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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문강(土們江)의 구계(舊界)를 조사할 것을 청하는 자문(咨文)

관원을 파견하여 토문강의 舊界를 조사해주실 것을 청하며, 咨文으로 보내오니 대신 상주해 주십시오(咨請轉奏派員査勘土門江舊界).

 
  • 발신자朝鮮國王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5년 6월 22일 (음) , 1885년 8월 2일
  • 문서번호1-3-1-12 (1030, 1889b-1890a)
6월 22일, 조선국왕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다.
조선의 서북 강역은 원래 土門江을 경계로 하여 왔습니다. 강희 51년 烏喇總管 穆克登이 유지를 받들어 변계를 조사한 다음, 돌에 새겨 분수령 위에 세워놓아, 土門江 이남과 이북으로 중국과 조선의 경계를 삼았던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변민이 혹시 다투다가 소란을 일으킴으로써 중국에 폐를 끼칠까 염려하여 토문강 이남 지역은 비워둔 채 백성이 들어가 살지 못하도록 해 왔습니다. 최근 종종 그 빈 땅으로 이사하여 집을 짓고 경작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변경 금지령이 오래되면서 점차 해이해졌는데, 이는 진실로 저희 지방관의 책임입니다. 그렇지만 그 땅은 실은 조선 땅이므로 조선 백성이 거기 거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豆滿江을 경계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癸未年(광서 9[1883]년)에 이르러 敦化縣에서 조선 지방관에게 조회를 보내 농민을 거두어들이라고 요구했는데,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양쪽 백성의 다툼이 그치지 않을 것으로 염려됩니다. 그래서 작년 冬至使 兼 謝恩使로 正使 金晩植과 副使 南廷哲이 이에 관한 공문을 예부에 올리고, 아울러 地圖와 碑文 등은 예부에서 잠시 보존하여 나중에 참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국경에 관한 것이자 나중의 문제와도 관계되는 것이니, 응당 한 차례 조사를 통해 옛 강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副司直 李應浚을 파견하여 자문을 보내니, 번거롭더라도 귀 王公諸大臣께서 이 문제를 대신 황상께 상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인원을 파견하여 조사한 다음 처리하여 옛 강계를 명확하게 하고 변경의 말썽거리를 잠재울 수 있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이에 응당 문서를 갖추어 자문을 보내 알리니, 貴王公諸大臣께서 살펴보시고 답장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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