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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越境)하였다가 병사(病死)하거나 도망 친 조선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조선 백성 김은희 등 3명이 월경하였다가 병사하거나 도망친 일에 대해, 조선 경원부에서는 조사해보니 그런 사람이 없다고 답장해 왔습니다(朝鮮民人金銀喜等三名越境病故逃逸事, 朝鮮慶源府回稱査無此人).

 
  • 발신자吉林將軍 奕榕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72년 1월 7일 (음) , 1872년 2월 15일
  • 문서번호1-2-3-45(199, 258a-258b)
同治 11년 1월 7일, 吉林將軍 종실 奕榕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이전에 雙城堡 總管이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해왔습니다.
조선 백성 金銀喜安得榮李尙得 3명이 몰래 국경에 들어와 약을 팔았습니다. 李尙得은 병으로 사망했기에 시신을 잠시 묻어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金銀喜安得榮 2명은 도주하였습니다.
본 衙門에서는 이미 소속 각 지역에 지시공문을 보내 모두 조사하도록 했고, 琿春協領으로 하여금 근처의 朝鮮 慶源府 관원에게 照會를 보내, 雙城堡에 와서 거래를 한 金銀喜安得榮 두 사람을 잡아오게 하고, 李尙得의 시신이 안치된 관을 인수해 가게 하는 한편, 사실에 근거하여 8월 16일에 咨文으로 보고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에 12월 10일에 琿春協領 訥穆錦이 다음과 같이 보고를 하였습니다.
雲騎尉 依薩繃阿를 파견해, 여행증을 가지고 朝鮮 초소에 이르러 속달로 공문을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곧 慶源府 관원이 兵房座守 등의 관원을 파견해, 원래 보냈던 照會를 가지고 와서 다음과 같이 정중히 알려왔습니다.

 
소속 각지에는 도망자 金銀喜安得榮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본 지방관이 분명히 조사하긴 했지만, 아직 국왕의 지시를 받들지 않아 함부로 답장을 드릴 수는 없으며, 또한 大國의 공문을 계속 보관하기도 불편하니, 照會를 가지고 돌아가 주십시오.
 

해당 協領이 이런 보고를 전달해 왔습니다. 해당 協領에게 문서를 갖춰 朝鮮 慶源府 관원에 照會를 보내도록 해서, 서둘러 사실대로 조사하여 앞서의 도망자 金銀喜安得榮 두 사람이 있다면 즉시 堡로 와서 시신이 든 관을 인수해서 시일을 끌지 않도록 하였고, 아울러 禮部에 咨文을 보내 검토하도록 하는 한편, 마땅히 총리아문에도 사실대로 보고하니 삼가 참고해주십시오.
 
이름
奕榕 , 金銀喜 , 安得榮 , 李尙得 , 李尙得 , 金銀喜 , 安得榮 , 金銀喜 , 安得榮 , 李尙得 , 訥穆錦 , 依薩繃阿 , 金銀喜 , 安得榮 , 金銀喜 , 安得榮
지명
雙城堡 , 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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