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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각국과 조약 체결에 대한 조선의 태도 변화와 러시아 군함의 나가사키 향발(向發)에 대한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1. 조선에 처음 태도 변화가 나타났지만, 서양 각국과 조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해달라는 諭旨를 청하는 上奏는 적절하지 않으며, 설령 諭旨에 따라 조약을 체결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인원을 파견해 주지하기 불편하므로 오로지 비밀리에 보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朝鮮初有轉機, 不宜奏明請旨飭與西洋訂約, 卽令遵旨訂約, 我亦未便派員主持. 惟有密爲護持). 2. 러시아 군함은 나가사키로 향하였으며 아직 조선을 공격하거나 접근한 일은 없습니다. 마땅히 領事를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하여 교민을 보호하고 消息을 정탐해야 합니다(俄兵船抵長崎, 尙無攻逼朝鮮之事. 中國宜派領事海蔘威, 護僑兼偵探消息).

 
  • 발신자北洋大臣李鴻章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0년 11월 22일 (음) , 1880년 12월 23일
  • 문서번호2-1-1-11 (344, 449a-450b)
11월 22일, 北洋大臣李鴻章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다.

얼마 전 11월 19일 보내주신 直字618號서신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何如璋의 서신을 초록하여 보내 주시면서 朝鮮과 미국의 조약 체결문제를 논의하셨습니다. 무릇 준비한 계획이 원대하고 헤아림이 지당하여 감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15일에 何如璋의 문건을 받았는데 總理衙門에서 받은 것과 동일합니다. 그의 『外交議』는 하나같이 현재의 정세를 헤아려 살피고 있는데 사려가 원대하고 깊으니 실로 卓識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관원을 조선에 보내 외교를 대신 주지할 것을 청하거나 혹은 諭旨로써 조선이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고 아울러 조약 내에 “중국정부의 명을 받아 某國과 조약 체결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도록 奏請한다고 하는데, 만약 조선 국왕 스스로 직접 상주하여 간청한다면 조정이 이를 적절하게 헤아려 혹은 기회를 엿보아 조정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조선 조정의 논의는 지금에 와서야 뚜렷한 전환의 뜻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會議節略』을 살펴보면, “우리가 먼저 우호를 맺고자 하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배를 정박시키고 문서를 전달해 오면 그 문서를 보고 좋은 말로 답장할 것이다. 바다 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 능력에 맞게 구제하고 대접할 것이다. 이것은 그 때를 맞이하여 어떻게 조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 그 속사정이며 그들은 여전히 임기응변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도록 유지를 내려달라는 상주를 한다면, 조선에서는 도리어 의심하고 우려하면서 반드시 우리말을 모두 듣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각국에서 이 소식을 차차 듣고 알게 된다면 반드시 모두들 오직 우리에게만 책임을 물을 터인데, 실로 總理衙門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은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조선이 전에 일본과 조약을 체결할 때, 중국은 곁에서 완곡히 권유한 데 지나지 않아, 결코 관원을 파견하여 주지하지 않았습니다. 조약문에서도 또한 “중국정부의 명을 받든다”라는 문구가 없습니다. 지금 조선이 서양 국가와 조약을 체결하면서 “반드시 중국정부의 명을 받들어야 한다”라고 한다면 조선은 기꺼이 따르겠지만 서양 국가가 반드시 기꺼이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서양 국가와 체결한 조약은 처음부터 협박으로 시작하여 이루어졌고, 각 조항이 대부분 萬國通例에 위배되어 현재 이를 차츰 만회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특별한 사건이 없는 때에 조약을 체결한다면 속히 방법을 마련하여 폐해를 구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중국 측 관원이 협의에 참가하면 서양인들은 반드시 중국과 체결한 조약을 끌어다가 기준으로 삼으려고 할 터이니 이 또한 조선에 불리합니다. 何如璋은 조선이 스스로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고 다른 나라들이 모두 그 自主를 인정하면 중국의 屬邦이라는 명분이 돌연 제거될 것이라 우려하는데, 본디 견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선이 능히 다른 나라와 접촉하고 外交를 하여 스스로 울타리를 공고히 할 수 있다면 곧 奉天·吉林·山東·直隸가 모두 울타리의 보호라는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선이 우리에게 공손히 대해온 예절을 보건데, 서양 국가와의 조약 체결 때문에 조선의 태도가 즉시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이 내정을 정비하고 외적을 몰아내며, 군대를 조련하고 해안을 방어하여 나날이 自強을 도모하면 조선이 비록 약소하다고 감히 무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구 대국 또한 [중국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自強의 對策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끝내 자립을 할 수 없을까 우려되는데, 이 또한 어찌 屬邦이 우리말을 따르는지의 여부와 상관이 있겠습니까? 재삼 헤아려보면 總理衙門의 지시처럼 단지 은밀하게 도우며 보호하는 것만 가능할 듯합니다.
올해 7월, 美國에서 조선에 보내 조약 체결을 논의하게 한 해군준장 슈펠트(R. W. Shufeldt, 薛斐爾) [주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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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펠트(Robert W. Shufeldt, 薛斐爾또는 蕭孚爾, 書斐路로도 표기된다, 1821~1895)는 미국의 해군제독(준장)으로 1867년 셔먼(The General Sherman)호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군함 워츄셋호를 이끌고 황해도 해안에 들어왔다가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돌아갔다. 1879년에는 군함 티콘데로카(Ticonderoga)호로 세계 순항의 장도에 올라 아프리카 해안을 돌아, 1880년 부산항에 다시 들어왔다. 이때 미국정부의 훈령에 의해 한미 수호관계를 수립코자 일본 측 중개를 요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후 청의 이홍장(李鴻章)에게 중개를 요청하여 쾌히 승낙을 얻었다. 1882년 3월에 미국 전권대사의 자격으로 군함을 이끌고 인천항에 들어와 이홍장의 부하 마건충(馬建忠)·정여창(丁汝昌), 조선 측 전권대신 신헌(申櫶) 및 부관 김홍집(金宏集) 등과 함께 인천에서 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조선이 유럽 국가와 맺은 최초 조약으로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약 직후 슈펠트는 본국에 돌아갔는데 장기 여행의 노고로 병을 얻어 군에서 은퇴했다.

가 天津에 와서 비밀 회담을 가졌는데, 그는 제가 중간에서 조선에 중재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8월 4일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9월에 웨이드(Thomas Francis Wade, 威妥瑪) [주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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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드(Thomas Francis Wade, 威妥瑪)는 영국의 외교관이자 한학가(漢學家)로 육군 출신이었다. 아편전쟁에도 참여하였고 1847년 퇴역한 다음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하였으며, 1871~1882년 공사로 근무하였다. 1888년 귀국 후 케임브리지대학의 첫 번째 한문(漢文) 교수가 되었으며, 중국어의 알파벳 표기법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공사가 天津을 지나다가 들러 면전에서 말하기를, “영국은 본디 조선과 통상하려는 뜻은 없었지만, 오직 러시아인들의 뜻이 조선의 항구를 침탈하는 데 있고 각국의 비밀 논의도 모두 기회를 엿보려는 의도가 생겨 영국에서 이를 좌시할 수 없기에 이미 外務省에 서신을 보내 처리를 협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곁에서 조선을 종용해달라고 부탁하기에 그 자리에서 모두 수락하였습니다. 다만 너무 서두르거나 군함을 파견하지 말고, 천천히 형세의 변화를 기다리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이에 總理衙門에서 이미 何如璋에게 전보를 보내 金宏集前修信使의 서신을 받은 후 즉시 서신의 뜻을 일본 주재 미국 公使에게 알리도록 하여, 반드시 그에 따라 처리하고 이후 오로지 기회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도와주려고 하였습니다. 만일 내년 봄 조선의 자문전달관 卞元圭가 과연 학생들을 이끌고 天津으로 온다면 제가 재차 적절히 깨우치고 지도하겠습니다. 만일 조선이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면서 질의하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 방문하려는 경우가 있다면 또한 반드시 수시로 최선을 다해 지시하고 충고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조선의 충성과 정성에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어 何如璋의 전보를 받았는데, 러시아 해군제독 레소프스키가 10월 29일 이미 長崎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長崎理事餘瓗 [주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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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휴(餘瓗, 1834~1914)의 자는 화개(和介), 호가 원미(元眉) 또는 건요(乾耀)로 광동성 대산(臺山) 출신이다. 청조가 파견한 초대 주일본 長崎領事(당시에는 理事로 칭하였다)로 이곳에서 6년 동안 근무하였다.

의 보고에 따르면, 해당 제독이 풍랑을 만나 한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나가사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모든 군함들은 계속해서 블라디보스토크(海葠崴)에서 長崎로 이동하여 월동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아직 조선을 공격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조선이 만일 러시아 군함의 남하를 목격한다면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사정이 혹 또한 조금 지체되어, 아마 내년 여름이나 가을쯤이 될 것 같습니다. 또 餘瓗가 보고하기를, 6월 러시아 后軍提督터치르백작[特啓爾伯] [주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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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법이 지금의 것과 달라 현재의 인명사전(이를테면 辛華編, 1982, 『俄語姓名譯名手冊』, 商務印書館)으로는 정확한 사항을 파악하기 곤란한 것 같다.

과 만났으며,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중국인 2천여 명이 있으므로 중국이 해당 항구에 領事를 설치하여 중국인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듣기로는 일본은 영사를 그곳에 파견한 지 이미 오래고 깊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도 마땅히 상의하여 領事를 파견해야 할 듯하며, 중국인 보호를 명목으로 하면서 아울러 러시아 소식을 정탐할 수 있을 것입니다. 根本重地[인 滿洲]에 대해서는 耳目이 마땅히 두루 미쳐야 하므로 각국에 설치된 領事와 비교하였을 때 특히 그 관계가 긴요하므로 적절하게 처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혹 북경주재 러시아 공사와 일단 협의하여 곧바로 北洋通商大臣衙門에서 사람을 골라 파견해도 될 것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오랫동안 曾紀澤 [주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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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택(曾紀澤, 1839~1890)은 자가 길강(劼剛)으로 유명한 증국번(曾國藩)의 둘째 아들이다. 동치(同治) 연간 영국·프랑스 공사로 주재하였으며 러시아 등에 외교사절로 파견되어 숭후(崇厚)가 맺은 리바디아조약을 파기하고 새로 이리(伊利)조약을 맺음으로써 상당한 외교적 성공을 확보한 것으로 유명하다.

과 전보를 주고받지 않았지만, 13일 전보의 초록을 받아보니 代守費에 4백만 루블을 부가하였는데 군사비 항목을 들지 않았으니 통합해 볼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뒤이어 전보가 온다면 신속하게 지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삼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비밀리에 답장을 보냅니다. 좋은 일이 있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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