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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공원고성(勞動公園古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 문서번호S000896
  • 위치(출토지)遼寧省 撫順市
  • 지역무순(撫順市)
  • 유형성곽>평지성
  • 형태사항남은 둘레 872m, 면적 62,000㎡│남벽 남은 길이 146m, 북벽 남은 길이 150m, 동벽 남은 길이 285m, 서벽 남은 길이 291m 37점 
 

출토지

 

요녕성 무순시(遼寧省 撫順市)

 

연대

 

한(漢)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35도변삼삼, 호전관, 재등무일
(渡辺三三, 戸田寛, 齋藤武一)
성지를 발견하고, 제3현토군 군치(第3玄菟郡 郡治)로 비정하였음.
1937 1935년에 誉ヶ丘에 온천장인 호박천(琥珀泉)이 신축될 때, 흙 중에서 다량의 기와편과 토기편과 더불어 전축(塼築)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공사가 계속 진척되면서 매몰되었기 때문에 호박천 옆에서 간단한 발굴을 시행하였음.
1938지내굉
(池內宏)
성이 위치한 구릉이 공원 건축공사 때문에 원형을 잃어버려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음. 규모가 큰 한대(漢代) 토성지라고 보고 제3현토군 군치(郡治)로 비정함.
1960 핸대(漢代) 성의 기초가 발견됨.
1977 6개 지구를 발굴하면서 유물들을 출토함.
1978무순시박물관
(撫順市博物館)
봄, 고성 내에 5×5m의 트렌치 6개를 팠음.
1981무순시박물관 고고대
(抚顺市博物馆考古队)
봄, 무순시 노동공원 안 서북모서리에 스케이트장을 만들 때 고대유물이 발견됨. 무순시박물관이 조사할 때, 배면은 승문·정격자문·사정격자문이고 내면은 포문이 펼쳐진 홍색 암키와, 수키와 등이 발견되었는데, 고구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함.
1985왕면후, 손력
(王綿厚, 孫力)
기초공사현장에서 흙을 다진 한대(漢代) 성 기단을 발견하였는데 규모가 비교적 작았음. 성지는 현대건물 아래에 있었음.

 

구조특징

 

현재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노동공원고성(勞動公園古城)이라고 부르고 있음. 하지만 노동공원은 과거 ‘霊ケ丘’에 한정되어 있었고, 토성이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誉ヶ丘’에서도 확인되므로 영안대고성(永安台古城)이라고 부르자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함(田中俊明,1994).
성지는 중심 시가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성벽은 대부분 파괴되었음. 성내 가운데 부분은 도로가 동서로 통과하면서 성벽이 파괴되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전체적인 윤곽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음.
성은 높은 언덕에 위치하며, 성의 세 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장자리는 평탄하고 개활함. 남북은 높고 중간은 평평하고 완만함. 평면은 장방형이고, 방향은 남북향임.
한대(漢代) 문화층의 두께는 약 40㎝ 정도임.
성벽은 토축으로, 흙을 쌓아 올린 다음 판축을 조금 가하는 형태로 구축함. 성벽의 기단부는 적지 않은 구간이 절단되었는데, 암반 위에 기단부를 축조하였음. 성벽 기단부의 너비는 7m 정도로 일정하지 않음.
1950년대 이래 발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한위(漢魏)대 유물들이 대거 출토됨. 출토된 한대(漢代) 유물은 황화유역의 후한(後漢)대 성지에서 나온 유물과 같음. 산성이 위치한 구릉지대는 예부터 적색마연토기, 채문토기 등 토기편과 기와편의 산포지로 알려져 있음(戶田寬, 1937). 1935년에는 구릉에 온천장인 호박천(琥珀泉)이 신축될 때, 흙 중에서 다량의 와편과 토기편이 출토됨.
후한대의 토기는 대부분 니질의 회색으로, 소성온도가 높고 물레로 제작함. 기형으로는 호, 단지, 바리, 굽접시 동이, 병, 솥, 시루(甑) 등이 있음.
한대의 ‘千秋萬歲’명 와당과 운문와당, 회색 승문 암키와·수키와 등이 출토됨(王綿厚, 2002). 정면이 승문·정격자문·능격문이고, 내면은 포문이 펼쳐진 홍색 암키와, 수키와 등이 발견되었는데 고구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함(肖景全·鄭辰, 2007).
호박천(琥珀泉) 근처에서 후한대 오수전(五銖錢)이 출토됨. 무순시 노동공원고성 공원사무소와 호박천 사이의 숲에서 적색의 소토덩어리(燒土塊), 목탄편 등이 발견되었음.

 

역사적 의미

 

공원 내에서 고구려 시기의 붉은색 승문·격자문 기와가 대량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가 한대(漢代)의 성지를 중축하거나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짐. 고구려의 남협도(南陜道) 상에 있는 고성으로 보기도 함(徐家國, 1996).
池內宏, 八木奘三郞, 李文信, 徐家國(1996) 등은 한대 제3현토군 군치(郡治)로 비정함.
여호규(1999)의 견해는 다음과 같음. 2~3세기경 제3현토군은 고구려·부여 등을 견제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음. 제3현토군 치소는 혼하 연안 가운데 고구려나 부여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지역에 구축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제3현토군의 치소로 혼하 연안 평원의 동북단으로서 동부 산간지대와 접경지대인 노동공원고성이 가장 유력함. 그런데 고구려는 4세기 초 혼하 일대를 장악한 다음 노동공원고성 맞은편에 신성(고이산성)을 구축하고 요동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음. 이와 동시에 302년, 315년에 제3현토군을 공격하는 등 요동지역 패권을 놓고 선비 모용부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음. 그런데 전연(前燕)에서 현토태수를 역임한 인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4세기 전반 전연은 현토군을 계속 설치하였다고 추정됨. 그러므로 고구려가 혼하 중류 일대를 장악한 이후에도 노동공원고성에 계속 제3현토군 치소를 두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음. 제3현토군 치소가 본래 노동공원고성이었다면, 신성 축조 이후에는 서쪽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음. 제3현토군 치소를 옮긴 시기를 2세기 말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원전 107년 현토군이 설치된 이래 고구려의 성장에 따라 그 치소가 끊임없이 서쪽으로 쫓겨난 만큼 제3현토군 치소도 고구려와의 관계에 따라 다시 한번 옮겨졌다고 추정되는 것임. 이 경우, 고구려가 혼하 북안에 신성(고이산성)을 구축하여 요동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시기에 제3현토군 치소를 다시 한 번 옮겼을 가능성이 높음. 즉 노동공원고성에 설치하였던 제3현토군은 신성이 구축되던 4세기 초를 전후한 시기에 다시 한번 서쪽 곧 상백관둔고성(上伯官屯古城) 일대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됨.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음. 『주서』고려전에서 6세기 중반 현토성(玄菟城)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지방성으로 거명되었고, 645년에도 현토군은 신성과 함께 당군의 집중공격대상이었음.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가 요동평원으로 진출한 다음 제3현토군(또는 제4현토군)의 치소를 요동군의 치소였던 요동성처럼 재사용하였음을 보여줌. 그런데 위의 혼하 연안 평지성 가운데 고구려 시기 유물이 출토된 곳은 노동공원고성과 동주소갑방고성(東州小甲邦古城)임. 따라서 제3현토군 치소가 다시 한번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현재까지의 고고학 발굴성과만 놓고 본다면, 고구려 현토성은 노동공원고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음.
王綿厚(2002)의 견해는 다음과 같음. 출토유물로 볼 때, 고구려가 신성을 축조하기 전의 한대 현토군의 수비성(守備城)으로 보임. 이후 고구려가 신성을 축조한 이후에는 평지성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무순 노동공원고성은 무순 시가 중심부(撫順 市街 中心部)에서 약간 동쪽에 있는 노동공원 산언덕에 위치함.
노동공원고성은 요동평원과 동부 산간지대의 접경지역에 위치함. 혼하 연안 대평원지대의 동북단으로서 혼하를 따라 동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천산산맥(千山山脈)·용강산맥(龍崗山脈)과 길림합달령(吉林哈達嶺) 일대의 산간지대로 접어들게 됨. 특히 혼하(渾河)에서 소자하(蘇子河)를 거쳐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혼강유역으로 나아갈 수 있고, 송화강 상류를 거쳐 동북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부여 중심지였던 길림지역에 도달할 수 있음. 또한 북쪽으로 철령(鐵嶺)방면으로 나아가면 요하 중상류로 통할 수도 있음. 노동공원고성은 요동평원에서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일대로 진입하는 길목일 뿐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임(여호규, 1999).
동남으로는 요동산구(遼東山區)에서 오는 적들을 방어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개활한 혼하평원(渾河平原)을 통제할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혼하와 접해 있는 등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성에서 혼하 건너편 고이산성(신성)까지의 거리는 2㎞임. 성에서 2㎞ 떨어진 지점에 한대(漢代) 고분군이 있음.
노동공원고성은 혼하에 걸려 있는 영안교(永安橋) 동남의 낮게 이어지는 세 개의 구릉에 위치함. 현재 가장 북쪽의 무순 우의빈관(撫順友誼賓館)이 건설되어 있는 구릉은 이전 만주국시대(満洲國時代)에는 ‘誉ヶ丘’라고 불리었음(그 위에 충혼비(忠魂碑)가 서 있던 관계로 지금의 해방기념비(解放記念碑)가 건설됨).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측에는 있었던 구릉은 과거에 ‘霊ヶ丘’라고 불리었는데(여기에 무순탄산순직비(撫順炭鏟殉職碑)가 건설되었던 관계로 지금도 순직비(殉職碑)가 서 있음), 현재는 노동공원으로 변모하였음. 남쪽은 과거에 ‘泉ヶ丘’라고 불렸던 구릉(정수장(浄水場)이 있었음)으로 이어짐. 이 세 구릉을 아울러서 영안대(永安台)라고도 불렀음(田中俊明, 1994).
고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언덕은 노호대산(老虎臺山)에서 이어졌고, 혼하 남안까지 이르러 높이 4m 가량의 초벽(峭壁)이 형성되어 있음. 그 초벽은 조어대(釣魚臺)라고 부르고 있는데, 만주국시대에는 영안공원(永安公園)이라고 불렀음(王禹浪·王宏北, 2007).
성지가 위치한 곳은 장백산 여맥(長白山 餘脈)과 혼하 충적평원의 접경지대이고, 남북쪽은 기복 있는 산들이 이어져서 이상적인 천연장벽을 이루고 있음.
고성의 북쪽 171m 지점에 혼하가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음.

 

유물정보

 

운뇌문동경(雲雷文銅鏡) 1점, 동제 화살촉(銅鏃) 1점, 낫(鎌) 1점, 도끼(鐵斧) 1점, 刀(칼) 1점, 철제 화살촉(鐵鏃) 1점, 시루 저부(甑底部) 2점, 시루(甑) 2점, 활석혼입토기(滑石混入土器) 1점,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1점, 채문토기(彩文土器) 1점, 사질토기(沙質土器) 1점, 대부토기(臺付土器) 1점, 유문토기(有文土器) 1점, 와당(瓦當) 4점, 벽돌(磚) 1점, 석제토기(石斧) 1점, 오수전(五銖錢) 1점, 녹각기(鹿角器) 2점, 토추(土錘) 1점, 가락바퀴(紡輪) 1점

 

참고문헌

 

· 戶田寬, 「撫順永安公園附近に於ける石器及土器類の分布狀況」『滿洲史學』 1-2, 1937
· 齋藤武一, 「撫順永安公園譽ヶ丘遺蹟」『滿洲史學』 2-3, 1938
· 渡邊三三, 『增訂 撫順史話』, 撫順新報社, 1940
· 田中俊明, 「高句麗の興起と玄菟郡」『朝鮮文化硏究』 1, 東京大學文學部朝鮮文化硏究室, 1994
· 徐家國, 「漢玄菟郡三遷址辦石」『中國考古集成』 東北卷 秦漢至三國(二), 北京出版社, 1997
· 余昊奎, 『高句麗 城』 Ⅱ(遼河流域篇), 國防軍史硏究所, 1999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肖景全·鄭辰, 「撫順地區高句麗考古的回顧」『東北史地』 2007-2, 2007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2007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 西安地圖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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