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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유괴된 조선 아동(兒童)을 찾아서 조선국 관원에게 넘겨주었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조선 아동 김 씨 등 3명을 찾아내어, 이미 조선국 경원부의 관원에게 수령해가도록 넘겨주었습니다(査獲朝鮮幼童金氏等三名已解交該國慶源府官收領).
  • 발신자
    吉林將軍 富明阿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70년 7월 13일 (음)(同治九年七月十三日) , 1870년 8월 9일 (同治九年七月十三日)
  • 문서번호
    1-2-1-04(98, 123a-125b)
7월 13일, 吉林將軍 富明阿 등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조사해보건대, 올해 정월 7일, 寧古塔副都統 烏勒興阿가 다음과 같은 咨文을 보내왔습니다.
琿春協領 訥穆錦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漁採를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탐문했더니, 奸民 陳雛爾巴什이 몰래 러시아 국경을 넘어가 棘心河에서 조선 아동 2명을 유괴한 후 변경 초소를 몰래 넘어 다른 城으로 도망갔다고 하였습니다. 소식을 모두 듣고 즉시 추적했지만 체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寧古塔(副都統衙門)으로 보고하였더니, 거기서 雲騎尉 富春을 특별히 파견해서 조사・체포하게 하였습니다. 파견 인원이 곧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지시를 받고 流民 陳雛爾巴什을 조사・체포하기 위해 파견되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陳雛爾巴什이 작년 11월경에 琿春을 통해 돌아왔을 때 새로 胡 氏를 아내로 맞아들여 東京城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胡 氏에게 물어보니, 그 남편 周振興陳雛爾巴什로 개명하고 조선 아동 2명을 데리고 省 소속의 喇巴溝로 몸을 숨겼다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寧古塔副都統이 받아서 본 吉林將軍에게 전해 왔습니다. 본 아문에서는 즉시 소속 각 지역에 지시공문을 보내, 모두 官役을 省 소속의 喇巴溝 일대로 파견하여 공개적으로 조사하고 은밀히 탐방하여, 奸民 周振興과 함께 유괴된 조선 아동을 모조리 수색・체포하여 省으로 보내 처벌하게 하되, 지체하거나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4월 2일 十路屯界事務를 관리하는 廂黃旗 소속 二品頂載花翎協領 海明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앞서 지시를 받고 곧이어 각 관할 관아로 하여금 조사・체포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3월 28일 廂黃旗 소속 界官 領催委官 富克錦이 곧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일찍이 이번 달 18일에 喇巴溝 지역의 帶路河에서 奸民 周振興이란 이름을 찾았는데, 직접 兵役을 데리고 가서 포위했지만 겨우 아동 2명만을 발견하였습니다. 周振興은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수시로 부근에서 수색했지만 여전히 종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집주인 周世金의 말을 들으니 周振興은 원래 작년 12월경 이곳에 와서 아동을 남겨두고 올해 정월쯤에 다시 東京城으로 장사하러 갔다고 합니다. 이에 저는 조선 아동 2명과 집주인 周世金 1명을 모두 잡아 省으로 압송하였습니다.
 
이상의 보고가 (海明에게) 도착하였습니다. 이를 받고 조선말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아동에게 상세히 심문하였습니다. 한 명은 朴事均으로 나이는 16세였는데, 조선에 흉년이 들어 러시아로 도망갔다가 기아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되자, 그 아비가 백성 周振興에게 양육하면서 목숨을 유지하게 해달라고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1명은 金姓이며 나이는 이제 7살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생각건대, 조선 아동 2명은 기아 때문에 목숨을 건지고자 도망 온 것이니 아무 까닭 없이 그 본국을 떠난 경우와 비할 바는 아닙니다. 다만 백성 周振興은 부당하게 외국 난민을 몰래 데리고 들어와 숨겼으니, 그를 체포해 압송하여 처벌하는 것 외에, 해당 界官이 보내온 조선 아동 2명은 자세히 심문한 상황에 따라 진술서 한 장을 작성하고, 집주인 백성 周世金과 함께 처리방안을 검토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상의 보고를 받았으므로 (寧古塔副都統은) 잡아들인 조선 아동 2명은 모두 실제로 조선의 흉년 때문에 기아에 쫓겨 살길을 찾으려고 한 것이고,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다른 상황은 없는 것이 확실하므로, 시세를 고려하여 驛路를 통해 조선으로 송환함으로써 懷柔해주는 인자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소속에게 지시하여 서둘러 아동을 데리고 온 奸民 周振興을 체포토록 하여 잡아들이는 날에 다시 사안을 완결 짓는 외에, 심문 결과 (사안과) 무관한 집주인 周世金은 보증인을 세운 후 석방시키고자 합니다.
이상과 같은 보고를 받고 (吉林將軍은) 雲騎尉 永安을 파견하여 병사 1명을 데리고 4월 5일에 출발하여 역로를 거쳐 조선의 아동 朴事均 등 2명을 額穆赫索羅 佐領에게 넘겨주고, 다시 관병을 파견하여 寧古塔副都統 아문으로 보내 조선인들을 확인하고 받아들이게 한 다음, 별도로 관병을 파견하여 琿春協領 衙門으로 넘기게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해당 協領이 공문을 갖추어 조선 慶源府의 관원에게 접수하도록 하고, 아울러 西路驛站 監督에게 지시공문을 명령에 따라 즉시 東路各站에게 전달하여, 각기 수레 1량을 제공하도록 하고, 조선 아동 2명이 하루에 필요한 음식도 역참에서 반드시 날짜에 따라 제공하여 빠뜨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지시공문을 보낸 다음 이번 6월 21일, 寧古塔都統 烏勒興阿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4월 20일에 額穆赫索羅 佐領이 五品藍翎 開凌阿를 파견하여 병사를 데리고 조선의 아동 朴事均 등 2명을 보내왔습니다.
본 아문에서는 마땅히 花翎 雲騎尉 金貴를 파견하여 병사 富祿海山 등을 이끌고 4월 25일에 조선 아동을 寧古塔을 경유하여 琿春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해당 조선 아동이 날마다 필요로 하는 음식 및 마필을 沿途의 각 초소에서 지시에 따라 적절하게 제공하되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지시를 보낸 후 6월 1일, 琿春協領 訥穆錦이 다음과 같은 보고를 올렸습니다.
5월 4일 寧古塔에서 보낸 雲騎尉 金貴가 병사를 데리고 조선 아동 朴事均, 金姓 등을 보내왔습니다. 이곳에서 이번 달 3일에 査界官 雲騎尉 成貴南阿拉屯盤에서 조선 부인 김 씨 1명을 잡았다고 보고했는데, 신문하니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지금 나이는 23살이며 慶興府 백성 朴希京의 처, 아들이 7세입니다. 작년 9월 경, 기아 때문에 살아갈 수 없어 남편과 함께 살길을 찾고자 러시아棘心河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남편은 병으로 죽고 어린 아이는 러시아인에게 빼앗겼습니다. 어린 여자가 혼자 의지할 곳 없이 떠돌다가 이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아동 朴事均, 金姓, 金 氏 등 3명을 모두 함께 雲騎尉 成貴에게 보내 압송시켰습니다. 그런데 출발할 즈음에 朴事均 등이 간절히 말하길, “지금 본국으로 송환되면 반드시 법률에 따라 처형되어 梟示될 것입니다”라면서 통곡하고 일어서지 않으니, 저는 어쩔 수 없어 照會를 작성하여 조선 慶源府 관원에게 사람을 파견하여 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하였습니다. 아울러 大國 상사의 懷柔한 뜻을 본받아 경원부의 관원은 마땅히 난민의 고충을 헤아려 본업에 安歸할 수 있도록 하되, 법대로 처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照會를 보낸 후 이어서 5월 12일, 경원부 지방관이 右兵房官 蔡承黙 등 4명을 우리 관서로 보냈고 답장공문 1건을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朴事均, 金姓, 金 氏 등 3명을 그들에게 넘겨, 5월 13일에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慶源府 官員이 보낸 답장공문 한 통을 첨부하여 보고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寧古塔副都統 烏勒興阿가 咨文으로 보고해 왔습니다. 해당 副都統이 보낸 조선 慶源府 관원의 답장공문 1건을 본 아문에 보관하는 것 외에, 마땅히 그것을 초록하여 첨부함과 동시에, 체포한 조선의 아동 金 氏 등 3명을 이미 조선의 慶源府 관원에게 넘겨 데리고 돌아가게 한 경과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여 총리아문에 올리니, 삼가 자세히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별지: 조선 경원부의 답장공문(朝鮮慶源府回文). 아동 김 씨 등 3명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申謝送回該國幼童金氏等三名).
 

(1) 첨부문서 초록

慶源都護府衙門에서 相考합니다.
귀 아문의 照會를 받았습니다. 본래 법의는 엄중하며 邊疆은 淸明해야 하니, 비록 띠줄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감히 멋대로 왕래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간혹 잠시 동안 범월을 한 경우라도 기필코 찾아내 효수한 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였고, 또한 防守를 설치하여 밤낮으로 감시하며 지켰습니다. 근년 이래 못된 폐단이 점점 늘어나 본국의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틈을 타서 몰래 귀 지역을 넘어가는 경우도 역시 있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 棘心河에서는 많게는 천여 명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법의 기강을 헤아려 보면 너무 놀랍고 떨리는데, 이들 도망인을 송환하는 일로 작년 겨울에 大國의 咨文을 받았었습니다. 이에 小國은 단지 엎드려 송환해 오는 날을 기다리며 매우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두렵고 황송하였습니다. 지금 이들 남녀 3인은 犯越하여 몰래 숨어 있다가 大國의 장군께서 조사하여 잡아들인 사람들인데, 아동임을 고려하여 음식과 수레까지 지급해 돌려보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욱 감격스럽고 황송합니다. 이들에게 자세히 물어본 후에 본부에 거주했던 자는 (본부에) 정착하게 하고 가령 혹시 다른 마을에 거주했던 자라면 즉시 문서를 해당 읍으로 보내 그곳에서 (이들이) 각기 정착할 지역으로 호송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귀 지역으로 근래 도망가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울러 엄히 조사해서 송환해주심으로써 疆界지역을 분명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응당 공문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색인어
이름
富明阿, 烏勒興阿, 訥穆錦, 陳雛爾巴什, 富春, 陳雛爾巴什, 陳雛爾巴什, 周振興, 陳雛爾巴什, 周振興, 海明, 富克錦, 周振興, 周振興, 周世金, 周振興, 周世金, 海明, 朴事均, 周振興, 周振興, 周世金, 周振興, 周世金, 永安, 朴事均, 烏勒興阿, 開凌阿, 朴事均, 金貴, 富祿海山, 訥穆錦, 金貴, 朴事均, 成貴, 朴希京, 朴事均, 成貴, 朴事均, 蔡承黙, 朴事均, 烏勒興阿
지명
러시아, 棘心河, 寧古塔, 琿春, 東京城, 喇巴溝, 喇巴溝, 喇巴溝, 帶路河, 東京城, 조선, 러시아, 조선, 조선, 조선, 조선, 慶源府, 조선, 寧古塔, 琿春, 南阿拉屯盤, 러시아, 棘心河, 조선, 러시아, 棘心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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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된 조선 아동(兒童)을 찾아서 조선국 관원에게 넘겨주었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자료번호 : cj.k_0001_0020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