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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소장의 무령현(撫寧縣) 출입경(出入境)에 관한 자문(咨文)을 알리는 북양대신(北洋大臣)의 문서

일본 육군 소장 永山武四郞이 直隷 撫寧縣을 出·入境한 날짜를 咨文으로 알립니다(咨報日本陸軍少將永山武四郞經直隷撫寧縣出入境日期).

 
  • 발신자北洋大臣 李鴻章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7년 11월 15일 (음) , 1887년 12월 29일
  • 문서번호1-5-0-08 (1305, 2418b-2419a)
11월 15일 북양대신 이홍장이 다음과 같은 자문을 보내왔습니다.
일전에 귀 아문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었습니다.
일본 육군 소장 永山武四郞이 農務를 시찰하러 중국에 가는데, 러시아령 우수리州의 니콜리스크, 즉 雙城子를 경유해 淸과 러시아의 국경에 있는 綏芬河 일대 三岔口나, 혹은 러시아령 포시예트港에서 淸·러시아·조선 삼국의 국경을 거쳐 琿春으로 입국할 것 같습니다. 이후 寧古塔과 吉林·盛京·山海關 등지를 경유해 北京에 도착하였다가 天津으로부터 귀국하고자 합니다. 각지에 자문을 보내 적절히 보호하도록 해주시는 한편, 入境과 出境 날짜는 咨文으로 답장해 주십시오.
이미 본 대신이 각 지방관들에게 그에 따라 처리하도록 咨文을 보냈고, 일본 소장 永山武四郞 등이 러시아로부터 琿春에 당도했다가 출발해 吉林에 당도한 날짜를 혼춘부도통이 咨文으로 보고하자, 이를 咨文으로 답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어 直隷 撫寧縣 知縣 恩廉이 다음과 같이 보고해 왔습니다.
공문을 받은 다음 즉시 수시로 정탐 인원을 파견했지만, 縣의 경계를 통과하는 것을 도통 볼 수 없었습니다. 10월 29일에 이르러서야 臨楡縣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 육군 소장 永山武四郞가 수행원 4명을 대동하고 이번 달 27일 巳時에 入關하여 縣 西街의 德盛店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에 永山武四郞 등을 비밀리에 보호하도록 공문을 보냈고, 저는 바로 丁役을 선발해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29일에 파견된 衙役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탐문해보니, 일본 육군 소장 永山武四郞은 수행원 4명을 데리고 29일 酉刻에 (縣) 경계에 당도해서 저희 縣의 東關 萬成店에 머물렀습니다. 30일 辰刻에 출발해서 盧龍縣 쪽의 길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신속히 공문을 驛站으로 보내 盧龍縣에서 비밀리에 보호하도록 하는 한편, 모두 出·入境 날짜를 신속하게 보고하여 알려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마땅히 귀 아문에 咨文으로 답장을 보내는 바이니, 번거롭더라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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