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기사명
자료명
작성·수신·발신
본문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cj.k_0001_0020_0030_037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월경민(越境民) 이동길(李東吉)을 체포하여 조선에 넘겨 수감시킨 일에 관한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이동길의 부모・자식 등 8명을 뒤이어 체포하고, 앞뒤로 모두 조선 지방관에 넘겨 수감하게 하였습니다(續緝獲朝鮮逃犯李東吉之父母子媳等八口, 均先後解交朝鮮地方官收禁).

 
  • 발신자吉林將軍 奕榕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71년 1월 29일 (음) , 1871년 3월 19일
  • 문서번호1-2-3-37(121, 161b-162b)
1월 29일, 署吉林將軍 奕榕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올해 1월 7일, 寧古塔副都統 烏勒興阿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琿春協領 納穆錦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전에 琿春土們江霍隆溝에서 조선 범인 李東吉과 부인 蔡 氏를 체포하여, 佐領 溫崇阿와 驍騎校 永魁 등에게 인계하여 同治 9년 윤10월 20일에 병사를 거느리고 압송하려던 차에, 다시 李東吉의 아들 李尙海와 며느리 邦 氏, 일꾼 蔡諾彌를 체포하였습니다.
심문하자, 李尙海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저는 조선慶源府의 백성으로 나이는 15세이며, 同治 7년에 土們江霍隆溝에 있는 李東吉의 집에 구걸하였는데, 그는 저를 머물게 해주면서 양자로 삼았습니다. 9년 여름, 조선의 어린 여자아이 邦 氏가 건너와 구걸하자, 李東吉은 그녀를 머물게 해주고, 제게 부인으로 주어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邦 氏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저는 조선小金溝 지방 사람으로, 나이는 17세이며, 아버지는 작고하시고 어머니는 李 氏입니다. 同治 9년 여름, 본국에서 흉년이 들어 살아가기 어려워지자, 몰래 土們江을 넘어와 각지에서 걸식하였습니다. 그러다 李東吉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저를 머물게 해주고, 그의 양자 李尙海에게 저를 주어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蔡諾彌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저는 조선中城 지방의 백성으로, 나이는 30세입니다. 본국에서 흉년이 들어 살아갈 방도가 없어졌기 때문에, 몰래 강을 건너와 각지에서 걸식하였습니다. 同治 9년 5월에 霍隆溝에 이르렀다가, 조선백성 李東吉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바로 그에게 일꾼으로 고용되었습니다. 뜻밖에도, 윤10월에 李東吉이 대국의 관병들에게 체포되자 저희는 무서워서 숨어 있었지만, 다시 관병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이들을 함께 琿春으로 압송하여 佐領 溫崇阿 등에게 인계함으로써 조선 慶源府 관원에게 압송해서 수감하도록 하고, 그들로부터 월경 난민을 회수했다는 照會를 받아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또 査界雲騎尉 成貴에게 지시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霍隆溝로 가서 수색시켰더니, 李東吉의 아버지 李陽恩과 어머니 崔 氏, 또 다른 부인 1명을 더 찾아내 다시 심문하자,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李陽恩은 80세, 崔 氏는 81세로 모두 조선慶源府의 백성이었습니다. 아들 셋을 낳았는데, 큰아들 李東明은 이미 죽었고, 차남은 李東吉이며, 삼남은 李明山인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릅니다. 咸豊 3년에 차남 李東吉이 李氏 성을 가진 조선慶源府의 지방관을 구타했다가, 관병에게 붙잡힐 것이 두려워 이름을 李靑山으로 바꾸고 몰래 土們江을 넘어왔습니다. 同治 9년 여름에 본국에 흉년이 들자, 李東吉은 저희 부부를 함께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나중에 李東吉이 대국의 관병에 붙잡혀가자, 저희는 산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가 다시 관병에게 붙잡혔습니다.
 

다만, 부인 1명은 그 내력을 심문하였지만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말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진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李陽恩과 崔 氏와 함께 雲騎尉 成貴에게 인계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조선으로 압송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 佐領 溫崇阿와 驍騎校 永魁, 雲騎尉 成貴 등이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조선 범인 李東吉 등 8명을 (同治) 9년 윤10월 21일과 25일에 전후로 모두 朝鮮慶源府의 관원에게 인계하여 수감하도록 하였으며, 증명서 2건을 받아 왔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고 받은 寧古塔副都統이 다시 咨文으로 그 내용을 吉林將軍衙門에 전달해 왔습니다. 佐領 溫崇阿와 驍騎校 永魁, 雲騎尉 成貴 등이 조선 범인 李東吉 등 8명을 압송했다는 증명서 2건은 본 衙門에 남겨두어 참고하도록 하는 것 외에, 유지에 따라 조선 범인 李東吉과 그의 부인 蔡 氏를 체포하고, 이어서 李東吉의 아버지 李陽恩과 어머니 崔 氏, 아들 李尙海, 며느리 邦 氏, 일꾼 蔡諾彌, 姓氏를 모르는 부인 1명 등 총 8명을 체포하여 모두 조선 慶源府 관원에게 압송해서 수감시킨 사정 등을 마땅히 먼저 사실대로 총리아문에 보고하니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름
奕榕 , 烏勒興阿 , 納穆錦 , 李東吉 , 溫崇阿 , 永魁 , 李東吉 , 李尙海 , 蔡諾彌 , 李尙海 , 李東吉 , 李東吉 , 李東吉 , 李尙海 , 蔡諾彌 , 李東吉 , 李東吉 , 溫崇阿 , 成貴 , 李東吉 , 李陽恩 , 李陽恩 , 李東明 , 李東吉 , 李明山 , 李東吉 , 李靑山 , 李東吉 , 李東吉 , 李陽恩 , 成貴 , 溫崇阿 , 永魁 , 成貴 , 李東吉 , 溫崇阿 , 永魁 , 成貴 , 李東吉 , 李東吉 , 李東吉 , 李陽恩 , 李尙海 , 蔡諾彌
지명
琿春 , 土們江 , 霍隆溝 , 조선 , 慶源府 , 土們江 , 霍隆溝 , 조선 , 小金溝 , 土們江 , 조선 , 中城 , 霍隆溝 , 琿春 , 霍隆溝 , 조선 , 慶源府 , 조선 , 慶源府 , 土們江 , 조선 , 朝鮮 , 慶源府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