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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을 파견하여 조선관원과 공동 감계(勘界)하도록 하였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1. 秦煐을 파견하여 조선 관원과 함께 변계를 명확히 조사하게 했습니다(派秦煐會同朝鮮官勘明邊界).2. 勅使 穆克登이 疆域을 정할 때의 옛 檔案에 대해, 이미 琿春副都統衙門에 자문을 보내 상세히 찾아보도록 하였습니다(勅使穆克登定界舊檔, 已咨行琿春副都統衙門就近詳査).

 
  • 발신자吉林將軍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5년 8월 22일 (음) , 1885년 9월 30일
  • 문서번호1-3-1-27 (1066, 1947a-1947b)
8월 22일 길림장군 희원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다.
변무승판처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올해 8월 2일에 다음과 같은 자문을 받았습니다.
광서 11년 7월 20일 본 아문에서 도문강 경계문제에 대해 길림장군에게 사람을 파견하여 조선 관원과 공동감계를 하도록 지시해 달라는 의논한 결과를 상주하였는데, 오늘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

 
의논한 대로 하라
 

이에 삼가 유지를 옮겨 적고 원주를 베껴 귀 대신에게 자문으로 보내니 그에 따라 처리해주십시오.
원래의 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조선 유민이 월간을 하여 토지를 차지하고 개간한 문제에 대해 조선국왕은 시종일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엄격하게 통제하고 적절하게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오로지 변방 관리의 일방적인 말만을 믿고서 쉽사리 (이러한 감계) 요청을 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혼춘의 문·무관들도 부대를 파견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자 할 때 조선의 변방 관리에게 미리 공문을 보내 알림으로써 백성을 풀어놓아 월간한 것을 질책하지 않고, 갑작스레 집을 불태우는 행동으로 나선 것은 성급한 처리 방법일 뿐더러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방법도 아닙니다. 원래 조선은 대대로 藩服으로서의 분수를 지켜 삼가 직분을 다해왔으며, 조선과의 경계는 응당 신속하게 조사를 하고 확정하여 無業流民들이 모두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함으로써, 중국에서 그동안 조선을 어여삐 여겨온 뜻에 부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조선에서 토문과 두만이 서로 다른 강이라고 하는 것은 실로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그들이 그려서 보내온 지도 역시 그다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책에 실려 있는 것을 검토해보면 길림과 조선은 圖們江을 경계로 한다고 실려 있고, 다른 두만강 지류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또한 도문강과 압록강이 동서 양쪽의 경계가 되고 표시된 그림이 아주 분명한 데다가, 따로 小圖們江이 있는데 본류의 북쪽에 있어 또한 두만강이란 이름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함경도는 鐵嶺의 동북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여 茂山 등의 여섯 진영을 강변에 설치하였습니다. 백두산은 장백산의 다른 이름이고, 두만강의 도문강의 다른 발음이며 방언이 다를 뿐 실제로는 하나의 강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고증이 실로 정확합니다. 이에 응당 귀 아문이 올린 원주에 따라서 인원을 파견하여 공동감계를 실시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商務를 감독하는 위원이자 五品銜을 지닌 分發補用知縣 秦煐이 전에 이곳에서 招墾 업무를 맡았으며 지형과 정세에 매우 익숙하니 일을 맡겨 파견하기에 적당할 듯합니다. 아울러 혼춘부도통을 통해서도 적절한 인원을 선발·파견함으로써 조선 관원과 만나 증거를 가지고 확실하게 밝혀 의심이 남아 분쟁하지 않도록 하고, 아울러 유민들을 거두어들여 정착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옮겨가기 어려운 유민에 대해서는 다시 주를 올려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주에서 강희 51년 오라총관 목극등이 경계를 정한 비문에 대해 자료가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황상의 지시를 요청한 문제는 그에 따라서 길림장군 관서에 있는 오래된 당안을 살펴보았지만, 연도가 오래되고 이미 곰팡이가 피고 문드러져 [아무런 관련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니, 응당 혼춘부도통아문에 자문을 보내 [혹시 거기에 기록이 남아 있는지] 자세히 조사하도록 할 것입니다. 원주를 베껴서 혼춘부도통에게 자문을 보내고, 秦瑛에게 공문을 보내 따르도록 한 것 외에도 응당 귀아문에 자문을 보내어 답장을 해야 하니 번거롭더라도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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