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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통상을 거부하고 천진(天津)에서 군사 훈련을 허용해 주기를 바란다는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조선은 서양과의 통상을 굳게 거부하지만, 따로 훈련 인원을 天津으로 보내 무기와 군사 학습을 하는 것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할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朝鮮堅不欲與西洋通商, 另有練員請准來津學習軍器、武備之意).

 
  • 발신자北洋大臣李鴻章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79년 11월 15일 (음) , 1879년 12월 27일
  • 문서번호2-1-1-06 (327, 394b-396b)
11월 15일, 北洋大臣李鴻章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다.

7월에 丁日昌이 진술한 각 항목에 따라 조선에 전달하여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고 통상을 하게 함으로써 일본의 간교한 음모를 막도록 권유하라는 寄信上諭와, 더불어 보내주신 538호 서신을 받았습니다. 즉시 諭旨에 따라 조선 原任太師李裕元에게 서신을 써서 비밀스럽게 권고하였고, 그 내용은 이미 베껴서 답장상주를 올리고 아울러 그 대략의 내용을 [귀 總理衙門에] 서신으로 써서 알린 바 있습니다.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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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나온 (5) 문서번호:2-1-1-05(312, 373a-379a)를 참조.


이어 10월 7일에 永平府知府인 遊智開가 李裕元의 서신을 전달해 왔는데, 이전의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아마도 분명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고충이 있는 것 같습니다. 遊智開의 비밀보고[密稟]에 따르면 李裕元이 보낸 다음과 같은 다른 서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본뜻은 다른 나라와 왕래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일본에 개항한 것은 실로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서양인과 통상을 한다면 감히 항구를 개방하지 못할 것입니다. 7월말 무렵 北洋大臣의 서신을 받았는데, 은근히 조선을 위해 여러모로 지도해 주시는 것이 간절하고도 지극하였습니다. 그 점은 응당 조정에 아뢰었지만, 제가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게 되어 감히 힘써 다투지는 못하였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만약 답장을 받게 된다면 7월 서신에 관한 일은 드러내지 않도록 대신해서 비밀리에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의 자문전달관[賫咨官] 李容肅이 다시 遊智開와 상의하면서 저를 만나러 와서 무기 제작, 군사 학습 등에 관한 일을 직접 이야기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저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어 遊智開에게 서신을 보내어 적당한 사람을 함께 안내인으로 보내 호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遊智開가 서신을 받고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李容肅을 안내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 北京에서 돌아오면서 해당 賫咨官의 답장서신을 가져왔는데, “사신의 임무를 맡은 자로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여 주저하면서 [天津으로 오는 일을] 중지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울러 말하길 李裕元의 서신에서 자세하게 직접 아뢰겠다고 한 중요한 일은 조선의 여론 때문에 옛적에 외국인으로서 중국의 학교에 입학하였던 선례를 모방하여 禮部에 자문을 보내 능력 있는 인원을 선발하여 天津등에 보내 무기와 군사 학습을 요청하겠다는 것으로, 제게 대인께 전달하여 지시를 받아달라고 특별히 부탁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李裕元이 홀로 모의를 주도하지 못하는 것과 자문전달관이 감히 내지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은 모두 실제 상황이며, 조선이 軍備를 강구하는 일은 실로 더 이상 미루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遊智開에게 답장을 보내 그들이 요청한 바 모두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렸습니다. 장래 조선이 자문을 보내면 마땅히 禮部에서 상주하고 總理衙門에 咨文을 전달하여 적절히 처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후에 조선에서 인원을 天津으로 보내면, 天津에서는 병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조하는 방법에 대해 그 秘要를 모두 알려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적절하게 지도하여 성과를 거두고 이를 통해 自強의 기반을 만든다면 우리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일이 되니, 자문전달관 李容肅이 永平府를 지나기를 기다려 상세하게 설명하고 우리 조정의 속뜻을 알려주어 조선이 날로 법도를 일신하고 변경 방비를 날로 엄히 함으로써 강한 이웃나라가 엿볼 수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따로 李裕元에게 답장을 보내는 서신은 다만 안부를 묻는 인사말 정도를 쓰고 7월에 논의한 각 항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계속 교류를 유지하기 좋도록 하고자 합니다. 삼가 李裕元이 보낸 서신과 제가 쓴 답장서신을 초록해서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조선이 굳게 서양인과의 통상을 거부하니 중국이 자연히 강권하기 어렵고, 이 문제로 제가 다시 쓸데없이 상주할 필요 없이 직접 뵈었을 때 이 점에 대해 좀 더 아뢸 수 있을지 엎드려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삼가 비밀리에 알립니다.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별지 : 조선 太師李裕元이 北洋大臣李鴻章에게 보낸 서신(朝鮮太師李裕元致北洋大臣李鴻章函)
 
첨부문서:淸摺초록

1. 「조선 原任太師李裕元이 보낸 서신」초록
李 中堂大人께 올립니다.
외람되게 海外의 미미한 존재로서 대인의 과분한 사랑을 입어 서신이 끊이지 않은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으니 마음속의 위안과 감사를 어느 날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서 추위와 더위가 일정하지 않으니 늘 신체 건강하시길 빕니다. 황상을 잘 보필하시고 국가를 안정시켜 軍民이 즐겁게 생활하고 덕망이 널리 퍼지시니 찬송을 금할 수 없습니다. 조선에는 간혹 일본 사신이 와서 머무는데, 비록 경계를 지나가는 것일 뿐 아직 바깥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대단히 근심이 됩니다. 이번에 가는 자문전달관 李容肅은 겸하여 맡은 임무가 있어서 특별히 보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찍이 遊智開知府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서신을 가지고 가서 대인을 만나 뵙게 하여, 직접 얼굴을 맞대고 다시 중요한 사무의 세세한 내용을 아뢰고자 합니다. 遊智開知府가 반드시 李容肅의 말을 중당 대인께 전달하였을 것이니, 다행히 저를 잊지 않으시고 특별히 돌보아주셔서 일마다 주선을 해주시고 끝까지 가르침을 주시어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우러러 바랍니다. 소생은 고향에서 편하게 지내면서 병을 잘 조리하고 있으니, 國恩이 미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소생 李裕元이 다시 인사드립니다.
乙卯8월 20일.
 
별지 : 北洋大臣李鴻章이 조선 原任太師李裕元에게 보낸 답장(北洋大臣李鴻章覆朝鮮致仕太師李裕元函)
 
2. 「조선의 原任太師李裕元에게 보낸 답장」초록

李裕元太師께 보냅니다.
10월 초순 永平府의 遊智開知府를 통해 8월 22일에 보내주신 서신을 받았습니다. 과분한 관심을 받아 情誼는 더 두터워 제 솔직한 마음이 수천 리 밖에서도 느껴질 수 있으니,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손에 쥐고 감상하는 데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최근에 은퇴를 고하시고 은거하여 보양을 하시면서도 안으로는 대신들을 도와서 좋은 의견을 임금께 아뢰시고 밖으로는 이웃과의 갈등을 막아 국토를 오랫동안 안정시키면서 멀리 광채를 빛내시니 어찌 박수치며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倭人이 귀국과 통상을 한 이후에 때로는 교통 요지의 자그마한 일로 크게 불만의 뜻을 내비치면서 혹은 군대를 파견하여 輪船으로 바다를 순찰케 하거나 혹은 書記官을 북쪽으로 보내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분쟁의 실마리가 잠시 수그러들어 말썽이 일어나지는 않기에 제 마음에 약간 위로는 됩니다. 조선 자문전달관 李容肅이 遊智開知府와 서로 안 지 조금 되었다고 하는데, 방금 遊君으로부터 일체를 전달받았습니다. 저로서는 李容肅군이 직접 왕림해서 미처 듣지 못한 것을 보태어 듣고 제 속뜻도 잠시 보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어제 李容肅군은 使命을 띠고 있어 감히 머무르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바로 遊君에게 서신을 보내 제 뜻을 전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귀하의 忠謨와 奮發은 진실로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겨울 추위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合肥李鴻章이 다시 인사드립니다.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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