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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의 러시아 군함 동정과 조선 관원들의 동경(東京) 시찰에 대한 하여장(何如璋)의 문서

1. 長崎에 정박하였던 러시아 군함은 잇달아 서쪽으로 돌아갔습니다(泊長崎俄兵船已陸續西還). 2. 東京에 온 조선의 委員朴定陽등이 찾아와서 이번 행차는 오로지 政治, 세관[海關] 설립, 課稅등의 사안만 살피고자 하는 것이며, 7~8월쯤에 金宏集이 일본으로 와서 다시 상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朝鮮來東委員朴定陽等來見, 此行專爲考察政治、設關、課稅事, 七八月間金宏集將來日本就商).

 
  • 발신자何如璋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1년 5월 28일 (음) , 1881년 6월 24일
  • 문서번호2-1-1-24 (363, 507a-507b)
5월 28일, 出使大臣何如璋등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다.

지난 달 27일 제129호 서신을 보냈으니, 이미 받아보셨을 줄 압니다. 이번 달 1일에 4월 9일 발송한 제54호 지시를 받고 공경히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外務卿井上馨은 여전히 省에 나와서 일 처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그 집으로 사람을 보내 문병하고 아울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병이 조금 나으면 즉시 그쪽 집으로 가서 만나고자 하며, 만날 날짜를 정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질병을 이유로 사양하였습니다. ‘두통’이라고 하는데 의사가 손님을 만나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므로 병이 낫기를 기다려 다시 날짜를 정하겠습니다.
러시아 해군제독 레소프스키는 어제 유럽 군함을 타고서 長崎를 거쳐 橫濱을 거쳐 바로 東京에 왔습니다. 日本館을 객사로 사용하고 있는데, 작년에 입은 부상이 나이 때문에 회복되지 않아 마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사람들의 부축이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잠시 동안 일처리를 한 다음 귀국을 하며, 그가 대동한 군함은 모두 잇달아 돌려보내 南洋등에 정박한다고 합니다. 혹은 “伊犁조약에 중국이 서명하기를 기다렸다가 서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琿春부근에는 아직 보병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믿을 만한 내용인지는 불확실합니다. 東京에 파견된 조선 委員趙準永·朴定陽등은 이미 도착했고 모두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번 행차가 국왕의 지시를 받들어 일본의 정치를 살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국내 상황을 물어보니 “국왕·재상은 모두 외교를 기꺼워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김홍집이 보낸 서신의 내용과 서로 같습니다. 또 말하길, “나라는 여전히 평화로우나, 다만 3월 무렵 安東老儒모씨를 비롯해 2~3백 명이 대궐 앞에 엎드려 서신을 올리며 외교에 대해 극력 간언한 일로 한때 자못 동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왔던 委員이동인은 원래 함께 오려고 했다가 출발할 즈음에 홀연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행적이 묘연합니다. 혹자는 화를 두려워해 도망갔다고 하고, 혹자는 남에게 피살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습니다.
『申報』·『香港報』에서 “조선에 내란이 일어나 일본에 원병을 요청했다”고 했는데 모두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본과의 교섭 및 인천항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15개월 이후 개항하기로 허락하였습니다. 조선에서는 稅關을 설치하여 과세하려고 하는데 수입품 세율은 10%이며 수출품은 5%입니다. 예전에 초안을 보내 일본의 花房공사와 논의하였지만 그는 권한이 없다며 거절하였습니다. 7월 즈음에 金宏集이 다시 와서 외무성과 상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삼가 서신을 보내니 총리아문에서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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