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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韓民)의 월경(越境) 벌목에 대해 관원들이 비호했는지를 조사한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韓民이 拐磨子溝에 월경하여 목재를 도벌한 일에 대해 穆克和兼密占 分站의 筆帖式 희춘 등을 심문하였는데, 결코 이를 알고 비호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韓民越界在拐磨子溝盜伐木植, 硏訊穆克和兼密占分站帖筆帖式喜春等並無包庇情事).

 
  • 발신자吉林將軍 長順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90년 3월 21일 (음) , 1890년 5월 9일
  • 문서번호1-1-2-06(1526, 2761b~2764b)
穆克和兼密占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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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穆克和兼密, 穆克德和兼密, 穆克德和兼密占 등 다양하게 나오는데 아마 筆寫의 착오인 것으로 보인다.



3월 21일 吉林將軍 長順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전에 받은 琿春 副都統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吉林將軍의 다음과 전보를 받았습니다.
朝鮮에 있는 袁世凱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다.

 
조선인이 월경하여 琿春에서 벌목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琿春副都統은 이미) 吉林朝鮮이 맞닿아 있는 大荒溝拐磨溝 두 곳에 가서 조사하게 했는데, 韓民이 그곳에서 벌목한 것이 사실이었고, 아울러 관원을 파견해 벌목한 범인을 혼춘으로 압송하여 심문하였습니다.
 

이상의 두 가지 보고를 받았으므로 본 將軍衙門에서는 사실에 근거해 각기 咨文을 나누어 보내고, 아울러 琿春副都統에게 다시 역참관원을 소환하여 확실한 사정을 심문하고, 진술서를 받아 咨文으로 보고함으로써 다시 검토할 수 있게 하라고, 각기 咨文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琿春副都統의 다음과 같은 답장 咨文을 받았습니다.
지시에 따라 筆帖式 喜春과 署領催 高明俊 등을 다시 엄정히 심문하였는데, 喜春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저는) 穆克和密占 分站(역참분소)의 문서관리인(筆帖式)이며, 琿春에 거주하는 廂黃旗人입니다. 담당하는 역참(站)은 원래 穆克德和를 正站으로 하고, 겸하여 密站 분참을 관리합니다. 공문 전달 및 요역(差徭)에의 대응 등 모든 중요한 업무는 모두 正站에 속하고, 分站에서는 공문을 접수하여 전달하는 것만을 담당하며 다른 일은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자리에 임명된 이후 正站에 머무르며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며 조금이라도 일을 그르치는 잘못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分站의 사무는 보다 쉬운 편이라 領催로 임명된 사람이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琿春副都統衙門의) 左司에서 저희 驛站에 보내는 지시공문 한 통을 받고, 署領催 高明俊은 기한이 촉박하기 때문에 만일 正站으로 보내면 왕복하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일을 그르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공문을 열어보았더니 韓民의 盜伐에 관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관계된 바가 매우 중요하고, 또 木場과 正站과의 거리는 250여 리라 조사・처리하기가 불편하다고 판단하고, 가까이에 있는 자신이 즉시 지시공문에 나오는 拐磨子溝 상류 및 大荒溝 두 곳으로 가서 조사해 보니, 拐磨子溝 상류에 韓民 10명이 소나무 311 그루를 벌목하여 河岸에 쌓아 놓았는데, 아마 물이 불어나면 하류로 운반할 작정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그 나무들은 최근에 벌목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당시 중국어가 조금 통하는 韓民을 심문해보니, 이 나무들은 올해 1・2월 사이에 벌목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역참으로 돌아와 한편으로는 (琿春副都統衙門의 左司에) 보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正站에 알렸습니다. 저는 이미 지시에 따라 조사하여 보고했기 때문에 일을 완료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해당 領催의 조사보고가 모호한 부분이 있어, 그는 다시 지시를 받고 전처럼 서둘러 가서 조사하여 돌아와 보고를 하였으며, 이런 상황을 저는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지시공문을 받고 소환되어 조사심문을 받게 되었으니 황송함을 가눌 수 없습니다. 해당 領催는 재주는 졸렬하고 학문이 천박해 韓人이 말한 1・2월 사이에 벌목했다는 내용을 결국 분명하게 서술하여 명백하게 보고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 때문에 저희들이 평소 잘 알고 지내면서 분명하게 도벌한 사정을 알고도 숨기고 보고하지 않는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오해를 받게 만들었으니, 이는 실로 스스로 허물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拐磨子溝 상류 등은 分站과의 거리가 190여 리 정도이며, 원래 해당 역참의 관할지역도 아닙니다. 또한 그 곳은 깊은 산 속의 밀림이라 종래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韓民이 몰래 그곳에 가서 도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당 산마루는 애초에 역참 소속이 아니고 나무 또한 순찰해서 금지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아무도 살면서 왕래하는 일이 없기에 그쪽 소식을 전하는 일도 없어, 만일 지시를 받고 그곳에 깊이 들어가 철저하게 수색하지 않았다면 끝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심문을 받았는데, 아뢴 바는 모두 사실입니다.
高明俊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제 나이는 31세이며, 吉林蘇瓦延站의 站丁(역참의 일꾼)이며, 西路關防處입에서 外卽達差使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전에 穆克德和密占分站의 領催 周俊祖가 어머니의 病故로 휴가를 청하고 귀가하여 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3월 1일에 關防處에서 저를 임시로 대신하도록 하였으므로, 마침내 琿春에 와서 예전처럼 密占 分站에 주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월 30일에 이르러 갑자기 左司로부터 지시공문 한 통을 받았는데, 봉투 바깥에 적힌 시행기한이 너무 촉박한 것으로 되어 있어 마침내 봉투를 열어 보니, 韓民이 국경을 넘어와 몰래 벌목한다는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공문에서는 벌목한 장소를 명확히 지적하고 있었으므로 즉시 서둘러 가서 조사한 후 보고를 올렸습니다. 저는 이 일은 관계된 바가 매우 중요하고 기한이 또한 매우 촉박한 터라, 만일 正站에 알리면 왕복하는 데 반드시 하루 정도가 소요되어 도리어 일을 그르치고, 正站과 分站 모두에게 무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正站은 木場과 250여 리 거리에 있지만 蜜占分站과는 190여 리 떨어져 있어 좀 더 가까웠습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밤을 도와 말을 달려 공문에서 지적한 拐磨子大荒溝로 가서 조사하였습니다. 拐磨子溝에 도착해 보니 과연 韓人 10명이 움막을 짓고 거주하고 있었고, 몰래 벌목한 나무가 모두 310그루 있었습니다. 이에 그곳 백성들에게 언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자 그 중에 조금 중국어를 아는 韓民이 말하길, “저희들은 1・2월 사이에 와서 벌목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곧바로 기한에 맞추어 역참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左司로 올려 보내는 한편 바로 正站에 편지로 알렸습니다.
뜻밖에도 이후 다시 지시공문을 받아 보니 조사 보고서가 모호한 점이 있다고 하여 황송하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결국 전처럼 다시 해당 지역으로 가서 분명하게 조사하고 돌아와 보고를 마치고, 아울러 正站에도 알렸습니다.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지시공문을 받고 소환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1・2월 사이라는 말은 실로 韓人들에게 물어서 들은 것이며, 결코 제가 그런 실정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재주는 졸렬하고 학문은 천박하기 때문에 글로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마치 저희가 분명하게 사정을 알고서도 보고하지 않은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만일 지시공문에서 그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 조사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저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재심문을 받지만, 저희들은 결코 사정을 알고 보고를 숨긴 적이 없습니다. 拐磨子溝 등의 산마루 역시 실제로 저희 역참의 관할 경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상의 진술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상과 같이 각기 진술하였습니다. (琿春副都統이) 누차 심문을 하였지만, 각각의 진술이 이전과 같았고, 전혀 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생각해보건대, 전보로 지시하신 대로 인원을 사방으로 파견하여 (범인을) 잡아들이도록 하였는데, 곧 돌아와서 “拐磨子溝 상류 및 大荒溝 일대에서 韓民들이 몰래 벌목한 일이 있다는 소문이 도니”라고 보고하였습니다. 해당 지역은 密占站과 비교적 가까웠기에, 결국 左司를 통해 지시하여 해당 역참의 筆帖式 喜春 등으로 하여금 먼저 그 지역으로 가서 조사・확인한 다음 보고토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해당 筆帖式은 여전히 穆克德和의 正站에 머물고 있었기에, 署領催 高明俊은 지시를 받고 보니 기한은 촉박하고 사안은 긴급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拐磨子溝密占站과의 거리가 190리 정도로, 正站과 비교하여 60리 정도 가까웠으며, 만일 正站에 알리면 늦어서 급하게 처리할 수 없을까 우려하였습니다. 때문에 해당 領催는 즉시 곧바로 그곳으로 서둘러 가서 깊숙이 들어가 韓人들이 몰래 벌목한 것을 확인하고는 돌아와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보고한 내용이 모호한 부분이 있어 다시 재조사를 지시하였더니, 조사를 하여 보고를 보내 왔습니다.
그래서 (琿春副都統은 吉林將軍에게) 즉시 전보로 알렸는데, 뒤이어 해당 筆帖式 喜春 등의 임무를 해제하고 소환하여 심문하라는 지시를 (吉林將軍의) 咨文을 통해 받았습니다. 그에 따라 누차 심문을 하였지만, “이번에 韓民이 벌목한 일은 종래 알지 못하던 일이며, 실제로 지시공문을 받고서야 조사하여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산마루 또한 저희 역참 소속이 아닙니다. 1・2월 사이라는 말은 진실로 그곳의 韓民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라고 굳게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兪保汝 등의 진술과 대조해보아도 모두 잘 들어맞았습니다. 결국 해당 筆帖式 등이 애당초 사정을 알고서도 보고를 은닉한 일이 없다는 판단이 아마도 이치에 맞는 것 같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즉시 그 진술서를 간략히 서술하고 문서를 갖춰, 咨文으로 검토한 다음 결정해주실 것을 咨文으로 (吉林將軍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곧이어 “상황이 종종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다시 심문한 후 확실한 사정을 알아낸 다음 보고하여 검토를 받으라”고 지시하는 (吉林將軍의) 咨文을 받았습니다. 이 지시에 따라 다시 엄밀히 조사하고 누차 심문하였는데, 각자의 진술이 여전히 이전과 동일하였고, 최초의 심문에서 이야기한 바와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韓民 범인 兪保汝 등의 진술에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비호해준 일은 전혀 없다고 진술한 바와도 역시 서로 들어맞습니다. 따라서 해당 韓民 犯人은 애당초 몰래 월경하여 벌목했으며, 해당 筆帖式은 평소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은 깊은 산중으로 평소 호랑이나 늑대가 살고 있기에 종래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고, 또한 행인들이 그 소식을 전한 적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해당 범인이 멋대로 벌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金華縣에서 일꾼을 고용하며 조금이라도 소문을 내지 않았다면 아마도 끝내 조사하여 사로잡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해당 筆帖式 등이 이전에 비호해준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해당 산마루는 해당 역참이 관할하는 지역이 아니며, 종래 아무도 거기에 산 적이 없기에 경계를 관할하는 관원 또한 순찰도 하지 않고, 평소에 가보지도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지금 모두 네 차례 재조사를 했는데, 해당 筆帖式에게는 사정을 알고 보고를 하지 않은 부정의 상황이 없으며, 또한 범인 兪保汝 등은 모두 “몰래 월경하여 벌목하였으며, 관원이 비호해준 일이 실제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건을 상세하게 검토해 보건대, 해당 筆帖式 喜春 등은 충분히 정상을 참작할 만하니, 역참으로 돌아가 임무에 복귀할지 아닌지, 그리고 이전에 대신 서리를 맡도록 파견한 額委筆帖式 永廉에게 (琿春副都統)衙門으로 복귀하도록 지시할 것인지, 그리고 지시공문에 따라 다시 심문하여 사안을 종결지으려는 연유가 타당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응당 將軍衙門에 咨文으로 보고하여 결정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琿春副都統의 보고를 받은 吉林將軍이) 살펴보건대, 筆帖式 등을 심문한 결과 진실로 범인을 비호한 폐단이 없고, 벌목을 한 산마루 역시 해당 역참의 관할 지역이 아니므로 역참으로 돌아가 이전처럼 직무를 수행하도록 신속히 지시해야 할 것입니다. 琿春副都統에게 답장 咨文을 보내 이에 따라 筆帖式 喜春 등이 이전처럼 역참에 돌아가 일을 맡도록 지시를 전달하게 하는 것 외에, 마땅히 귀 아문으로 咨文을 올려 보내니 삼가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름
長順 , 袁世凱 , 喜春 , 高明俊 , 喜春 , 高明俊 , 高明俊 , 周俊祖 , 喜春 , 高明俊 , 喜春 , 兪保汝 , 兪保汝 , 兪保汝 , 喜春 , 永廉 , 喜春
지명
朝鮮 , 琿春 , 吉林 , 朝鮮 , 大荒溝 , 拐磨溝 , 혼춘 , 穆克和密占 , 琿春 , 穆克德和 , 密站 , 拐磨子溝 , 大荒溝 , 拐磨子溝 , 拐磨子溝 , 吉林 , 蘇瓦延站 , 穆克德和 , 密占 , 琿春 , 密占 , 蜜占 , 拐磨子 , 大荒溝 , 拐磨子溝 , 拐磨子溝 , 拐磨子溝 , 大荒溝 , 密占站 , 穆克德和 , 拐磨子溝 , 密占站 , 金華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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