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교류
    고려는 일본과 공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지만 890년(목종 2) 일본인 20호(戶)의 내투(來投)가 있어 이들을 이천군(利川郡)에 거주하게 한 일이 있었다. 이후 1019년 여진(女眞)의 해적선이 납치한 일본인 259명을 고려에서 일본으로 송환하는 등 관계가 호전되었다. 1073년(문종 27) 처음으로 일본 상선이 일본인 42명을 싣고 고려에 들어와 칼, 경갑(鏡匣) 등을 진상하고 1074년, 1075년, 1079년, 1080년, 1082년에도 일본인이 내조하였다. 선종 때에는 일본 상인들은 나전(螺田), 안장, 서안(書案), 수은(水銀), 감귤, 진주 등을 들여왔는데, 그들과의 무역은 헌상(獻上), 회사(回賜)의 형식으로 하였다. 이에 반해 고려 상인이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활동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의 국교 재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였으며 2차에 걸친 일본 원정으로 인해 고려와 일본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고려시대에는 일본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문화재 중 불화 등 불교 미술품의 상당수가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 불화들이 언제부터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일본에 건너간 것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이진희·강재언, 『한일교류사-새로운 이웃나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학고재.

     

    대표적인 불화로서 일본 가가미 진자(鏡神社)에 소장되어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고려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의 기록은 고려 26대 충선왕
    2년(1310), 당시 왕의 총애를 받던 왕비 김씨의 발원에 의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중요한 불화가 어떤 연유로 고국을 떠나 일본 신사에 머물게 되었는지는 상기 언급한 것같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가가미 진자가 위치한 일본 큐슈 사가현 일대에는 수월관음도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범종, 고려 법경 등 많은 고려시대 불교 문화재 등을 소장하고 있고 고려 말기에 활동하였던 왜구 집단의 기록을 보아 왜구에 의해 고려 문화재가 일본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불교 미술품뿐만 아니라 큐슈와 쓰시마 사이 이키 안코쿠사(安國寺)에는 고려판 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다. 불교국가임을 자처하던 당시 일본은 문화선진국이었던 고려를 통해 교리의 집대성인 대장경을 구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이 정식으로 대장경을 요구한 시기는 기록상으로 고려 말기인 우왕
    14년(1388)이었다. 이후 일본은 고려가 멸망한 후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대장경판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 청원을 하였는데, 이러한 대장경 청원 기록은 16세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안코쿠사 대장경은 명문으로 보아 13세기 이전의 것으로 보여지고 있으나 안코쿠사로부터의 청원 기록과 대장경 기증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이 역시도 수월관음도처럼 왜구에 의해 약탈·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숭상한 국가였기에 우수한 불교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그 숫자는 적지만 불교 유산의 우수성은 같은 불교를 숭상하는 일본에서는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이진희·강재언, 『한일교류사-새로운 이웃나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학고재.가가미신사(鏡神社) 양류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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