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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문강(土們江)의 구계(舊界) 조사에 대한 조선국왕의 자문(咨文)을 상주(上奏)하는 군기처(軍機處)의 요청

조선국왕이 土門江 舊界를 조사하는 문제를 (예부에서) 대신 상주해달라고 咨文으로 요청해왔으니, 吉林將軍에게 관원을 파견해 직접 가서 답사하도록 지시해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朝鮮國王咨請代奏踏勘土門江舊界, 請飭吉林將軍派員履勘).

 
  • 발신자軍機處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5년 7월 6일 (음) , 1885년 8월 15일
  • 문서번호1-3-1-13 (1037, 1898a-1899a)

광서 11년 6월 21일 조선국왕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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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는 조선국왕의 이름이 쓰여져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였다.

이 특별히 파견한 자문전달관[齎咨官] 李應浚이 가져온 자문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공동으로 열람해보니 다음과 같은 요청이었습니다.
토문강의 옛 경계 때문에 인원을 파견하여 답사함으로써 변경의 소란을 잠재웠으면 합니다.
신 등은 원래 올해 2월에 조선의 進貢使臣 金晩植이 올린 다음과 같은 탄원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주002]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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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승정원일기』(고종 제9, 151c)나 『日省錄』, 『高宗實錄』高宗 22年 4月 4日의「동지 삼사(冬至三使)【正使 金晩植, 副使 南廷哲, 書狀官 尹命植】를 인견(引見)하였다(回還冬至使 金晩植·副使 南廷哲·書狀官 尹命植)」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토문강 강계가 명확하지 않아 지도 등을 그려 보고하는 바이니, 청컨대 대신 상주하여 주십시오.
(그렇지만) 이 사항은 양국의 변계에 관한 것으로서 단지 해당 사신의 탄원서 한 장에 의지하여 대신 상주하기는 불편하였으므로 원건은 다시 전달한 곳으로 돌려보내고, 지도 등은 저희 예부에 보존하여 나중에 참고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조선국왕이 파견한 사신이 京師에 와서 토문강 옛 강계를 조사하는 문제로 자문을 전달하면서 대신 상주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사항이 강계에 관련된 것이니 응당 명확하게 조사할 터이므로, 길림장군에게 적절한 인원을 신속히 파견하여 상세히 조사하게 하고 상주하여 지시를 받은 다음 명확히 처리하도록 지시를 내려주실 것을 간청하는 바입니다. 해당 자문전달관 이응준 등은 會同四譯館 [주003]
번역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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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예부 소속의 기구(官署)로 각국의 조공사절을 접대하는 임무를 맡았다. 순치 연간에는 회동관과 사역관으로 설치되었으나 건륭 연간 통합되었다. 여기에는 조선통사관(朝鮮通事官) 8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에 머무르게 하였고 상이나 연회 등 의례에 관계된 모든 사항은 예부에서 전례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만, 응당 삼가 조선국왕의 자문 원건을 옮겨 적어 살펴보시도록 올려야 할 것입니다. 이에 삼가 주를 올려 유지를 청하는 바입니다.
광서 11년 7월 6일 군기대신은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다.

 
해당 아문에서 논의하여 상주하도록 하라.
 

이상.
 
별지 : 토문강(土門江) 구계(舊界)의 조사를 요청하는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土門江 舊界를 조사해주십시오(請査勘土門江舊界). [주004]
번역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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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수록된 내용이라 여기서는 목록만 남기고 생략하도록 한다. 다만 그 내용을 보면 수신자가 왕공제대신(王公諸大臣)에서 부당대인(部堂大人)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앞 번호의 자료처럼 총리아문에 보낸 것이 아니라 예부로 보낸 자문이었기 때문이다.



7월 6일 軍機處에서 다음과 같은 禮部의 문서를 보내왔다.

 

첨부문서 초록:생략(바로 앞 번호에 수록된 자료와 같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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