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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조선에게 조속히 서양의 각국과 조약 및 통상할 것을 권유한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조선의 委員이 천진에 와서 지시를 요청한 것에 대해 상황을 헤아려 답변하고 기회를 이용하여 권고한 일을 알린 奏摺을 咨文으로 알리고 上奏합니다(咨送具奏朝鮮委員來津請示, 斟酌答覆, 相機開導摺).
  • 발신자
    李鴻章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1년 2월 3일 (음)(光緖七年二月三日) , 1881년 3월 2일 (光緖七年二月三日)
  • 문서번호
    2-1-1-18 (354, 480b-482b)
二月初三日, 北洋通商大臣李鴻章文稱:
 
竊照朝鮮委員來津請示斟酌答覆相機開導一案, 現經本大臣於二月初二日, 恭摺由驛具奏, 並將酌覆朝鮮詢問各條, 先已函達貴衙門查核在案, 相應鈔錄摺稿咨送. 爲此合咨貴衙門, 謹請查核施行.
별지: 北洋大臣李鴻章의 奏摺(北洋大臣李鴻章奏摺)
 
1. 照錄「摺稿」
奏爲朝鮮委員來津請示斟酌答覆相機開導, 恭摺仰祈聖鑒事. 竊上年九月間, 朝鮮賫奏官卞元圭來津, 奉旨令臣妥籌該國學習製造、練兵各事, 業經詳晰覆陳在案. 嗣接出使日本大臣何如璋函稱:“朝鮮外交一事, 近日廷議漸知變計.” 又准總理衙門函商“隨時設法維持調護, 並奏請嗣后遇有關係洋務緊要之件, 由臣與該國通遞文函, 相機開導” 等因. 奉旨:
 依議.
欽此. 欽遵密行知照前來. 適有朝鮮國王委員李容肅隨今屆貢使來京, 於正月二十日赴津稟謁, 謂:“專爲奉辦武備學習事,” 並賫呈該國『請示節畧』一本. 內載有領議政李最應奏章, 頗悔去年六月堅拒美國來使爲非計. 末則歸重於“及今之務莫如懷遠人而安社稷”等語. 又問他日不得已與各國相交, 先后早晚之策. 又索中國與各國修好立約通商章程、稅則帶回援照. 是何如璋所稱:“朝鮮國王與執政大臣決意外交而未敢遽發,” 固已確有明證.
臣因其『節畧』諮商事件繁瑣, 先令津海關道鄭藻如等傳詢一切, 擬議大概. 旋准李容肅進見, 與之筆談良久. 該國軍額極虛, 餉力極絀, 誠慮無以自立. 而所據形勢實爲我東三省屏蔽, 關係甚重. 現其君相雖幡然變計, 有聯絡外邦之意, 國人議論分歧, 尚難遽決, 自應乘機開誠曉諭, 冀可破其成見, 固我藩籬. 惟該國於外交情事生疏, 卽如與日本通商五年尚未設關收稅, 並不知稅額重輕. 設再與西國結約, 勢必被其欺蒙, 無益有損. 臣因其來牘有披露腹心, “願一一開誨碩畫”之語, 出於至誠, 遂令前在西洋學習交涉事宜之道員馬建忠鄭藻如等, 參酌目今時勢及東西洋通例, 代擬『朝鮮與各國通商章程底稿』, 豫爲取益防損之計, 交李容肅賫回, 俾該國遇事有所依據, 不至多受蒙蔽. 又聞該國君相已漸回悟, 惟原任太師李裕元等不無異議. 臣於光緒五年七月間曾遵密諭, 轉致李裕元, 詳切開導. 嗣接覆書, 尚未信從. 此次李裕元來書似仍有不欲遠交之意, 臣復函又加敦勸, 使不至從中作梗. 此后無論何國再派人往朝鮮議約, 當無堅拒之理. 但未便由中國強爲驅迫耳. 至其『節略』所詢各條內, 惟答復日本國書稱謂一節, 儻稍涉含混, 卽於屬邦體例有礙. 臣查西洋各國稱帝稱王, 本非一律, 要皆平等相交. 該國王久受我朝冊封, 其有報答日本及他國之書, 應令仍用封號. 國政雖由其自主, 庶不失中國屬邦之名. 除將朝鮮寄呈『節畧』及代擬『通商約章』, 李裕元來往函稿鈔送總理衙門查核外, 謹將酌覆朝鮮詢問各條, 照繕淸單, 恭呈禦覽, 是否有當, 理合恭摺, 由驛密陳, 伏乞皇太后、皇上聖鑒訓示. 謹奏.

색인어
이름
李鴻章, 卞元圭, 何如璋, 李容肅, 李最應, 何如璋, 李容肅, 馬建忠, 鄭藻如, 李容肅, 李裕元, 李裕元, 李裕元, 李裕元
지명
美國, 中國, 日本, 日本, 中國
서명
請示節畧, 節畧, 朝鮮與各國通商章程底稿, 節略, 節畧, 通商約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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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게 조속히 서양의 각국과 조약 및 통상할 것을 권유한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자료번호 : cj.d_0002_0010_0010_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