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본과의 직접적인 문화교류

마상재를 구경하고 있는 일본 무사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문화사』 29권)
마상재를 구경하고 있는 일본 무사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문화사』 29권)
‘서도(書道)’로 문화교류를 하였던 사람들로 제술관·사자관·서기 등이 있다. 제술관은 문장이 뛰어난 사람 가운데서 선발하였다. 본래 제술관은 통신사의 닛코(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이 있음) 참배 때 축문을 읽을 사람이 필요하여 선발했는데 이후에는 문장을 써서 대화하는 필담과 창을 이용하여 서로 시를 교환하는 창화를 담당하였다.

 

또 일본의 요청으로 특별히 파견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의원·영원·마상재인으로 지금의 의사·화가·서커스의 기예단원이라 할 수 있다. 영원은 예조의 도화서에 소속된 화가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에 처음 파견되었다. 일본인들은 이들에게 그림을 많이 요청하였는데 이는 조선과 일본의 미술 교류에 크게 기여하였다. 달마도로 유명한 화가 김명국은 그림을 요청하는 일본인의 수가 너무 많아 팔이 아파 울려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마상재는 본래 임진왜란 때 시작된 것으로 기병들이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무예에서 기초하였다. 인조 때 일본의 사절로부터 마상재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어 시작되었고, 그 이후 통신사가 일본에 갈 때마다 마상재인 2명을 보내 마상재의 기술을 일본에 선보였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한 인물도 있었다. 이익(1681-1763)은 18세기 전반에 활약한 재야 지식인이다. 18세기는 조선의 고유한 문화가 꽃피는 시기였으며, 여기에 새로운 사상적 흐름으로 실학이 대두되었다. 이익은 50여 년이 넘게 독서와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대략 44권 95책이나 되는 저서를 남겼다. 그 중 『성호사설』은 일본에 대한 기록으로 당시로서는 가장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이익의 일본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읽을 수 있는데, 역사와 시세를 열린 눈으로 보며 일본의 역사, 지리, 정치, 문화, 풍속, 군사, 기술, 왜란에 대한 반성과 비판, 통신사 외교에 대한 반성과 비판 및 대책 등을 100여 항목에 걸쳐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이익은 일본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각별하였으며, 당시 대일본 외교를 맡은 인사들이 일본에 대하여 무지하고 편향되었음을 비판하였다. 당시 조선이 일본을 유학 후진국으로 보고 별로 배울 것 없는 나라로 여겼던 것은 사행록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익은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일본의 현실을 직시하며 일본은 서적 간행이 잘 되어 있고 학문이 정명하고 의로운 선비가 있음에 주목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예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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