 모두 알고 준수하도록 한다.

大朝鮮國개국 모년 월 일
大米國모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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