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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자료집

후주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오는 청나라 시위 일행을 접견함

  • 날짜
    1712년 4월 26일(음)(壬辰四月二十六日)
二十六日戊寅晴質明陪 御帖先發踰衝天嶺嶺路之險峻過於厚峙 函關昨年關西江邊之行日踰數三大嶺而其中碧潼新里最爲峻急意以爲嶺隘之難豈有過此者玆嶺之險視諸新里不可同日而語延遠之勢首尾凡五十里蜀道井陘之險未知與此何如也到松田站中火後又緣崖以行至十餘里有巖石屹立於江中圍可數十抱高可數百丈望若擎天之柱而巓上有三株栢子樹聶聶攢霄天豈敎攷工琢成而然耶可謂奇觀也又行數里許金浩然曁慶兒來迎告曰才逢洪通官二格與侍衛乘馬尙而上來爲言今方沂流上去重臣不必涉險來迎留待於所安處爲可云云使相曰旣以迎接爲名何憚涉險而自便乎促鞭而行到厚州地東臺把守前遙望彼船方撑沂上余因使相分付疾往江岸則二格見余來回舟登岸坐沙汀從容敍話余傳使道存問之語二格以感謝之意答之而乃言曰勅行於初六日離自盛京到近江分二路摠管率許多人馬從審山峪作行侍衛曁吾率從人二十名分乘馬尙舡十隻作水行十九日出頭道溝望見把守而問之則隱避不答一路把守到處皆然若其預爲分付則豈容如是極可駭然也余答曰預先分付不啻丁寧而只緣村氓之無識徒懷懼怕之致也聞來不堪慙愧使臣若知此擧則必將重治其罪也二格曰所爲雖甚可惡若被重罪則心甚矜惻不必告達可也余又問侍衛之行仍爲沂上耶二格曰沿江有十三道溝分路作行之後每夜則會宿于道溝矣自二十五日相失已至於八道溝而尙未會合勢將留此待候摠管之來以決去就也且曰行中騎卜人馬其已整待耶余曰常時勅行渡江則整待人馬於江邊例也而今則與上京勅使有異而上年旣有自騎自駄之規其何有預待之擧乎二格愕然大言曰咨文有照管之語牌文又以照尒國例遵行爲言者豈以銀金贈物之謂也不過指此等照管之事也余又曰早知如此則收聚他道驛馬亦非難事而卽今此道形勢絶域邊鄙人民勘小馬政甚疎雖欲猝辦萬無其道奈何奈何云則二格曰摠管於玉河館與冬至使臣面話時以皇旨中有到朝鮮地取用人馬而帶去馬匹盡爲還送之意再三言及于朴金兩堂不啻丁寧則今不爲整待云者是何言耶余曰勅行人馬待候亦非小可之事而況又皇旨中之語何等重大而若其丁寧言及則朴金兩堂何不告知於使行俾得 啓聞乎極可怪也二格曰然則長白山指路之人亦不預待耶余答曰金堂所傳使行狀 聞二件事也一則小通事數名派定事一則長白山看審時指路人預待事也而此外無他狀聞條件今日馬匹之言必至彼此狼狽之歸豈非悶慮乎二格曰凡事有可以周遮之道亦有不可彌縫之事君勿多言速往商議好樣爲之可也摠管來到之後君若以此爲言則必有不好之事矣拂袖上舡而去歸以馬匹不可不辦給之語告達於使相前則亦不依許居間當事者之悶慮可勝形言侍衛與二格止泊於東臺把守越邊設帳林木之間以爲留待摠管之計夕與都差使員洪原縣監李震相金浩然 金萬喜 李世萬等過江往候于侍衛而仍以使相之意將一口猪一石米鹽醬蔬菜等物以助行廚云則侍衛曰饋送粮饌良可感荷而摠管不在不可輒受云而却之二格曰凡係支供饋物摠管必不領受勿爲留念而午間所言騎卜馬匹十分愓念云余雖依前答之而豈非悶慮之甚者哉諸人還爲過來宿於江邊幕次是日行九十里

색인어
이름
金浩然, 二格, 二格, 二格, 二格, 二格, 二格, 二格, 二格, 二格, 二格, 李震相, 金浩然, 金萬喜, 李世萬, 二格
지명
衝天嶺, 厚峙, 函關, 關西, 碧潼, 新里, 新里, 松田站, 厚州, 盛京, 頭道溝, 三道溝, 八道溝, 朝鮮, 長白山, 長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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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오는 청나라 시위 일행을 접견함 자료번호 : bd.d_0001_0010_0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