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 부거리 일대 유적

부거리 전경
연대봉 봉수대 전경
청진 부거리 일대 유적 지도 보기   은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 일대의 발해 유적으로 2008년부터 발굴 조사가 되었다. 그 결과 성터 유적으로는 부거석성(평지성), 부거토성(산성), 독동토성(산성) 등과 고분군으로는 독동 고분군, 옥생동 고분군, 다래골 고분군, 합전 고분군, 토성 고분군, 연천골 고분군 등 그리고 봉수대 유적으로 연대봉 봉수대 등이 확인되었다. 부거리는 남으로는 청진시와 45km, 북으로는 나진과 50km 거리에 있고 동으로 바다와 8km 거리이다. 부거천에 의해 형성된 부거리 일대는 동서 2,000~3,000m의 폭을 가진 평지대를 이루면서 강물의 흐름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어 높은 산들과 산줄기들에 의해 에워싸여진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는 지형이다.

 

교통의 요충지이며 농업활동에 유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부거리 일대에는 발해 시기의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먼저 성터 유적으로 부거석성이 있다. 석축으로 조성된 부거석성은 평지성으로 형태는 반월성이다. 성문은 현재 서문만이 확인되며 구전에 의하면 4개의 문이 있었다고 하고, 성에는 배수구 시설의 존재가 확인된다.  석성 남쪽에는 장방형의 부거토성이 산성의 형태로 존재한다. 남북 길이 93m, 동서 너비 60m의 소규모 성이지만 벌판에 우뚝 솟은 형태로 주변에 대한 조망이 모두 가능하다. 이 성은 청진에서 회령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차단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부거리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km 떨어진 독동산성은 현재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성은 타원형의 석성과 장방형의 토성, 두 개의 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성터 유적과 아울러 주목되는 것은 봉수대 유적이다. 이 일대에 현재 11개의 봉수대 유적이 확인되나, 그 가운데 연대봉 봉수대는 부거석성의 동쪽 연대봉 정상에 있는 봉수대로 오롯이 보전되고 있다. 연대봉 봉수대는 차단 홈과 기단, 화독 시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화로시기의 봉수로 한 개의 봉수만 올렸던 것으로 파악된다. 독동 봉수대는 흙 봉분 위에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계단식으로 석축을 한 봉수이다. 중심에는 직경 1m의 불가마가 존재하고 있다.

 

부거리 유적에서 가장 많은 존재가 확인된 것이 고분이다. 먼저 다래골 고분군은 전부 지상으로 축조되어 지면에서 1.5m~2m 높이의 봉분을 갖고 있는 고분군이다. 총 50여 기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연차골 고분군은 부거리 소재지의 서남쪽에 있으며 제1지구에 16기, 제2지구에서 10여 기가 확인되었다. 합전 고분군은 모두 51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횡혈식 석실봉토분과 수혈식 석관묘, 석곽묘 등의 형태로 축조되었다. 옥생동 고분군은 부거리 소재지의 동쪽 골짜기에 위치하며 총 15기가 확인되었다. 토성 고분군은 부거토성 서남쪽 언덕에 있으며 총 20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독동 고분군은 부거리 고분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으며 독동성 서쪽에 100여 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부거리 일대 유적은 평지성-산성-봉수대라는 발해 당시 완벽한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는 유적이다. 이는 영안 상경성이나 화룡 서고성, 훈춘 팔련성 등 일련의 발해 성곽 유적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거석성 일대의 고분군들도 발해 무덤의 전형적 형식인 석실봉토분, 석곽봉토분, 석관봉토분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 유물도 타질이나, 제작방법, 기물의 형태 등이 여타 발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흡사하여 발해 유적임을 뚜렷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평지석성의 존재와 지상 봉토분의 구축, 목관의 미사용 등 발해만의 독특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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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렇게 중국은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고구려 성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부로…
남동생 :
누나, 고구려는 우리 역사잖아. 중국이 왜 저러는 거야?
누나 :
음, 그건 말이지… 함께 찾아보자.
누나 :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 3성인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의 역사 지리, 민족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업이래.
남동생 :
무슨 근거로 그러는데?
누나 :
중국은 현재 중국 땅에 있던 모든 나라의 역사를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야.
남동생 :
음… 그럼 옛날 고구려는 어디에 있었는데?
누나 :
지도로 봐볼까?
누나 :
고구려보다 오래된 고조선부터 보자.
남동생 :
와아! 엄청 넓네!
누나 :
고구려는 여기…
남동생 :
전부 한반도 북쪽과 만주 쪽에 있었네?
누나 :
그래. 아까 얘기한 대로 지금은 중국 땅인 곳도 있어.
남동생 :
흠! 이 나라의 땅이었던 곳을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 이거지.
누나 :
그래.
남동생 :
음, 그러면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하려면 어떻게 중국과 싸워야 해?
누나 :
싸우긴. 우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반론을 제시하면 돼.
남동생 :
역사적 사실이라면… 어떤 거?
누나 :
흐음!
남동생 :
어떻게 다른데?
누나 :
고구려 사람들은 성을 쌓을 때 대부분 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긴 쐐기돌을 많이 사용해서… 이런 모습이 되는데,
남동생 :
그렇구나. 고구려성이 훨씬 강하네.
누나 :
그렇지!
누나 :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영락’이라는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내용과 건국신화가 새겨져 있지.
남동생 :
아하!
누나 :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 옛날 고조선부터 이어온 역사를 계승하고 있고, 신라에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조선 등이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계승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분명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란 말이지
남동생 :
휴! 증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나 :
역사는 언제나 밝혀지게 되어 있어.
남동생 :
추리 소설의 범인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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