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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자문전달관(咨文傳達官)과 한 필담(筆談)에 대한 상주(上奏)와 총리아문(總理衙門)에게 보내는 비밀 자문

조선 자문전달관 卞元圭와의 『筆談節略』을 上奏의 附片으로 올리면서 아울러 總理衙門에 비밀자문으로 알립니다(密咨片奏與朝鮮賫咨官卞元圭筆談節略).

 
  • 발신자北洋大臣李鴻章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0년 9월 28일 (음) , 1880년 10월 31일
  • 문서번호2-1-1-09 (341, 430b-436b)
9월 28일, 北洋大臣李鴻章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냈습니다.

삼가 본 대신은 光緖6년 9월 27일 天津의 行館에서 조선 자문전달관 卞元圭와 필담한 내용의 요약본 『筆談問答節略』을 삼가 附片으로 올렸는데, 마땅히 그 초록을 驛路를 통해 [귀 總理衙門에] 秘密咨文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마땅히 귀 아문에 咨文을 보내니, 삼가 살펴보고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별지 : 北洋大臣李鴻章의 奏摺과 附片(北洋大臣李鴻章奏片)
 
첨부문서:

1. 「부편」초록
조선과 서양인이 통상을 하는 일은 지금 국정에서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臣은 전에 李裕元에게 답장을 할 때를 기다려 여전히 잘 권고하여 轉機가 있기를 바라야 할 것이라고 상주한 바 있습니다. 다만 李裕元이 은퇴하고 집에 머무르면서 비록 여전히 조정의 일을 알기는 하지만, 일체의 계획이나 시책은 결국 조선의 군주와 재상들이 주지합니다. 이번에 상주문 전달관[齎奏官] 卞元圭가 天津으로 와서 臣과 만나 오랫동안 필담을 나누었는데, 하나로부터 열을 알게 되듯이 서서히 나라를 지키는 대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臣이 작년 7월 李裕元에게 보낸 서신을 그들 또한 忠告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기회를 엿보아 좋게 권고하고 간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듣기에 조선은 일본과 수년 동안 통상을 하면서 아직 세금을 거두지 않았으니, 세액의 경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臣이 서양 각국의 통례를 알려주어 일본으로부터 기만당하지 않도록 했으며, 또한 重稅가 國計에 도움이 됨을 알게 하였습니다. 조선은 프랑스 및 미국과 원한이 있어서 그 침범을 걱정합니다. 신은 프랑스와 미국의 뜻이 통상에 있으며 병사를 동원하여 강제할 뜻이 전혀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기회를 노리는 것은 심히 위급하며, 조선의 동북 海口가 러시아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방어가 너무 소홀합니다. 신은 德源의 永興口에서 이미 일본과의 통상을 허가했으니, 만약 러시아가 군함으로 침입하거나 혹은 먼저 예를 지키고 나중에 무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나온다면, 마땅히 사람을 파견하여 기회를 보아 대응하고 적절하게 통상 및 조약 논의를 허가함으로써 전쟁으로 지나친 피해를 입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조선은 德源항구에 축대를 쌓고 포를 설치하기를 원하는데, 일본이 구실로 삼을까 두려워합니다. 臣이 동서양 각국의 통상 항구에 포대를 쌓아서 스스로 방어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곧 自主의 권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무릇 이와 같이 그 의혹을 풀어주고 자강을 하도록 하며 그 뜻을 열고 스스로 깨닫도록 하니, 이 사신이 들어보지 못한 일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쁘게 감탄하는 것 같았으며, 모든 것을 귀국한 이후 나라에 보고하고 적절하게 참작하여 마땅히 종전과 같은 고립에 이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조선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 형세는 실로 東北洋의 요충이며, 盛京·吉林·直隸·山東등 여러 성의 울타리가 됩니다. 그 백성은 능히 노고를 참아낼 수 있고 물산 또한 많이 부족하지 않으며 五金과 석탄·철 등의 광산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조선을 점거하게 되면 吉林·黑龍江과 러시아 영토의 형세가 마치 닭의 양 날개를 움켜쥔 것처럼 꼼짝 못하는 꼴이 될 것이고, 우리 동삼성과 京畿의 重地는 모두 아주 위태로워져서 스스로 안전을 누릴 수 없으니 관계된 바가 대단히 무겁습니다. 일본이 근래 항구를 열고 양으로는 각국을 잘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이나 음으로는 조선에 굳게 저항하라고 꼬드기고 있어 그 의도 역시 몹시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일본의 음모를 막고자 한다면, 다만 서양 각국과 일률적으로 통상하여 서로 견제할 수 있게 하는 방법뿐입니다. 오랫동안 조선은 고립되어 있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견문이 넓어지기 시작하고 권고와 제창을 통해 기풍이 점점 열리고 있습니다. 조선이 무기를 만들고 병사를 훈련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특별히 강구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商務에 대해서도 결국 확충하려는 바람을 가질 것입니다. 삼가 臣과 卞元圭와의 『筆談問答節略』을 초록해서 올리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總理衙門에 秘密咨文을 보내 알리는 것 외에 奏片을 첨부하여 密陳하면서 엎드려서 살펴봐 주시기를 빕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별지 : 北洋大臣李鴻章과 조선 자문전달관 卞元圭의 『筆談問答』(北洋大臣李鴻章與朝鮮賫咨官卞元圭『筆談問答』)
 
2. 삼가 9월 22일에 조선 자문전달관 卞元圭를 접견하고 필담한 문답의 내용을 초록하여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이홍장이]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조선의 재상은 지금 누구입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영의정 李最應은 66세인데, 지금 왕의 숙부이며 종친으로서 君에 봉해졌는데, 처음에는 興寅君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議政은 중국의 軍機大臣과 같은 것이고, 그들은 中外의 정무와 군사를 모두 잘 알고 있습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議政은 곧 옛날의 丞相, 中書令, 平章事입니다. 中外의 여러 업무에 대해 모두 참여하고 사정을 압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일본과 통상을 하는 두 항구에는 稅關을 설치했습니까? 일 년에 세금은 얼마입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東萊에 이미 稅關이 있고 德源에는 稅關을 설치하려 하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세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東萊의 세관과 항구는 이미 수년이 지났는데 왜 세액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듣기에 일본의 윤선이 늘 온다는데, 어찌 징세할 화물이 없겠습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두 항구에서 공사가 모두 끝나면 장차 함께 세금을 정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중국이 처음에 稅關[洋關]을 설치할 때 서양의 통례를 알지 못해서 화물의 가격에 따라서 5%를 거뒀는데, 귀국에서는 액수를 정할 때 몇 %를 거두려고 합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이는 양국에서 논의해서 정할 것이고 의정부에서 필히 계획이 있을 것인데, 제 직위가 낮아서 미리 알지 못합니다. 감히 얼마를 거두어야 적절한지를 묻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서양 각국은 대체로 수입세는 무겁게, 수출세는 가볍게 합니다. 土貨를 수출하는 데 세금을 가볍게 하는 것은 우리 백성의 이익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없는 물건은 또한 상품의 가격과 판매 상황을 분별하여 적절하게 등급을 정합니다. 20~30%를 징수하는 것도 있고, 10% 남짓을 징수하는 것도 있어서, 세입이 비교적 많습니다. 중국이 처음에는 이러한 예를 알지 못해서 서양인들에게 기만을 당해 수·출입 모두 5%로 정하였습니다. 조약이 이미 정해져서 지금까지 바꾸기 어렵습니다. 비록 내지에 운송할 때에는 半稅2.5%를 더하지만 그래도 손해가 실로 많습니다. 귀국은 처음 통상을 시작할 때 세액을 반드시 높여야 自主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각국이 전례를 따라 들어오니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수·출입세의 경중을 참작하는 것은 실로 원대한 계획을 가르쳐 주신 것이니 삼가 마땅히 돌아가서 그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우리 백성의 이익과 우리 상품을 생각하시는 德意에 조금이라도 부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내가 작년 7월에 李裕元太師에게 서양과 통상을 하라고 비밀서신을 보냈습니다. 대개 각국이 일본이 개항을 한 것을 보고 반드시 뒤를 따라 가서 요구하는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귀국 왕의 뜻이 반드시 일찍 정해져야만, 만약 부득이하게 각국과 통상을 하더라도 稅則을 무겁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이롭게 할 수 있고, 조약을 적절하게 맺음으로써 해로움 역시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귀국의 뭇 여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각국이 노리는 상황은 결코 끝날 때가 없고, 군사력 또한 아마도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니 그 피해는 대단히 클 것입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이는 나라의 대사인데, 제가 비록 지위가 낮지만 역시 들은 바가 있습니다. 지난 가을에 비밀서신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지극한 충고임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그들과 원한이 있어서 갑자기 화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삼가 존귀한 가르침을 하나하나 돌아가서 보고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그들과 원한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와 있었던 일을 가리키는 것일 텐데, 듣기에 프랑스와 미국은 느닷없이 군대를 동원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다만 통상을 구할 뿐입니다. 러시아의 국경은 가깝고 실로 동해에서 항구용 토지를 개척하기를 바라며, 현재 군함이 블라디보스토크[海參崴]·두만강[土們江] 일대에 모여 있는데, 귀국과는 딱따기를 치는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이니 귀국이 어떻게 이를 대비할수 있겠습니까? 또한 듣기에 귀국의 백성 가운데 러시아 국경에서 무역을 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하니 그들을 통해 虛實을 偵察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국의 관부는 지금까지 그들과 문서 왕래가 있었습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러시아가 근심거리가 되는 것은 프랑스나 미국보다 큽니다. 조선의 북쪽 변경은 곧 慶興·慶源등지인데, 비록 末利를 추구하는 무리들이 있어서 종종 넘어가서 그들에게 고용되니 虛實을 偵察하는 일 역시 필연적인 추세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犯越한 사람들은 조선에서 체포하면 법으로써 용서하지 않는 까닭에 일단 넘어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邊民들끼리 분쟁이 있을 때 邊臣이 간혹 문서로서 해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례에 따라서 왕래하는 일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德源永興口는 각국에서 칭찬하기를 형세의 험고함이 동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러시아가 여기에 뜻이 있는데 귀국은 그 항구에 포대와 군함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이것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실상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海口의 요해에 비록 군함과 대포가 있지만 배는 목선이고, 포는 모두 구식이라서 덜컹덜컹합니다. 이전에 조선의 일은 모두 中堂께서 유지해주는 바에 의지하였는데, 지금 어렵고 위험한 때를 맞았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더욱 留念해 주십시오. 우러러 황상께서 동쪽을 돌아보고 근심하시는 바를 풀어주시고, 굽어보아 먼 북쪽 땅까지 돌보아 위로해주시는 정성에 대해 지극히 기권하고 간절히 바라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러시아인의 교활함이 보통이 아니어서 내가 일찍이 이러한 뜻이 있는지 물었으나 없다고 대답했지만, 각국은 옆에서 살펴보면서 실제로 그러한 음모가 있지만 아직 발동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년 봄은 반드시 조심해서 방비해야 하니, 만약 그때가 되어 그들의 큰 부대와 군함이 마침내 돌아올지에 대해 조선은 반드시 미리 유의해야 합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武經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기 때문에, 저희 국왕께서는 깊이 염려하여 따로 정탐을 시키신 바 있습니다. 보내주신 咨文에 강한 이웃이 몰래 엿본다고 하신 말씀은 곧 이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진실로 中堂께서 같은 집안으로 보아주시지 않는다면 누가 분명히 가르쳐주고 그 장래를 대신 계획해 주겠습니까? 계속해서 살펴보아주시기를 엎드려 빌고 또한 혹시 진압하거나 화해하는 길이 있다면 기회를 보아 잘 처리해 주셔서 다른 근심이 없도록 해 주시기를 더욱 간절하게 축원합니다. 일찍 관심을 주셨음은 원래 알았지만, 제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면 정세가 급박한데 어찌 사소한 일로 허술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마음을 살펴서 그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제 생각에 永興은 이미 일본에 통상을 허가했으니 만약 러시아인이 갑자기 군함으로 침입하거나 혹은 먼저 예를 지키고 나중에 무력을 행사할 경우, 귀국이 반드시 委員을 파견하여 접응하고 기회를 엿보아 적절하게 통상을 허락한다면, 조약을 체결하면서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 조선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화해의 방법입니다. 만약 전쟁을 치른 다음에 조약을 논의하게 되면 그 손해가 아주 심합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삼가 마땅히 하나하나 돌아가서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압의 요체는 中堂께 있으니 특별히 시종일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조선의 함경도는 곧 國祖康獻王이 토대를 쌓은 땅이고 四世의 능침이 여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온갖 금속이 여기에서 생산됩니다. 그 백성은 용기는 있으나 지모가 없고, 말 타고 활쏘는 일에 익숙하여 北方之剛이라 이를 만합니다. 德源과 元山은 육지와 바다의 인후인 까닭에 조선이 여러 해 동안 미루다가 결국 끝내 지킬 수 없어 그 개항을 허락한 것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일이 있어서 함경도가 우리 것이 아니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목을 조르는데 어떻게 호흡이 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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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握管焦心이다. 握管은 글을 쓰거나 작문을 한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문맥에 맞추기 위해 말을 한다고 해석하였다.

속이 타올라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중국의 육군은 자립할 수 있고, 해군[水師]은 兵輪船 여러 척을 仿造하여 간신히 해안을 스스로 지키고 土寇를 토벌하거나, 다른 작은 나라와 승부를 겨룰 수 있습니다. 러시아 해군은 강성한데다가 현재 우리의 힘이 아직 대양으로 나아가 쫓기에 부족하여 실로 멀리 東海를 돌보기에 편치 않은 형세이므로 감히 귀국의 땅 永興 일대를 진압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몇 년 후에 철갑 쾌속선이 준비되면, 제 생각에는 밖으로 나가 순시하고 귀국의 동해 각 항구에도 정박하게 되면서 그럭저럭 멀리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본 대신의 북양 관할 지역은 귀국 해안과 인접해 있으니, 情誼가 마치 일가와 같고 본래 경계가 없지만, 지금 역량으로는 함께 운영하기에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러시아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면 귀국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모습으로 대하고 羈縻를 끊지 않으면서, 병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조하여 自強하는 방책을 시급히 도모하는 것이 가히 나라를 아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통례에는 公法에 이유 없이 군사를 일으켜 다른 나라의 토지를 빼앗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굳게 거부하고 막혀있기를 고집하면 저들이 핑계로 삼을 수 있으니,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먼저 예의를 갖추고 나중에 무력을 행사할지, 먼저 무력을 행사하고 나중에 예의를 갖출지를 아는 것은 본래 적과 협상할 때 도움이 되지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德源부두의 공사는 이미 봄에 시작했는데, 지금 갑자기 포대를 건축하여 대포를 많이 배치한다면 일본인이 반드시 구실로 삼을 것이고, 만약 손을 묶고 앉아서 기다린다면 역시 침략을 막는 방책이 아닙니다. 엎드려 빌건대 분명하게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따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동서 각국의 통상구에는 포대를 견고하게 건축하여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일본이 구실로 삼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말로 따져 묻는다면, 이것은 조선의 自主권리이며 만국 통례라고 답하면 됩니다. 다만 반드시 장교·병사들을 단속하여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삼가 밝은 가르침을 받으니 말의 뜻이 정중하고 숨김없이 드러내어 황송하게도 아랫사람으로서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몇 년 후에 [북양함대가] 관할 지역을 순시하고 정박하면서 위엄과 명성을 떨치게 되면 충분히 적을 두려워 떨게 만들 수 있겠지만, 당장 지금의 근심은 그칠 바가 없습니다. 조선 국왕께서 智勇仁明을 갖추셔서 진실로 뒤처리를 잘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은 제 소견은 갈팡질팡하는 것을 면치 못합니다. 생각하건대 이웃나라의 의혹스러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만, 琉球를 일본이 침탈한 것은 公法이 불허하는 바인데, 천하 각국은 장차 公議로써 망한 것을 흥하게 하고 끊어진 것을 이을까요?”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일본은 琉球에 대해서 스스로 明代중엽에 藩屬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琉球를 합병한 이후에 신문을 통해서 각국에 널리 알리고 각국 또한 이를 가볍게 믿었습니다. 公法은 서양에서 정한 것이어서 東土에서는 아직 반드시 그대로 행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각국이 통상을 하는 공공 항구에서는 한 나라가 독점하지 못하며, 독점을 하면 곧 무리지어 일어나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작년 가을 비밀을 상의하면서 각 大國에 적절하게 통상을 허가하라고 한 것 역시 러시아와 일본이 장래 조선에서 일을 만들까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귀국 이후에 국왕께 여쭈어 처리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귀국에서 사람을 파견해서 무기 제조와 군사 훈련을 학습하도록 요구한 일은 이미 여러 道臺에게 지시를 내려 며칠 동안 함께 협의하게 하였는데 어제 대강의 내용을 보고하였고, 그 내용은 이미 매우 상세하고 분명합니다. 귀관은 능히 이를 따를 수 있습니까?”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이 일은 전에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바를 감히 咨文으로 요청한 것입니다. 조선이 요청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따라주시고 원하면 모두 이루어주시는 大朝의 德意와 우리 中堂의 돌보아주시는 은혜를 우러러 따르는 바입니다. 가르침이 있는데, 어찌 받들어 따르지 않겠습니까?”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습니다:“여기에 『節略』 초고 1부가 있으니 가지고 돌아가서 자세히 살피고 조항마다 논의하여 답장을 주십시오. 혹시 의문이나 난점이 있으면 다시 여러 道臺와 상의하여 그들이 전달하여 알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각 조항이 주도면밀하고 다듬어진 것이라 다시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일이 있을 때에는 海道를 따라 왕래하기를 청하니 미리 여러 道員에게 포고해 주셔서 은혜를 입도록 해 주십시오.”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朝貢信使가 왕래할 때 반드시 기존 법도를 준수해야 하는데, 이런 요청은 전례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만약 海道로 직접 다니면 자연히 보다 간편해질 터이지만 그래도 여러 道臺에게 지시하여 章程과 통행증(凴票) 등의 일을 함께 논의하도록 보고를 올리도록 하고, 그다음에 제가 황상께서 결정해주시도록 奏請하는 것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卞元圭가 대답하였습니다:“제가 전날에 우러러 청한 것이 본래 이와 같았으니, 반드시 오늘·내일 할 필요 없이 마음대로 판단하여 처리해 주시되, 다만 성사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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